또 한해가 지나가고 새 해가 밝아왔다. 무심한 시간이다. 냉정한 세월이다.
책 읽는 한 해를 보내리라 다짐했건 만 결산은 초라하다. 연초마다 1주일에 쓸만한 책 1권은 꼭 읽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각뿐 막상 주문해서 펴들면 욕심이란 걸 깨닫는 데 몇 분 안 걸렸다. 몇 페이지 못 보고 어렵다고 던져 버리고 또 사서 얼마 못 읽고 포기 하고.
내용이 빈약한 책 100권 보다 깊이가 있는 책 1권이 낫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읽다 보면 읽기에 쉬운 책만 보게 되고 어려운 책은 읽히질 않는다. 어려운 책은 고도의 집중력과 치밀한 사고, 끈질긴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바탕에 지식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깔려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툼한 양장본에 영어와 한자 혼용으로 빽빽하게 쓰여 있는 고전들을 보노라면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 둔 등산가의 심정이다. 내 이번에는 기필코 정복하리라 다짐하지만 동네 뒷산이 올라가기 수월한 걸 어떡하리.
어찌 어찌 읽어가건만 한글로 된 문장이 왜 이리 어려울까? 읽기는 하는데 눈으로 읽을 뿐 머리로 읽는 것은 아니니 읽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럭저럭 읽은 책들도 돌아 서면 잊어버리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건 읽었다는 기억과 느낌의 잔상뿐이다. “에휴...이렇게 백년을 읽어 봐야 뭐하나” 싶다. 비록 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한 분야를 꾸준히 섭렵하다 보면 언젠가 아마추어는 면 하겠다 했지만 결과는 ‘아니올씨다’다. 한자리만 계속 맴도는 기분은 독서의욕을 팍 꺾어놓는다.
다독(多讀)도 아니고 정독(精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알라딘과 동네서점 좋은 일만 한 지 어언 6년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세월동안 남은 건 큰 책장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과 바닥 난 비자금 통장잔고, 마누라 잔소리뿐.
읽기만 할 땐 잘 몰랐는데 어쭙잖은 글을 쓰다 보니 공력이 많이 딸린다. 생각보다 내가 아는 것이 적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글쓰기는 질도 중요하지만 양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쥐꼬리만한 지식의 양으로는 사고의 정립은 고사하고 A4 1장 채우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중언부언 한말 또 하고 건질 것 없는 잡소리만 늘어놓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다. 늘 후회와 회의, 부정의 연속이지만 책을 손에서 놓치는 않으련다. 내 인생 중 그래도 긍정적이며 쓸만한 건 독서습관과 글을 쓰려는 자세뿐이다. 나쁜 습관은 금방 배우고 좋은 습관은 들이기 힘들다. 어째든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달릴밖에.
올 한해 또 어떠한 책들과 만나서 인연을 맺을까?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 가슴을 뜨겁게 할 놈들을 꼭 만나야 할 텐데......
또 다시 책 읽는 한 해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