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이 득실거린다. 요새 갑자기 늘어났다.

전에는 외국에만 있었는데 드디어 한국에도 상륙했다.

 

살아있는 싱싱한 육체를 물어뜯고자 텅 빈 머리를 흔들거리며 멍한 눈빛으로 몰려다닌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좀비에게 물릴까 공포에 떨며 도망 다니다 결국 좀비의 공격으로 그들의 행렬에 동참하고 만다. 꿈으로 가득했던 머리는 텅 비어 버렸고 정열을 간직했던 눈의 초점은 사라졌고 따뜻한 숨결을 내품던 코끝은 냉기로 얼어붙었다.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닌 좀비는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할 뿐 이미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한다면 말해야 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죽은 것이다.

 

좀비들은 살아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것을 죽이려고 한다.

처음엔 좀비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점점 좀비의 공격을 받아 같은 좀비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좀비가 두려워 공격받기 전에 스스로 좀비가 되어 버린 자들도 생기고 있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건 스스로 좀비가 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리지 않아도 죽어 있고, 좀비가 아닌데도 좀비인 척 하고,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모두 좀비가 되어 간다. 우리는 좀비다. 나도 좀비다. 좀비세상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평소 상태가 별로였던 어깨가 기어코 말썽을 일으켰다. 갑자기 통증이 심해 근처 어깨 전문 중형 병원엘 갔더니 두말 않고 수술하란다.

좀 불안하긴 했지만 막상 심각하다는 말에 당황했다. 평생 허약한 체질이라 골골하긴 했지만 몸에 칼 한 번 댄 적 없고 병상에 누워 본 적도 없던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한동안 고민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수술하기 전 의사를 세 명이상 만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했던가. 다시 인터넷을 뒤지다 비수술치료을 주워듣고 동네 통증전문병원을 찾아갔다. 가지고 간 MRI 영상을 한동안 보던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의사가 미소 지으며 왈,

“꼭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요? 큰 병원에서는 수술하라던데요? 안 해도 되나요?”

“수술하고 안하고는 환자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정말 힘들어서 못 견디면 하는 것이고 견딜만하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먼 개소리)

“환자가 하기 싫어도 상태가 심각하면 하는 것 아닌가요? 환자는 의료지식이 없으니까 의사가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의사의 말이 걸작이다.

“비겁한 말이지만(요 말을 몇 번 더 했다. 마치 거짓말쟁이들이 ‘솔직히 말하면’이란 말을 잘 하듯이) 의사의 진단은 책임이 따르기에 가장 단순 명료한 방법을 권합니다. 수술을 해버리면 일단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기에 가장 빠른 길이긴 합니다만 환자 입장에선 수술을 최대한 피하려 하기 때문에 강요할 순 없지요. 뭐 생명에 관계된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수술하시면 한 석 달은 고생하십니다.”

(오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단 계속 치료를 한 번 받아 보십시오. 치료를 했음에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거나 더 악화될까봐 불안하시다면 그 때 해도 됩니다.”

의사의 말을 듣다 보니 안심이 된다. 월급쟁이로 당장 수술할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지만 회복될 때까지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닐 시간을 내는 것은 더 어렵고 해서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상황이 상당히 웃긴다.

이 의사는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 큰 병원을 놔두고 여길 왔다면 분명히 수술 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왔을 터.....비수술 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큰 병원은 수술로 돈을 버니 수술하라고 하고 작은 병원은 비수술 치료를 하니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환자의 건강이 주제가 되지 못하고 병원이나 의사의 상황에 따라 치료 방법이 왔다 갔다 하는 현실

수술을 권하는 큰 병원의 의사와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 의사가 가지고 있는 의학 지식의 진실은 뭘까?

큰 병원에 있을 땐 날마다 수술을 밥 먹듯이 해놓고 개업하면 거꾸로 수술하지 말라고 하는 의사

사람이 아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수술대와 비수술요법을 갈팡질팡 헤매고 다니는 아픈 사람들

이 의사의 말도 맞고 저 의사의 말도 맞다. 수술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과연 맞는 이야기 인가? 단순히 치료 방법의 차이 일까? 알쏭달쏭한 현실 때문에 오늘 인터넷은 각종 의료 지식이 차고 넘치며 서점엔 건강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덕분에 ‘내가 반 의사여’ 하는 병원순례자들이 우리 주변에 몇 명씩 꼭 있다.

전문가인 의사의 말을 믿고 진료를 성실히 받는 것이 당연하고 현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칭반의사라는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말과 인터넷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수많은 지식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움을 확인했을 때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믿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만다.

사람이 아닌 돈의 가치에 풍선 허수아비 마냥 춤을 추는 줏대 없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을 아픈 내 몸뚱이로 다시 확인하려니 그렇지 않아도 더워 죽겠는데 미치도록 더 덥다.

그래도 좋다. 어째든 당장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수술은 너무 무섭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딩 2016-08-05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가 예전에 허리가 안 좋아서 병원가니 정말 10군데 정도에서 다 수술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소위 명의라는 분을 찾아가니 수술할 필요가 없다했습니다. 그래서 왜 다 수술하라는데 명의께선 수술하지 않아도 되냐고 물아보니,
특히 허리 쪽은 한 번 수술하면 계속 수술해야하는데 아직 나이도 젊으니 힘들어도 물리치료와 생활 운동으로 노력하면 좋아진다했답니다.
그 친구 몇달간 점심 시간에 회의실 문 잠그고 들어가 운동하고 통원치료 받더니 그 이후로는 병원 안 갑니다. :-) 병원의 수익구조도 영향을 주지만 의사 개인의 가치관도 수술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근 연이은 성관련 이슈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연예인의 성폭행, 남자 대학생들의 단톡방 성희롱 , 유명 인사의 성매매, 성추행 등등...

특히 단톡방 사건은 ‘개인이 사이버공간에서 한 행위인데 무슨 문제냐’ 하는 오지랖 넓은 사생활 옹호론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비난 일색이다. 현행법상으로도 단톡방의 대화는 언제라도 공개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이 있는 듯하다.

 

이런 사건들이 매스컴을 탈 때마다 남성의 성 의식이 도마에 오른다. 여성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주체가 지성이 펄펄 넘치는 명문대 학생이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지도층 인사든 아니면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성범죄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성들이 나하고 혈연관계가 없는 대부분의 여성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 욕구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생명 보존의 욕구와 함께 유전자 속에 본질적으로 자리 잡은 종족 번식의 본능은 불과 몇 천 년의 문명화와 십 여 년의 제도 교육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성적 욕구를 단순히 본능으로 치부하고 핑계를 대기에는 사회 질서 유지와 도덕적 관점에서 너무 무책임하다. 단순히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수준의 물리적 통제가 아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을 성으로 대하기에 앞서 남성과 해부학적 구조가 다른 인간으로 보는 시각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답답하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인터넷은 음란동영상물로 가득 차 있고 자본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이용하기에 바쁘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비하만은 아니다.

그것은 남성이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자를 봤을 때 몸매부터 훑어보는 남자들의 은밀한 시선은 과연 훌륭한 2세를 얻기 위한 본능적인 동작일까? 아니면 잘못 된 성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인 행동일까?

만약 전자라면 우리는 무조건 통제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감히 그러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유는 오직 ‘혼자만의 상상’뿐이다.

후자라면 어렸을 적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켜야겠다. 그러나 교육이 지식 주입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환경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된다면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으로 충분하다.

 

훌륭한 지식과 냉철한 이성이 번번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수없이 보면서 이러한 후진적인 사건들의 배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사람의 남자인 나는 어떻게 나의 본능을 통제해야 하는가?

성인이 되어서도 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상한 나라의 어른들.

 

앞에서는 성인군자지만 뒤에서는 엽기적인 이중 잣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성욕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아직도 죄책감과 쾌락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남자들끼리의 암묵적인 묘한 웃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온하지만 강철 같이 완고한 동업자 의식

사회구조를 탓하기엔 스스로가 죄스럽고 내 의지를 묻기엔 이 사회가 너무 야하다.

 

도대체 늘 말하는 건전한 성의식이나 성생활의 정확한 의미와 행동은 어떤 것인가?

성욕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간 수많은 지성과 명예, 권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남자들이여! 왜 우리는 이러한가?

 

정말 지겹지만 조금만 지나면 왜 그리 새로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2014년에 개봉된 염정아, 문정희 주연의 ‘카트’가 생각나는 만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요새 대중의 트렌드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만화.

어둡고 칙칙하며 심지어 불온하기까지 한 ‘노동’ 이야기를 눈앞의 현실처럼 박진감 있게 표현한 리얼리즘 만화

아무리 딱딱한 소재라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예를 유감없이 보여 준 뚝심이 배어 나는 만화.

 

모든 사람이 연대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실천 없는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사이사이 위안의 답을 끼워 놓는다.

 

역사는 늘 제일 먼저 일어서는 사람들의 피로 시작해왔다. 극히 소수의 송곳 같은 사람들은 승리는 모두의 승리지만 패배는 그들만의 패배로 끝나는 불공평한 싸움의 법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났다. 부당한 일들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다다르고 숨이 턱까지 차야 움직이는 대중의 특성 때문에 초기에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쓰러진 선구자의 희생은 늘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결산이 된 이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와 때 늦은 칭찬을 받곤 했다. 당연히 달디 단 성과의 열매는 그들과 별 상관이 없다.

 

가벼운 교통 법규 외 실정법에 저촉되는 삶을 극히 지양했던 소시민의 가녀린 심장엔 문명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공권력의 차갑고도 날 선 민 낮을 감히 정면으로 맞닥뜨릴 용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으니...

송곳 같은 사람들이 송곳처럼 일어설 때 난 어디에 있었을까?

행여 같은 송곳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다 돌아서며 양심에 가책을 받진 않았는지

뒤에서 말없이 지지하지만 절대 행동은 같이 하지 않았는지

어차피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굿이나 보다가 행여 떡고물이 떨어지면 주어먹자는 심산이었는지

모든 사람이 다 투사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으니 그들 뒤에서 지지만 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 중에 확 꽂히는 주인공의 독백.

“각자 등에 질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지고 가자는....................”

허약하지만 결코 비겁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말이라 반갑지만 완전한 면죄부가 아니다. 다시 고민한다.

충분히 질 수 있음에도 엄살떨며 내 짐을 누군가에게 지우지 않았는지. 나눌 수 없는 짐이라 같이 짊어 져야 하는 데 모른 척 한건 아닌지.

 

다시 원점이다.

항상 동감하지만 행동까지 이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불편한 만화.

그렇지만 모든 연장이 다 송곳일 필요는 없다. 망치든 못이든 톱이든 일단 송곳에 뚫린 구멍이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달려들면 된다. 그것이 송곳 아닌 연장들이 할 일인 것이다. 어째든 난 송곳은 아닌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도리의 대한민국 現在史 2010~2015 세트 - 전4권 - 나는 99%다 + 516 공화국 + 세월의 기억 +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박순찬 지음 / 비아북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으아아아악. 속았다. 아니 착각했다. 신문용 네컷짜리 만환줄 몰랐다. 알면 사지 않았을 것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룰루나인 2017-02-0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장도리작가님의 천재적 상상력과 황금손을 통해 대한민국이 현재사의 함흑기를 어떻게 재내왔는지를 하루단위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