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상태가 별로였던 어깨가 기어코 말썽을 일으켰다. 갑자기 통증이 심해 근처 어깨 전문 중형 병원엘 갔더니 두말 않고 수술하란다.
좀 불안하긴 했지만 막상 심각하다는 말에 당황했다. 평생 허약한 체질이라 골골하긴 했지만 몸에 칼 한 번 댄 적 없고 병상에 누워 본 적도 없던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한동안 고민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수술하기 전 의사를 세 명이상 만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했던가. 다시 인터넷을 뒤지다 비수술치료을 주워듣고 동네 통증전문병원을 찾아갔다. 가지고 간 MRI 영상을 한동안 보던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의사가 미소 지으며 왈,
“꼭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요? 큰 병원에서는 수술하라던데요? 안 해도 되나요?”
“수술하고 안하고는 환자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정말 힘들어서 못 견디면 하는 것이고 견딜만하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먼 개소리)
“환자가 하기 싫어도 상태가 심각하면 하는 것 아닌가요? 환자는 의료지식이 없으니까 의사가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의사의 말이 걸작이다.
“비겁한 말이지만(요 말을 몇 번 더 했다. 마치 거짓말쟁이들이 ‘솔직히 말하면’이란 말을 잘 하듯이) 의사의 진단은 책임이 따르기에 가장 단순 명료한 방법을 권합니다. 수술을 해버리면 일단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기에 가장 빠른 길이긴 합니다만 환자 입장에선 수술을 최대한 피하려 하기 때문에 강요할 순 없지요. 뭐 생명에 관계된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수술하시면 한 석 달은 고생하십니다.”
(오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단 계속 치료를 한 번 받아 보십시오. 치료를 했음에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거나 더 악화될까봐 불안하시다면 그 때 해도 됩니다.”
의사의 말을 듣다 보니 안심이 된다. 월급쟁이로 당장 수술할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지만 회복될 때까지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닐 시간을 내는 것은 더 어렵고 해서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상황이 상당히 웃긴다.
이 의사는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 큰 병원을 놔두고 여길 왔다면 분명히 수술 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왔을 터.....비수술 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큰 병원은 수술로 돈을 버니 수술하라고 하고 작은 병원은 비수술 치료를 하니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환자의 건강이 주제가 되지 못하고 병원이나 의사의 상황에 따라 치료 방법이 왔다 갔다 하는 현실
수술을 권하는 큰 병원의 의사와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 의사가 가지고 있는 의학 지식의 진실은 뭘까?
큰 병원에 있을 땐 날마다 수술을 밥 먹듯이 해놓고 개업하면 거꾸로 수술하지 말라고 하는 의사
사람이 아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수술대와 비수술요법을 갈팡질팡 헤매고 다니는 아픈 사람들
이 의사의 말도 맞고 저 의사의 말도 맞다. 수술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과연 맞는 이야기 인가? 단순히 치료 방법의 차이 일까? 알쏭달쏭한 현실 때문에 오늘 인터넷은 각종 의료 지식이 차고 넘치며 서점엔 건강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덕분에 ‘내가 반 의사여’ 하는 병원순례자들이 우리 주변에 몇 명씩 꼭 있다.
전문가인 의사의 말을 믿고 진료를 성실히 받는 것이 당연하고 현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칭반의사라는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말과 인터넷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수많은 지식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움을 확인했을 때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믿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만다.
사람이 아닌 돈의 가치에 풍선 허수아비 마냥 춤을 추는 줏대 없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을 아픈 내 몸뚱이로 다시 확인하려니 그렇지 않아도 더워 죽겠는데 미치도록 더 덥다.
그래도 좋다. 어째든 당장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수술은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