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은 성관련 이슈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연예인의 성폭행, 남자 대학생들의 단톡방 성희롱 , 유명 인사의 성매매, 성추행 등등...

특히 단톡방 사건은 ‘개인이 사이버공간에서 한 행위인데 무슨 문제냐’ 하는 오지랖 넓은 사생활 옹호론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비난 일색이다. 현행법상으로도 단톡방의 대화는 언제라도 공개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이 있는 듯하다.

 

이런 사건들이 매스컴을 탈 때마다 남성의 성 의식이 도마에 오른다. 여성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주체가 지성이 펄펄 넘치는 명문대 학생이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지도층 인사든 아니면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성범죄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성들이 나하고 혈연관계가 없는 대부분의 여성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 욕구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생명 보존의 욕구와 함께 유전자 속에 본질적으로 자리 잡은 종족 번식의 본능은 불과 몇 천 년의 문명화와 십 여 년의 제도 교육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성적 욕구를 단순히 본능으로 치부하고 핑계를 대기에는 사회 질서 유지와 도덕적 관점에서 너무 무책임하다. 단순히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수준의 물리적 통제가 아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을 성으로 대하기에 앞서 남성과 해부학적 구조가 다른 인간으로 보는 시각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답답하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인터넷은 음란동영상물로 가득 차 있고 자본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이용하기에 바쁘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비하만은 아니다.

그것은 남성이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자를 봤을 때 몸매부터 훑어보는 남자들의 은밀한 시선은 과연 훌륭한 2세를 얻기 위한 본능적인 동작일까? 아니면 잘못 된 성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인 행동일까?

만약 전자라면 우리는 무조건 통제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감히 그러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유는 오직 ‘혼자만의 상상’뿐이다.

후자라면 어렸을 적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켜야겠다. 그러나 교육이 지식 주입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환경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된다면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으로 충분하다.

 

훌륭한 지식과 냉철한 이성이 번번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수없이 보면서 이러한 후진적인 사건들의 배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사람의 남자인 나는 어떻게 나의 본능을 통제해야 하는가?

성인이 되어서도 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상한 나라의 어른들.

 

앞에서는 성인군자지만 뒤에서는 엽기적인 이중 잣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성욕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아직도 죄책감과 쾌락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남자들끼리의 암묵적인 묘한 웃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온하지만 강철 같이 완고한 동업자 의식

사회구조를 탓하기엔 스스로가 죄스럽고 내 의지를 묻기엔 이 사회가 너무 야하다.

 

도대체 늘 말하는 건전한 성의식이나 성생활의 정확한 의미와 행동은 어떤 것인가?

성욕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간 수많은 지성과 명예, 권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남자들이여! 왜 우리는 이러한가?

 

정말 지겹지만 조금만 지나면 왜 그리 새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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