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2014년에 개봉된 염정아, 문정희 주연의 ‘카트’가 생각나는 만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요새 대중의 트렌드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만화.

어둡고 칙칙하며 심지어 불온하기까지 한 ‘노동’ 이야기를 눈앞의 현실처럼 박진감 있게 표현한 리얼리즘 만화

아무리 딱딱한 소재라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예를 유감없이 보여 준 뚝심이 배어 나는 만화.

 

모든 사람이 연대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실천 없는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사이사이 위안의 답을 끼워 놓는다.

 

역사는 늘 제일 먼저 일어서는 사람들의 피로 시작해왔다. 극히 소수의 송곳 같은 사람들은 승리는 모두의 승리지만 패배는 그들만의 패배로 끝나는 불공평한 싸움의 법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났다. 부당한 일들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다다르고 숨이 턱까지 차야 움직이는 대중의 특성 때문에 초기에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쓰러진 선구자의 희생은 늘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결산이 된 이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와 때 늦은 칭찬을 받곤 했다. 당연히 달디 단 성과의 열매는 그들과 별 상관이 없다.

 

가벼운 교통 법규 외 실정법에 저촉되는 삶을 극히 지양했던 소시민의 가녀린 심장엔 문명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공권력의 차갑고도 날 선 민 낮을 감히 정면으로 맞닥뜨릴 용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으니...

송곳 같은 사람들이 송곳처럼 일어설 때 난 어디에 있었을까?

행여 같은 송곳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다 돌아서며 양심에 가책을 받진 않았는지

뒤에서 말없이 지지하지만 절대 행동은 같이 하지 않았는지

어차피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굿이나 보다가 행여 떡고물이 떨어지면 주어먹자는 심산이었는지

모든 사람이 다 투사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으니 그들 뒤에서 지지만 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 중에 확 꽂히는 주인공의 독백.

“각자 등에 질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지고 가자는....................”

허약하지만 결코 비겁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말이라 반갑지만 완전한 면죄부가 아니다. 다시 고민한다.

충분히 질 수 있음에도 엄살떨며 내 짐을 누군가에게 지우지 않았는지. 나눌 수 없는 짐이라 같이 짊어 져야 하는 데 모른 척 한건 아닌지.

 

다시 원점이다.

항상 동감하지만 행동까지 이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불편한 만화.

그렇지만 모든 연장이 다 송곳일 필요는 없다. 망치든 못이든 톱이든 일단 송곳에 뚫린 구멍이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달려들면 된다. 그것이 송곳 아닌 연장들이 할 일인 것이다. 어째든 난 송곳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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