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 보어 :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지식인마을 5
이현경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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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과학혁명 이후 뉴턴에 의해 세워진 고전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대상과 방법만 알면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적 세계관은 과거를 기반으로 이어지는 현재를 거쳐 예정된 미래로 흐르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주장한다.

 

그러나 확고부동의 기계식 미래관은 양자역학에 의해 흔들리고 말았다. 관찰대상과 관찰자의 이분법은 촌스런 이야기가 되었으며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쏘아댄 광자의 운동에너지에 의해 이리 저리 도망 다니며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기를 거부하는 전자의 이야기는 내게 ‘불확정성의 원리’ 대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양자역학은 기존 고전역학의 과학관만 혼란시킨 것이 아니다. 이제 과학은 철학이 되었다. 과학과 철학은 더 이상 별개가 아니다. 헤겔, 하이데거같은 철학자들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만으로 사유의 극한에 다다른 인식론을 펼쳤다. 그러나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의 힘은 이 세상을 단순히 추상적인 사유로 규정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의 비밀을 새롭게 벗겨가고 있다. 이제 세계관은 철학이 아닌 과학으로 세워야 하는 시점이 된 듯하다.

 

과거 한 두 명의 천재적인 사유가 검증할 수 없는 존재론을 펼쳤다면, 현재는 다수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으로 무장한 과학적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의 존재론을 제시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른 시공간의 엄격한 분리에 기반을 둔 과거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여전히 몸과 마음을 의탁한 채 살고 있는 내게 확률과 우연의 불연속적인 양자 세계는 낯설고 어색하다.

 

철학적 존재론도 이해 못하는 내가 양자론적 형이상학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수식으로 이해할 순 없다. 과학자들이 쉽게 풀어 쓴 내용에 담긴 핵심적이며 개괄적인 표어에서 흐름을 알고 내 사고에, 내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몇 가닥 정도 끌어 낼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어려운 지식을 끙끙대며 읽어낸 보람이 있을 듯하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설사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왜곡된 결과를 얻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예술가가 무언가 특이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본인의 작품에 반영하듯이 나도 무언가 생소한 것에서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감을 얻는다.

 

그것이 어렵지만 과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과학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고 신세계다. 과학은 우주탄생과 진행의 신비, 생명의 탄생과 진화, 시공간의 정의와 다차원의 세계, 상대성이론의 거시물리학에서 원자 같은 미시물리학, 하다못해 사후세계의 영적 소통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내 호기심에 어느 정도 근사치의 해답을 줄 수 있는 소중한 무엇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자연을 배제하며 고독한 진군을 거듭한 인간의 절대정신은 이미 최고점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수퍼맨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우리는과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고의 세계를 열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누가 물었다. 과학에 가치가 있는가?

난 대답하고 싶다. 가치가 과학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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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03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여전히 철학이 과학을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과학이 더욱 발전하고 도움될 수 있다고 믿는 일인입니다.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11-05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수학자가 철학자였습니다. 근대 이후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걸은 것이 너무 멀리 간거죠.
저도 철학이 과학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지만 녹록치 않아 보이더군요. 사실 철학은 어렵긴 하지만 누구나 접근 할 수 있지만 과학은 따로 공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구요. 학교를 벗어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