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을 몰랐다면 굉장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특유의 몰입력은 그대로이나 7년의 밤에서 느꼈던 간결한 힘이 아직 없다. 감정이입이 될라 치면 갑자기 튀어 들어오는 유머와 자료에 감정이 식어버리고 머리가 아파온다. 수명이란 캐릭터의 마음이 읽히지 않는다. 무언가 제대로 닿지 않는다. 멋진 풍경을 불투명유리를 통해 본 느낌. 난 정신병원의 시스템이나 차량. 비행의 지식보단 수명이나 승민의 마음이 알고 싶었다. 허나 쉽게 읽히진 않는다....내가 `7년의 밤`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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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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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리만치 둔감하다.

 

한 마디로 자신의 약점과 치부,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까닭도 그 내부를 짐작해보면


'이 사람은 나의 신조와 맞지 않는 이런 말과 이런 행동을 했어.

 그러니까 난 괜히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정도가 되지 싶다. 한 마디로 죽어도 난 누구보다 사람다운 사람인 체 하고 싶은 거다.

(이걸 허세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잘난 척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각이 점차 깨지게 된 것은 실직과 재취업을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면접에서 미끄러지고, 직장생활에서 까이면서였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사무직으로 일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지금껏 서비스직 종사 중)

 

요즘은 나이 탓인지 아니면 경험 탓인지

그래도 어느 정도 반응도 가능하고 어색하지 않게 대화에도 낄 수 있긴 했지만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사소한 것(이를테면 머리를 잘랐다던가, 휴대폰을 샀다던가)에

왜 반응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반응을 보여달라는 건지 조차

이해하지 못 하고 화를 내곤 했었다.

(이런 류의 대화는 사무직에서 더 활발한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저렇게 뻔한 대답만 요구하는 질문을 퍼붓는 걸까.

안 어울리다고 하면 버릴 건가. 바꿀 건가 라면서 비난하기도 했더랬다.

 

기억들로 인해, 살아감에 있어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낫다고 생각하던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초월자 내지는 방관자를 자청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나름대로 흑역사라면 흑역사다. 이보다 더 허세인 게 어디 있을까.

 

그러다 계속 떨어지고, 까이고 하면서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초월자가 어찌 될 수 있나'

'제대로 해보고나 떠들어라'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새해 목표를 '솔직해지자' 로 잡았던 기억이 있다.

 

타인에 대해 솔직하자 가 아닌 스스로에게 솔직하자.

말 그대로 그냥 이 사람이 싫은 거면서 이 이유 저 이유 붙여가면서 핑계 대지 말자.

그냥 급여가 낮고 오래 일해서 싫은 거면서 회사 분위기 갖다 붙이지 말자

핑계 대지 말자. 그냥 내가 싫은 거지 거기에 고고한 척 이유는 갖다 대지 말자.


어느 정도는 지켜진 것도 있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면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리뷰를 쓰면서 아직도 난 그림을 그렸었네. 창작을 했던 사람이네

하고 떠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허세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마음 한켠에는 책 한 권도 사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면도 있다.

참 인간이 좀스럽다.

 

 

 

솔직해지자.

아마 이것은 평생 지켜도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감추고 싶은 것

그냥 남 잘되는 게 싫은 패배의식까지 솔직해져야지 솔직해졌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해봤자 그 지경까지는 도달하지 못 할 듯 싶다.

그럼 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솔직해지자. 이런 목표를 썼을 때 부가적으로 덧붙인 문장이 '인정하자' 였다.

날 세우기 바쁘던 성격이 점차 수그러진 것도 인정하기 시작하고 나서 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보통도 되지 못 한다' 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박수받아 마땅할 일' 이라는 것.

그리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바쁜 사회에서 구성원을 보살피고

아이들까지 건사하는 그 생활은 더 대단하다는 것.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변한 것은 '나에게는 인간관계는 최소한인 게 낫다' 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난 사람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아마 직업적인 영향도 있을 테고, 성장환경의 영향도 있을 터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만나보자고 생각도 했고

실천에도 옮겼으나 남는 것은 늘어난 주량 뿐이었다.

(그것도 같이 마시다가 는 게 아니라,

 그 자리의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와서 혼자 마시다가 늘어난 주량)

 

 

 

최근 새해 목표를 '뭐라도 되자' 라고 세웠더랬다.

뭐가 됬던 평범하게라도 좀 제대로 살자.

여기에 숨겨진 속뜻은 제발 실직 좀 그만하자 이제. 가 되겠다.

내지는 아무리 취미라지만 그래도 만화 좀 빨리빨리 그리지 정도?

 

그리고 부가적으로 덧붙인 것이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작정 피하지 말자. 라는 것.

지금껏 나의 태도는 둘 중 하나였다. 피하거나 충돌해서 깨져버리거나.

 

 

이번에는 중도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안 내키는 자리 억지로 가지 말고(회식은 어쩔 수 없지만)

가고 싶은 자리 지레 겁먹고 피하지만 말자고 다짐은 했지만 얼마나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놓아두어야 한다.

요즘 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변하는 걸 부러 붙잡지도 말고, 일부러 변화시키려 하지도 말고

그냥 나라는 개체의 생존적응력을 믿으며(살고 싶으면 알아서 변하겠지)

어떤 모습이 되었건, '나답지 않아' 라는 말로 어색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뭐 그러다 보면 뭐가 되도 되어 있겠지.

지금과 많이 다르진 않더라도.

 

 

p.s. ...이상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생각

     (...쓰다보니 결국 사담이 되어 붙여보는 변명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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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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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 하나는

서로 다른 작가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러 '가족의 이야기' 를 쓴 것 처럼 하나의 테마 아래 모여있다는 것.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이것이 근래의 화두인가 아니면

20~30대로 보이는 그 연령대가 중점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인 건가 하는 것.

 

세 번째.

만약 후자라면 중점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네 번째.

그래도 나름 소설을 봐온 지 꽤 된 사람으로

점점 감성과 이미지에 치우쳐가는 근래의 경향이 읽혀지는 듯 싶다.

물론 그런 글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통용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섯 번째.

마치 모두가 '어른아이' 가 쓴 것만 같은 글.

다시 한 번 의문. 과연 이러한 감성은 몇 세까지 통용되는 걸까.

 

여섯 번째.

조해진의 '빛의 호위', 윤이형의 '쿤의 여행', 최은영 '쇼코의 미소' 가 좋았다.

 

일곱 번째.

개인적인 의문.

가족의 상처를 제 몸에 흡수해버린 한 명의 희생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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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2-1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공감. 일곱번째만 모르겠어요.

cheshire 2015-02-19 17:25   좋아요 1 | URL
일곱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책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은 젊은 작가라는 단어 때문인지 과연 몇 사람의 글을 계속 볼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던 책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당하기 힘든 어떤 상황 앞에서 누군가는 폭력과 분노로 이를 상쇄하고 누군가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방관하는 걸로 스스로를 지킨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상황으로 인한 자신의 상처를 구태여 다른 누군가에게 세세하게 전달하고 전달받은 누군가는 결국 그 상처를 제 안에서 썩을 때까지 키워버리곤 한다....이런 얘기 였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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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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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따라 누군가의 발자취를 훑는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쉽게 매혹되는 설정이다.

 

특히 그 이유가 '애도' 나 혹은 자기 안의 고통을 분쇄하려는 이유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이유가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로기완을 만났다' 의 경우,

김작가가 로기완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브뤼셀로 떠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만나고 로기완을 쫓는 과정에서 도망쳐버린 그녀의 현실과

그녀의 후회를 대면하게 되는 순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밋밋하다며 적대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내가 매혹되기 쉬운 설정인데가

내가 소설에서 얻고자 하는 위안이 '극적인 것' 을 자양분삼은 카타르시스는 아닌 까닭이다.

 

허나 이러한 개인적인 취향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대해 실망하고 만 까닭은

아무리 생각하고 갖다붙여도

왜 김작가가 그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로기완을 찾아 한국을 떠나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작가 본인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해 수술의 때를 놓쳐 병이 깊어진 소녀가 있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소녀였다.

김작가는 후회하고 미안해하다 로기완을 쫓아 브뤼셀로 떠난다.

 

아마 여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연계점은 소녀가 '어떤 글을 써라' 라고 언급했다는 것 정도와

그녀가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느끼고 있던 회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소설 안에서는 소녀와 김작가의 대화가 그리 무게감 있게 닿아오지도 않고

소녀의 비중보다 브뤼셀에서 만난 '박' 의 비중과

그녀가 줄곧 쫓고 있던 '로기완' 의 비중이 크다 보니

 

김작가가 어떤 현실을 잊기 위해 로기완을 쫓은 것이 아닌

그저 로기완을 쫓기 위해 쫓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소녀에 대한 부분이 불필요한 부분처럼 느껴졌단 이야기다.

 

더욱이 불편했던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소녀와 로기완을 동일시 하려는 노력이 보였다는 거다.

 

같은 외로움을 안고 있는, 홀로 거리에 떨어져 나온...이라고 생각하면 

동일시 하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겠지 싶지만서도

엄밀히 따져보면 상황이 너무 다르다. 

국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청년의 현실과 부모의 외면과 병까지 얻고 만 소녀의 현실은.

같은 선상에서 같은 외로움의 정도로 묘사되면 안 될 이야기다.

적어도 난 그리 생각한다.

 

차라리 소녀를 버리고 로기완만을 놓고 쓰던가

아니면 좀 더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던가

(작가라는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계시처럼 누구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느꼈다는 말을 난 믿지 않는다.

 까닭 없는 창작과 계기 없는 영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찜찜함이

결국 로기완을 쫓는 행적에서 얻을 수 있었던 아련함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안타깝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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