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을 대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라 한다면 할 수 있겠다만
그 간절함과 슬픔, 애틋함 기타 등등의
감정들의 깊이가 너무 얄팍하게 묘사된 게 아닐까 싶다.

뭐랄까.
죽어가는 시한부 청소년의 우정과 사랑 얘기에
부가적으로 SF 를 곁들인 느낌?

제네시스 라는 기관과 학교의 등장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의 모임
멸망해가는 세계 등의 설정을 갖고 이렇게 짧은 이야기밖에 안 나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물별로 서사를 좀 보충하고
작품에서 묘사되어지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았으면
더 좋은 소설이 나왔을 거 같은데 뭔가 좀 아쉽다.

하긴. 요즘엔 다들 길게는 안 쓰는 거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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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을 만났다가 대화 중 황정은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갑자기 떠올라서 다시 중고로 산 책.
(최근 리커버판이 나왔지만 새로운 표지가 내용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아 굳이 구판을 찾아서 구매함)

단편을 잘 읽지 않은 편이라
처음 읽은 황정은의 작품은 ‘백의 그림자‘ 였다.
백의 그림자 에서 느꼈던 무언가 아련히 스러져가는 느낌이 좋아서 야만적인 앨리스씨 까지 읽게 되었는데
백의 그림자 에서 받은 아련한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내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이걸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문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불편하고 파괴적인 이미지가 가끔 가다 생각이 났고
백의 그림자 의 줄거리가 거의 다 잊혀지고 나서도
앨리시어 는 가끔 생각이 났다.

최근 경험치에 대한 생각을 하곤 했다.
주변인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한 마디로 어른스러운 고민이 많은데
나 혼자만 아직도 나 개인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아
(자아를 이제서야 찾는 사람처럼)
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생각해보았다.
주제에 감히 황정은 작가에 빗대어 보자면
아마도 난 야만적인 앨리스씨 같은
불편하고 불쾌한 얘기는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백의 그림자 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유독 불편한 책들를 더 보게 되는 이유는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나름의 발버둥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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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이 좋길래 샀는데 이런 치정물이 결과라면 내가 왜 굳이 미스터리를 읽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예 치정물로만 쓰던가.
어설프게 걸쳐 있는 게 더 짜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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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언제부터 주요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는지는
기억 못 하지만 상실의 시대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오르내릴 무렵부터
하루키라는 작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하루키보다는
무라카미 류 쪽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라카미 류의 신간 소식은
더이상 들리지 않고(내가 못 듣는 걸지도)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작가가 되었다.
(맞나? 정보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름)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에 대해서는
늘 호기심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소수밖에 없는 나의 친구 중 한 명이
하루키를 좋아해서도 더 호기심이 생겼고.

해서 지금까지 읽어본 하루키의 작품은
상실의 시대(요즘은 노르웨이의 숲인 듯)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어쩌고저쩌고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오늘 1Q84

상실의 시대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책은
솔직히 별 감상이 들지 않았다.
읽을 당시 딱히 깊은 인상을 받은 것도 아닌지라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고
‘여자 한 명이 사라졌고 거기에 대해
작중 주인공이 무언가 철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정도로만 기억할 뿐이다.

그나마 내가 좋아할법한 지점이 있던 것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와 1Q84 정도

이 곳이 아닌 다른 세계
유년의 기억 등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이고
두 개의 세계와 또다른 나 라는 테마는 하루키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인 듯 하니
여러 모로 하루키 작품은 내가 좋아할 법도 한데
늘 한 다리 건너 하나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 식이다.

호오의 정도가 불분명한 건 해변의 카프카 랄까
성장 이야기이고 부모를 떠나
하나의 독립체로 존재하려 한다.
그러다가 어떤 외지고 신비로운 장소에 가게 되고
거기에서 이데아의 세계(내맘대로 붙인 명칭)에
들어가게 된다

....까지만 보면 내가 좋아할 법도 한데
뭔가 어느 부분을 내가 꺼리고 있다.
그게 뭔지 의문이라
얼결에 해변의 카프카만 두 번을 읽은 듯 하다.

1Q84는 뭐랄까
해변의 카프카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러브 스토리를 전개해 준 느낌이었다.
그래서 새삼 느낀 게
‘이 작가가 다른 세계. 다른 자아 에 몹시 진심이구나‘
라는 거.

그래서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 하루키의 최신작도 사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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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간 뭔가 뇌에 여유공간이 없어 책을 통 읽지 못 하다가 연휴를 맞아 겨우 한 권 읽어볼 수 있었다.

욘(이하 생략) 작가는 렛미인이란 책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썩 관심이 가진 않다가 ‘나를 데려가‘ 라는 책을 읽고 매우 흥미로운 지점을 다룬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작품들도 구매하게 되었다.

렛미인을 먼저 읽었고
나를 데려가 를 읽고
오늘 언데드 다루는 법을 읽고 나니

사랑을 기본 정서로 두고
장르물을 쓰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장르물이 사건-결과 의 과정을 보여주는 데 반해 욘(이하 생략) 작가는 그것을 겪는 사람에 더 집중한달까.

아무래도 렛미인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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