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좀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리만치 둔감하다.

 

한 마디로 자신의 약점과 치부,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까닭도 그 내부를 짐작해보면


'이 사람은 나의 신조와 맞지 않는 이런 말과 이런 행동을 했어.

 그러니까 난 괜히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정도가 되지 싶다. 한 마디로 죽어도 난 누구보다 사람다운 사람인 체 하고 싶은 거다.

(이걸 허세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잘난 척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각이 점차 깨지게 된 것은 실직과 재취업을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면접에서 미끄러지고, 직장생활에서 까이면서였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사무직으로 일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지금껏 서비스직 종사 중)

 

요즘은 나이 탓인지 아니면 경험 탓인지

그래도 어느 정도 반응도 가능하고 어색하지 않게 대화에도 낄 수 있긴 했지만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사소한 것(이를테면 머리를 잘랐다던가, 휴대폰을 샀다던가)에

왜 반응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반응을 보여달라는 건지 조차

이해하지 못 하고 화를 내곤 했었다.

(이런 류의 대화는 사무직에서 더 활발한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저렇게 뻔한 대답만 요구하는 질문을 퍼붓는 걸까.

안 어울리다고 하면 버릴 건가. 바꿀 건가 라면서 비난하기도 했더랬다.

 

기억들로 인해, 살아감에 있어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낫다고 생각하던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초월자 내지는 방관자를 자청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나름대로 흑역사라면 흑역사다. 이보다 더 허세인 게 어디 있을까.

 

그러다 계속 떨어지고, 까이고 하면서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초월자가 어찌 될 수 있나'

'제대로 해보고나 떠들어라'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새해 목표를 '솔직해지자' 로 잡았던 기억이 있다.

 

타인에 대해 솔직하자 가 아닌 스스로에게 솔직하자.

말 그대로 그냥 이 사람이 싫은 거면서 이 이유 저 이유 붙여가면서 핑계 대지 말자.

그냥 급여가 낮고 오래 일해서 싫은 거면서 회사 분위기 갖다 붙이지 말자

핑계 대지 말자. 그냥 내가 싫은 거지 거기에 고고한 척 이유는 갖다 대지 말자.


어느 정도는 지켜진 것도 있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면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리뷰를 쓰면서 아직도 난 그림을 그렸었네. 창작을 했던 사람이네

하고 떠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허세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마음 한켠에는 책 한 권도 사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면도 있다.

참 인간이 좀스럽다.

 

 

 

솔직해지자.

아마 이것은 평생 지켜도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감추고 싶은 것

그냥 남 잘되는 게 싫은 패배의식까지 솔직해져야지 솔직해졌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해봤자 그 지경까지는 도달하지 못 할 듯 싶다.

그럼 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솔직해지자. 이런 목표를 썼을 때 부가적으로 덧붙인 문장이 '인정하자' 였다.

날 세우기 바쁘던 성격이 점차 수그러진 것도 인정하기 시작하고 나서 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보통도 되지 못 한다' 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박수받아 마땅할 일' 이라는 것.

그리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바쁜 사회에서 구성원을 보살피고

아이들까지 건사하는 그 생활은 더 대단하다는 것.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변한 것은 '나에게는 인간관계는 최소한인 게 낫다' 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난 사람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아마 직업적인 영향도 있을 테고, 성장환경의 영향도 있을 터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만나보자고 생각도 했고

실천에도 옮겼으나 남는 것은 늘어난 주량 뿐이었다.

(그것도 같이 마시다가 는 게 아니라,

 그 자리의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와서 혼자 마시다가 늘어난 주량)

 

 

 

최근 새해 목표를 '뭐라도 되자' 라고 세웠더랬다.

뭐가 됬던 평범하게라도 좀 제대로 살자.

여기에 숨겨진 속뜻은 제발 실직 좀 그만하자 이제. 가 되겠다.

내지는 아무리 취미라지만 그래도 만화 좀 빨리빨리 그리지 정도?

 

그리고 부가적으로 덧붙인 것이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작정 피하지 말자. 라는 것.

지금껏 나의 태도는 둘 중 하나였다. 피하거나 충돌해서 깨져버리거나.

 

 

이번에는 중도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안 내키는 자리 억지로 가지 말고(회식은 어쩔 수 없지만)

가고 싶은 자리 지레 겁먹고 피하지만 말자고 다짐은 했지만 얼마나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놓아두어야 한다.

요즘 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변하는 걸 부러 붙잡지도 말고, 일부러 변화시키려 하지도 말고

그냥 나라는 개체의 생존적응력을 믿으며(살고 싶으면 알아서 변하겠지)

어떤 모습이 되었건, '나답지 않아' 라는 말로 어색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뭐 그러다 보면 뭐가 되도 되어 있겠지.

지금과 많이 다르진 않더라도.

 

 

p.s. ...이상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생각

     (...쓰다보니 결국 사담이 되어 붙여보는 변명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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