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을 따라 누군가의 발자취를 훑는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쉽게 매혹되는 설정이다.

 

특히 그 이유가 '애도' 나 혹은 자기 안의 고통을 분쇄하려는 이유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이유가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로기완을 만났다' 의 경우,

김작가가 로기완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브뤼셀로 떠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만나고 로기완을 쫓는 과정에서 도망쳐버린 그녀의 현실과

그녀의 후회를 대면하게 되는 순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밋밋하다며 적대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내가 매혹되기 쉬운 설정인데가

내가 소설에서 얻고자 하는 위안이 '극적인 것' 을 자양분삼은 카타르시스는 아닌 까닭이다.

 

허나 이러한 개인적인 취향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대해 실망하고 만 까닭은

아무리 생각하고 갖다붙여도

왜 김작가가 그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로기완을 찾아 한국을 떠나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작가 본인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해 수술의 때를 놓쳐 병이 깊어진 소녀가 있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소녀였다.

김작가는 후회하고 미안해하다 로기완을 쫓아 브뤼셀로 떠난다.

 

아마 여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연계점은 소녀가 '어떤 글을 써라' 라고 언급했다는 것 정도와

그녀가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느끼고 있던 회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소설 안에서는 소녀와 김작가의 대화가 그리 무게감 있게 닿아오지도 않고

소녀의 비중보다 브뤼셀에서 만난 '박' 의 비중과

그녀가 줄곧 쫓고 있던 '로기완' 의 비중이 크다 보니

 

김작가가 어떤 현실을 잊기 위해 로기완을 쫓은 것이 아닌

그저 로기완을 쫓기 위해 쫓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소녀에 대한 부분이 불필요한 부분처럼 느껴졌단 이야기다.

 

더욱이 불편했던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소녀와 로기완을 동일시 하려는 노력이 보였다는 거다.

 

같은 외로움을 안고 있는, 홀로 거리에 떨어져 나온...이라고 생각하면 

동일시 하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겠지 싶지만서도

엄밀히 따져보면 상황이 너무 다르다. 

국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청년의 현실과 부모의 외면과 병까지 얻고 만 소녀의 현실은.

같은 선상에서 같은 외로움의 정도로 묘사되면 안 될 이야기다.

적어도 난 그리 생각한다.

 

차라리 소녀를 버리고 로기완만을 놓고 쓰던가

아니면 좀 더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던가

(작가라는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계시처럼 누구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느꼈다는 말을 난 믿지 않는다.

 까닭 없는 창작과 계기 없는 영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찜찜함이

결국 로기완을 쫓는 행적에서 얻을 수 있었던 아련함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안타깝다. 여러모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