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음부터 그의 의견 역시 그러했다는 듯, 지도를 접고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치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자신인 양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 P70
사실 비와 무관하게 그는 발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키도그리 크지 않은 남자가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어딘가로 바삐걸어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분초를아끼며 뛰어다녀도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 삶. 그게 바로 그의삶이었다. - P77
순간, 그들의 눈앞에는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눈이 어둠에 차차 익숙해지자 균질했던 어둠으로부터 윤곽들이 떠올랐다. 그곳은 사면이 시멘트 벽으로 이루어진 잿빛 방이었다. 벽이 깎아지른 듯 너무 높았고, 시멘트에서 뿜어나오는 한기가 너무 선득해 그들은 그곳이 수용소 체험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P85
어떻게 파시스트의 곡이 이토록슬프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녀는 낭패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예술이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면접 시험장에서 그녀가 미처 답하지 못한 독일 교수의 질문이 떠올랐다. 문이 열렸다. - P89
그녀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