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도를 다시 만난 곳도 경찰서였다. 그때 나는 주취자나 피의자가 머무는 기다란 갈색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맨들맨들했다. 여러 사람이 쉴새없이 앉았다 일어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처량한 기분이었지만 거기에 앉았던 사람중 내가 가장 멀쩡하고 억울하리라는 생각으로 허리를 꼿꼿이펴려고 애썼다. 실은 겁이 나서 엎드려 울게 될까봐 몸에 잔뜩힘을 주었다. - P49
마케팅팀에는 인턴이 다섯 명 있었다. 팀장은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인턴들 이름을 자주 헛갈려 부르더니 어느 날은 키 순서에 따라 1, 2, 3, 4, 5로 부르겠다고 통보했다. - P51
"남은 기간 동안 좀비처럼 지내. 아니면 사람답게 지금 당당히 나가거나." 팀장의 말을 전해주자 신도는 미친듯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화를 내자 간신히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 P67
신도가 작게 속삭였다. 철새들이 커다란 브이자 형태로 늘어서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와, 나는 낮게 감탄하는 말을 내뱉었다. 남자가 우리 쪽을 힐끔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약하니까요. 약한 것들은 저렇게 몰려다녀야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죠." - P68
"저 새는 이제 네 거야." 보이지 않는 걸 내 것이라고 말하며 선심 쓰는 건 둘째 치고그건 좀 곤란했다. 펄럭이는 새를 가지면 마음이 너무 부푸니까. 그런 마음으로는 도무지 뭘 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말하지는 않고 신도를 따라 다시 인적 없는 둑방길을 걸었다. 신도가 잠깐 멈춰 서서 어둠에 잠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새는 보이지 않았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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