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치료 직후 자해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경우는 흔했다.
치료가 트라우마를 유발시키느냐고 묻는다면 이마치는 물론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 P239

이마치는 어둠 속에서 말했다.
"당신한테 너무 많은 빚을 졌어."
"당신은 아름다운 여자야."
기석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를 돕는 사람이고." - P240

"그럴 리가요. 프로그램의 시나리오는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드는 거예요. 주로 환자 개개인의 방어기제를 따라가게 되어있죠.‘ - P243

"아이를 집에 두고 출장 가는 길인데, 너무 많이 울고 보채서요. 달래느라 통화가 길어졌어요." - P247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고, 무엇보다 다른 서퍼들이 없으니까요. 전 겨울을 가장 기다려요. 가게는 적자도 뭐, 어차피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 P254

"그런데 그날 집에 올 때 말이야, 네가 있어서 좋았다. 넌 소리 없는 작은 동물처럼 내 옆에 있었지. 아무 존재도 아닌 것처럼, 마치 내 그림자인 것처럼, 숨만 내쉬며 내 옆에 있었어.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널 의지했다는 걸." - P262

쉬는 시간에 누군가 대기실로 오렌지를 가져다준다. 이마치는 이로 오렌지 껍질을 살짝 물어 흠집을 낸 후 손으로 쓱쓱깐다. 칼 없이 오렌지를 까는 법은 엄마에게서 배웠다고, 그여자가 가르쳐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쓸쓸한 말이지만, 오렌지는 달고 맛있다. 나도 이마치에게 오렌지 까는법을 배운다. 사방에 상큼한 오렌지향이 진동한다. - P272

모든 영혼에게 이런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신은 편애하는 자다. 이것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편파적이고 독점적이다. 비논리적이며 불공평한 것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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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마치는 그애에게 말했다. 그애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아 한번 더 말했다.
"어서 나와." - P176

"이 집은 안전하네. 누전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 P177

"아기 이름이 뭔가요?"
이마치는 겨우 그에게 물었다. - P202

이마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머니안의 두둑한 돈다발이 느껴졌다. - P204

"누가 이 비슷한 얘길 하던데요. 한물간 여자 배우가 놀라고당황해하는 걸 누가 보고 싶어하느냐고." - P213

"이게 다예요? 아니면 방안에 몇 명 더 있나요?"
"이 집엔 이게 다예요. 일곱 살, 마흔 살, 마흔세 살, 그리고지금 예순 살의 나." - P213

"당신이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이 안에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생명이 다하면 끝이죠. 죽음으로 모든 게 끝이에요. 알츠하이머는 그전에 당신을 놓아주라는 신호예요.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 - P228

"모래시계처럼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또 되찾을 겁니다.
다 쏟아져나갔다고 생각할 때 뒤집기만 하면 새로 차오를 거예요." - P235

개인 맞춤에 지속 기간이 짧은 VR 치료는 일명 귀족 치료라고불렸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인공지능은 학습을 반복해서 진실에 더 가까운 과거를 구현해냈다. 진실은 돈이 많이 들었다. - P236

그렇다고 해도 VR 치료를 중단하는 알츠하이머 환자는없었다.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쪽과 자신이 누군지를아는 쪽. 어느 쪽이나 지옥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지옥을 선택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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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 60층까지 오면서 이마치와 노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마치는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그때마다 재빨리 노아가 붙잡는 덕에 바로 설 수 있었다. 노아는 이제 그만 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 P134

"노아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지?"
이마치는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 P135

자신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을 거라고 이마치는 종종 생각했다. 과거에서 벗어날 기회, 완전히 새로워질기회. 그때 분명히 그녀 앞에 문이 열렸었다. 하지만 그녀는못 빠져나갔고, 문은 금세 닫혀버렸다. - P137

"그가 지금도 여기 있나요?"
그가 속삭이듯 물었다.
"아니, 지금은 없어." - P139

"이 건물은 끊임없이 학습해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당신이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알아차리면 그걸 반영해서 다시 구성되죠." - P141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하는 중이에요. - P147

"VR 치료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상현실체험이에요. 선생님은 연도별로 생애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가상의 건물에 들어가서 출구를 찾는, 일종의 사이버 게임을하게 되죠." - P149

•마치는 라파트명의 로고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 내 길은 어디죠? - P152

뭘 기다리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유령마저그녀를 영영 떠난 듯싶었다. 전에는 하루라는 거대한 공백을어떻게 채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 P156

남편은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서 걸을 때 피 나는 거 몰랐어?"
"몰랐어." - P159

지린내 나는 타일 바닥에 웅크려 눕자 더할 수 없이편안했다. 아이들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울면서 그녀를 불렀다. 이마치는 문을 열지 않았다. 곧 물에 잠기는 것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 P161

그녀는 자멸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신기했다. 이만큼의 절망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 - P169

너 같은 건 제대로 혼이 나봐야 돼. 아무 쓸모도 없는 년. 그때 네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애 대신 네가. 너는 맞아 죽어도할말 없어. 개 같은 년. 쥐새끼 같은 년. 도둑년. - P174

그는 제대로 짐을 푼 적도 없었다. 언제든 다시 떠날 준비를하고 기다렸을 뿐이다. 이제 돌아와도 된다고, 바로 지금이라고,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날을.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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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무서운 어느 초봄이었다. 감기에 걸려 고생중인 주위 사람들을 보며 외출을 망설이게 되는 나날.
그러나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 P19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고선경과 미래의 고선경이 원하는 걸 들어주느라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내 인생이 슈게임 못지않게 스릴 넘치는 거였군. - P22

복통이 있어 내과에 방문했다가 사이좋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할머니 두 분을 봤다. 자매나 친구처럼 보였다. 나도 늙어서 동생이나 친구 손 꼭 잡고 독감예방주사나 건강검진을 위해 내원하는 씩씩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졌다. - P24

나는 왜 나인가요?
아나는 왜 나를 관두지 못하나요?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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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초인종소리에 놀라 인터폰을 확인하니 모니터화면으로 웬 젊은 남녀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다 마스크를 써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가에 분명 웃음이 서려 있었다. - P99

-이거 세계과자점에서 이천 얼마면 사는 거네. 다 합쳐도스물몇 가구인데, 자기들 집값에 비해 너무 약소한 거 아니야? - P103

-・・・・・・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 P105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고 첫 수요일이 다가왔을 때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위층에서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진동과 굉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공사 소음은 하루종일 이어지다 독서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네시에 이르러 더 커졌다. 거실 형광등이 조각나 사방에 튀지 않을까 싶은 강도였다. - P108

-선생님...... 그렇게 가신 뒤로 시우가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요. 좀 도와주세요. - P113

-가게 평점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P119

이윽고 "땡"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순간을놓치지 않고, 밖으로 걸어나가며 손바닥에 묻은 알코올을 게시물 위로 스치듯 쓰윽 문질렀다. 알코올에 젖은 종이가 울고 글씨가 번지는 게 상상됐지만 고개 돌려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 P123

-그럼 혹시 저희 새로 이사하는 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나요? 여기서 약간 더 멀어져 말씀 여쭈기 죄송한데, 그래도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 P130

-자가래?
남편 말에 나도 모르게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별말 아닌데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 P136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 P140

-너 왜 되새김질을 하니?
저녁 식탁에서 미주가 기태에게 물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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