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침묵하다 고개 저었다. -아니야. 여기 물 찰 텐데 계속 비워내야지. - P277
물소리는 며칠 동안 계속됐다. 급기야 더 커진 듯했다. 지수는 종종 자신이 물방울이 되어 어디론가 낙하하는 꿈을 꿨다. - P280
여자의 팔자주름 위로 작은 미소가 어렸다. 카메룬 속담입니다. 내 친구가 알려줬어요. 한글학교 친구입니다. - P286
지수는 교재 한 귀퉁이에 연필로 무의미한 선을 그렸다. 문득 수호를 화장할 때 수호의 어머니가 화구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안 돼, 안 돼" 하고 오열한 기억이 났다. 장례 기간내내 끝내 자기 손을 한 번도 잡아주지 않았던 것도. - P288
그러자 어디선가 방금 전 낙숫물에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이 집에 일부러 흘리고 간 단어마냥 툭툭.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뚝뚝 흘러내렸다. - P294
아니 그래선 안 되는데, 언제나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게되어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 그들은 제 이웃을 제 돈과 같이 사랑하거나 그보다 덜 사랑한다. - P299
그걸 김애란은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86쪽) 빼앗고 또 빼앗기는 기분이라고, 도려내듯 적었다. - P303
물론 파티 참석자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대체로 우리는 나빠서 틀리는 게 아니라 몰라서 틀린다. - P305
이것은 SNS라는 전장에서 펼쳐지는 중산층 내 계급투쟁의 수줍은 ‘현피‘인데, 기태는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 P307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 ‘약‘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안녕을 위해 김애란의 안녕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313
마지막으로 점점 말과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마치 세상에 아는 말이 그것뿐인 양 가족의 이름만은 이따금 또렷이 발음하시는 아버지께, 딸이 새 책을 내고 신문에 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아버지께, 이제는 그가 읽을 수 없는 책의 한면을 빌려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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