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거 뽑는 사람이 데리고 나가기."
할머니가 고사리를 쥔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뽑은 줄기가 더 길었다. 할머니는 손에 남은 고사리를 양푼으로 던지더니보리차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라질, 갑시다, 똥누러."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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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거 뽑는 사람이 데리고 나가기."
할머니가 고사리를 쥔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뽑은 줄기가 더 길었다. 할머니는 손에 남은 고사리를 양푼으로 던지더니보리차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라질, 갑시다, 똥누러."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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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일단커피부터 한잔해 - P7

환자분.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잖아요. 환자분한테는지금 빈속에 커피가 제일 안 좋다니까요? 근데 왜 또 드셨어요. - P7

저에게 하루 24시간은요. 아이가 잠들어 있는 시간과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으로 나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 둘이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요. 아이가 깨기 전에 커피를 마셔야 해요. 엄마로서의 제가, 그러니까 공적인 이명희가 작동하기 전에 사적인 이명희를 위로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요. 아이가 깨기 전에 커피를 마셔야만 해요. 모처럼 신나게 몰입하고 있던 글쓰기를 중단하고 응, 엄마가 얼른 기저귀 갈아 줄게, 노트북 닫고 일어서야 할 저에게 커피 한잔 건네고 싶은 거라고요. - P13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테이블 위에 다시 내려놓은 유리잔이 우유 때문인지 한동안 뿌옇더니 점점 투명해지기시작한다. 조금씩 제 모습 드러내고 있는 유리잔을 바라보며 아마 학교는 여기로 정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23

삶의 모양이 갑자기 변한 누군가에 대해 제삼자가 꺼낼 수 있는 말이란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정도가 고작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 지경으로 몰아간 배경을 분석하기 위해 알고 있는 정보를 끌어모으고, 또 다른 누군가가벌받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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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할 일이 있었다. 며칠간 채운 캐스크까지 해서 서너 개는 족히 되는 걸 어깨 높이까지 오는 보관대에 올릴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어떻게 하냐고 하니 하진은 걱정 없는얼굴로 좀 있다 하면 된다고 말하고선 뒷정리를 했다. - P249

가장 큰 차이는 향이었다.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달콤하기만 한 향이 아니라 가볍고 신선한 향이 복합적으로 났다. - P257

근성으로 악다구니로 저 혼자 찾아가고 겪어 가면서 배워야지.
빠삭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내야 하고 그러고도 뭘 모르고있는지 계속 생각해야 하는 거지. - P258

두 달 정도 꼬박, 거의 잠도 줄여 가며 만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기다려져. 하진이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늘 맡아 오던 그 복숭아 향기가 훈훈하게 증류소를 가득히 채우면 시간이라는 걸 실감하게 돼. 한 해가 왔고 가는구나. 별로서글프지도 않게. 올해도 만들었으니까,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거니까. - P263

이어지는 말이기도 한데, 겸손하지 말라는 거였어. 겸손은 자기 것이 있는 사람들, 뭔가를 해 놓은 게 있는 사람들이 할 수있는 거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겸손한 건 비굴이나 아양과구분할 수 없다. 겸손하지 말고 그냥 친절해라. 호의를 받았으면 감사해하고 실수를 저질렀으면 사과해라. 불쾌했으면 불쾌하다고 말하고 지나친 요구를 받으면 그런 건 하지 않는다고말해라. 화를 내지도, 속상한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지도말고 강하고 단호하게. 아무 일도 없다면 가볍게 웃어라. 그저친절하게, 뭘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처럼 웃지 말고.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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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GOOD LIFE. 그녀는 그가 보내온 사진을 화장대 거울앞에 세워놓았다. 비스듬히 세워진 밤하늘 위로 수억년 전에 반짝였을 별빛들이 뒤늦게 쏟아지고 있었다. - P39

그녀는 그가 조금 어려웠다. 일곱살이나 많은 낯선 외국인 남성, 그것도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이종사촌과 갑자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누구라도 아마 자신처럼 막막한 심경을느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P42

봄이면 저 거리에 온통 꽃이 펴.
그녀가 말했다. 체리 블로섬,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진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마른 가지에서 또다시 움이 튼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그런 것뿐인지도 몰랐다. - P53

. 다만 밤 아홉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채 지지 않아 서울의 일곱시처럼 푸른빛을 띠던 하늘만은 신기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밤이었으나 밤이 아니었던 시간. 타지였으나 타지가 아니었던 도시. 우리였으나 우리가 아니었던 날들. - P69

타카히로는 억지 쓰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때가 아니었을 것은 확실하지만. - P74

이방인으로 평생 사는 건 외로운 일이야. 내 말에 짧은 침묵을 두고, 그가 말한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외로운 일은 없어.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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