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할 일이 있었다. 며칠간 채운 캐스크까지 해서 서너 개는 족히 되는 걸 어깨 높이까지 오는 보관대에 올릴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어떻게 하냐고 하니 하진은 걱정 없는얼굴로 좀 있다 하면 된다고 말하고선 뒷정리를 했다. - P249
가장 큰 차이는 향이었다.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달콤하기만 한 향이 아니라 가볍고 신선한 향이 복합적으로 났다. - P257
근성으로 악다구니로 저 혼자 찾아가고 겪어 가면서 배워야지. 빠삭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내야 하고 그러고도 뭘 모르고있는지 계속 생각해야 하는 거지. - P258
두 달 정도 꼬박, 거의 잠도 줄여 가며 만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기다려져. 하진이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늘 맡아 오던 그 복숭아 향기가 훈훈하게 증류소를 가득히 채우면 시간이라는 걸 실감하게 돼. 한 해가 왔고 가는구나. 별로서글프지도 않게. 올해도 만들었으니까,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거니까. - P263
이어지는 말이기도 한데, 겸손하지 말라는 거였어. 겸손은 자기 것이 있는 사람들, 뭔가를 해 놓은 게 있는 사람들이 할 수있는 거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겸손한 건 비굴이나 아양과구분할 수 없다. 겸손하지 말고 그냥 친절해라. 호의를 받았으면 감사해하고 실수를 저질렀으면 사과해라. 불쾌했으면 불쾌하다고 말하고 지나친 요구를 받으면 그런 건 하지 않는다고말해라. 화를 내지도, 속상한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지도말고 강하고 단호하게. 아무 일도 없다면 가볍게 웃어라. 그저친절하게, 뭘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처럼 웃지 말고.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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