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7일, 내 독서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화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엄마와 나>

2004. 12. 15. 1판 1쇄 / 도서출판 보리

ISBN 89-8428-191-3 / 9,000D원 / 2005. 1. 6~7

 

 

<문제아><새끼개><어미개>의 작가로 다가온 박기범의 최신작으로 소개되어 바로 주문하여 단숨에 읽어나갔다. 소재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눈물겹게 공감되었고, 힘들게 사신 엄마 이야기에 눈물이 많이 났다. 어머니들은 '내가 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거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바로 박기범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한글을 모르는 어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점과 해결책을 같이 제시한다. 자기 어머니에게 일기 쓰기를 권하며 어머니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은대로 자기 일기에 써 내려간 효자 아들이다. 그래서 하루 일기의 분량이 엄청나게 많다.

  2000년 전태일 문학상 생활글 부분 수상작이다. 심사위원이었던 이오덕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우리말과 글 살리기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본보기가 되었다. 초등생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나는, 박기범씨의 글쓰기 방법과 생각에 많이 공감되고 배운점이 많다. 그에 더하여 나의 부끄러움도 깨닫게 한 책이다. 나도 더 나이 먹고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면 한글학교에서 봉사하고 싶은 사람이라, 미래의 내 모습을 덧씌워 보며 그때 나도 이렇게 해야지 다짐도 해 보았다. 박기범 작가, 이 분의 책은 다 사주고 싶다.

 

'박기범 작가, 이 분의 책은 다 사주고 싶다.'라고 썼는데,
<문제아> <새끼개> <어미개> <거꾸로 생각해 봐> 이후에 박기범 작가의 책을 더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ㅜㅜ

 

<미친 개> <어린이와 평화> <낙타굼>은 장바구니로~

 

 

 

 

 

 

 

 

독서노트를 들춰보면서 2005년은 착실하게 독서록을 썼구나, 새삼 발견! 뭐하러 ISBN까지 적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감동받아서, 2005년 3월 초등학부모 독서회 토론도서로 선정해 엄마들과 같이 읽고 토론했는데, 젊은 엄마들은 고생을 안하고 살아서 그런지 나처럼 감동을 받지는 않았더랬다. 또 글쓰기도 자기들이 별반 신경쓰지 않아서 그랬는지 나처럼 공감하지도 않았고... 대체적으로 반응이 심드렁했다고 기억되지만, 나는 2008년 말부터 대단했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상으로 좋았다. 엄마를 부탁해는 소설이지만, 박기범의 <엄마와 나>는 소설이 아닌 실화니까 더 찡하다.

 

아들은 어머니학교 선생이고, 엄마는 학생인 이들 모자는 하루를 마친 한밤에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일기를 쓴다. 아들은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누구한테 보인다 생각하지 말고요, 부처님 앞에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써 보세요. 나는 이번 생에 사람 몸을 받아서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엄마가 속상했던 얘기도, 설움받았던 얘기도, 후회되는 것도 그대로 쓰는 거에요. 빼놓고 숨기지도 말고, 부풀리지도 말고요. 찬찬히 편안하게 쓰면 돼요."(22쪽)

 

하숙집을 하며 시간을 쪼개에 어머니학교에 다니는 엄마는, 짤막한 일상 일기를 쓰다가 엄마가 가장 쓰고 싶은 것부터 쓰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 나중에는 당신의 삶을 쓴다. 글자를 쓰는 일이 더뎌 생각을 따라 잡지 못해서, 엄마는 아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줄줄 풀어낸다. 아들은 엄마가 나한테 한 이야기를 그대로 글자로 써 보라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엄마는 짧게 써 놓았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행여 누가 볼까봐 겁나고 두렵다고....

 

7월 14일 수요일, 맑음.

서울 어머니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였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틀렸다. 평소 아는 것도 잘못 써서 그랬다. 선생님한테 미안하고 챙피하였다. 받아쓰기할 때 마음이 떨린다. 집에 와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집안일 하다 보면 할수가 없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1월 12일 금요일, 맑음.

어머니학교에 오면 재미있다. 공부하는 게 수준이 비슷하니까 어머니들이 한 마디 한 마디가 재미있다. 다 같이 금방 가리처 준 것도 똑같이 모른다고 하니 말이야. 선생님은 답답하겠지. 왜 그리고 깜빡깜빡하는지 여러 가지 신경을 쓰니까 그런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숙제가 많다.

 

11월 15일 월요일, 맑음

여러 날 지나서 오늘 단학 수련 갔다. 수련 마치고 어머니 학교에 갔다. 남양자 어머니가 고사떡을 싸 가지고 와서 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 교과서 책이 거이 다 배운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받침을 익히지 못했다. 걱정이 된다. 모두가 알쏭달쏭하다. 언제나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23쪽)

 

이렇게 짧은 일기를 쓰던 엄마는 나중에는 길게 살아온 이야기를 쓴다. 물론 아들한테 한 시간이 넘게 들려준 것보다는 짧지만... 어머니도 아들과 같은 해(2000년)에 '살아온 이야기'로 상을 받았는데, 수록된 어머니 글은 그걸 조금 따서 실은거다.

 

엄마가 쓴 살아온 이야기

 

우유 배달한 지 한 달이 되어 수금해서 입금하고 나니 8만원 정도 남았어요. 그 때 한 달 생활비를 8만 원 애들 아버지한티 탔는데 너무 가슴이 부듯하고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시장에 가서 아들 둘을 청바지 청 잠바를 사서 입히고 열심히 했지요. 그러다 주택은 너무 힘들고 수입도 적고 해서 자리를 옴겨 구밤포로 갔지요. 방배동에서 새벽에 구르마에 잔뜩 싫고 밀고 가다가 팔이 아파서 쉬며는 꽉 잡았던 손이 펴지지를 안아서 한참 손을 손끼리 부비며 손을 주무르고 또 밀고 가곤 했지요. (.....) 남는 우유 파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우리 우유 안 넣는 집 벨을 눌러 우유 몇 개만 사세요 하면 어떤 집은 화를 내며 문을 꽝 하고 닫고 어던 집은 몇 개 사시고 팔아주시면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지요. (222쪽)

 

작가의 어머니 뿐 아니라 이 학교에 와서 글을 배우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고 아리다. 글을 몰라서 죄인처럼 움츠러들고, 두려움까지 안고 살았던 어머니들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박기범 작가는 일기를 쓰면서 엄마에게 나쁜 사람이었던 아버지도 자식들에겐 당신의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걸 깨닫는다. 아들에게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안부 한 번 걱정해보지 않았던 아들이라는 것...

 

나는 엄마를 살리고 싶었다. 엄마의 아픔을 구석구석 어루만지고 싶었고, 엄마의 삶을 그대로 살려 내고 싶었다. 그것뿐이다. 지금 아빠를 괴롭히겠다거나 아빠에게 그만한 아픔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제 와서는 모두 안된 사람들뿐이다.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아빠도, 엄마도, 기연 엄마도, 형도, 나도, 기연이도. 어쩌면 지금은 아빠가 가장 괴로울 거다. 거꾸로 엄마 마음은 가장 편안하고 말이다. (231쪽)

 

박기범 작가의 엄마와 나, 그리고....

나와 친정엄마, 나와 시어머니...

무궁무진한 우리들의 '엄마와 나' 이야기를 길어올려줄 두레박 같은 책이다.

늘푸른 작은도서관에서 마을 할머니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한글학교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다시 읽었다.

3월 8일까지 작은도서관 사업계획서를 구청 교육지원과에 접수하고

심사를 거처 선정되면 사업비를 지원받는데....

어머니독서회는 올해 사업지원비를 받지 말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작은도서관으로 사업지원을 받을까 생각이 복잡하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2-03-0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뭉클해요.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따님분의 글을 읽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우울하던 중 이런 글을 읽으니 좀 마음이 따사로워져요. 부모님들이 천년 만년 건강하게 살아 주셔서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면 좋겠지만 그것도 참 큰 욕심인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살아오신 생을 정리하고 회한도 풀어 들리고 박기범 작가의 생각이 참 놀랍고도 감동적이네요.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2-03-0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을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학교! 좋은 일이네요.
박기범의 '문제아'만 읽었더랬어요.
도서관으로 사업지원비 지원 성공되면 좋겠어요, 오기언니^^

소나무집 2012-03-0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 학교! 저도 한표예요.
의외로 할머니들 중에 문맹이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2-03-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언니... 머리 진짜 복잡해지시겠는걸요. ㅠㅠ
할머님을 위한 한글학교를 구상하신다는 말씀에, 저는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단 말씀이셔요? 으아..... (기 죽었어요. ^^)

언니, 무엇을 하시든, 건강이 최우선이니, 여유도 갖고 하시기를.... 즐거운 일 가득한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하늘바람 2012-03-0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멋지고 근사한 생각으로 가득한 언니
늘 제가 부끄러워져요.
오기 언니가 하는 모든 일을 저는 응원합니다

수퍼남매맘 2012-03-0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나>궁금해져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미친 개>읽고 먹먹해졌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순오기님은 언제나 아이디어가 넘치세요.

같은하늘 2012-03-06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기언니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하세요.
거기에 실천력까지 더해지니 안되는게 있을까요?^^
저도 언젠가는 광주의 작은도서관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내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광주~~~

2012-03-06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3-0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렁주렁 댓글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 프로그램 생각하느라 일일히 답글 못 달아요~ 이젠 동시상영이 안되거든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