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일어나 봉창 두드리기 2탄, 난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 피곤해서 일찍 자면 꼭 신새벽에 일어난다. 아마 4~5시간 자면 깨는 것 같다. 그러면 알라딘 들어와 여기저기 들러보며 흔적을 남긴다. 댓글로 안면을 안 튼 사이는 그냥 눈팅만 한다. 그러다보면 두어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이러느라 알라딘 마실 다닌 뒤부터 책도 많이 못 읽는다.ㅠㅠ 그런데 이거 은근, 아니 확실히 중독이다!

 오늘 세실님이 소개한 공지영의 책을 보고, 우리 딸 생일에 주려고 바로 주문했다.   "엄마가 읽고 감동받았던 책의 내용 혹은 좋은 구절을 소개하면서 딸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녀 사이가 있을까? 딸에게 바라는 것, 꼭 이루었으면 하는 것을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면 갈등과 대립은 존재하지 않겠지. 제목처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하고 딸에게 하루에 한번씩 힘을 실어 준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이 귀절이 내마음 같아서.......

우리 큰딸은  '즐거운 나의 집'의 위녕이처럼 교대를 갔고, 2월 22일 올라간지 두 달만인 다음 주말에 집에 온다. 2,4학년들의 현장실습이라 1.3학년은 한주간 가정학습이란다. 과제물을 한아름 안겨준다지만, 그래도 학교 안가고 놀 수 있다면 학생에게는 최고일 것이다.^^ 게다가 제 생일이 들어있으니 최고의 스케줄 아닌가! 우리 큰딸 이름이 '민주'가 된 까닭이 바로 생일에 있다.

스물아홉을 넘기지 않으려고, 20년 전만 해도 스물아홉 넘으면 큰일날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선을 봤다. 마침 큰언니랑 이웃에 사는 시누이가, 언니가 착하니까 셋째인 나도 착할 거라 생각하고... 우리 아버지 회갑잔치에 와서 보고는 중매를 했다. 어려서부터 멀리 시집간다고 했던 난, 말이 씨가 되었는지 목포 사람과 인연이 닿았다. 그것도 오빠가 결혼했으니 올해는 시집가야지 생각하고, 3월말까지 뭔가 엮이지 않으면 결혼하지 말아야지 작정기도한 3월 말일날 '선보라'는 전화가 왔으니,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아~ 이사람, 하나님이 맺어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인연은 이렇게 코가 꿰거나 콩깍지가 씌어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진리다.ㅎㅎ

3월 31일 중매가 들어와 4월 5일날 만나, '이 나이에 내숭떨겠냐' 싶어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생각했다. 인천 자유공원을 거닐며 하고 싶은 말 다했고, 당시 상영하던 영화 '브로드캐스트뉴스'까지 보았다. 난 취미나 특히 영화적 취향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 검증했는데 합격점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우리 식구들, 저 승질에 휑 걷어차고 안 들어오는거 보니 마음에 들었나보다 점치고 있었다. 다음엔 내가 서울가서 만났는데, 별로 뚱뚱하다 생각지 않았는데 커피숍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 꽉~ 차더라니 헉! 다 제눈의 안경이다. 큰언니가 "얘, 그사람 뚱뚱해서 괜찮겠냐?" 걱정해도 "별로 안 뚱뚱하던데..."라고 했으니, 내 발등 내가 찍었다.ㅎㅎㅎ 

당시 유치원을 그만두고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교회도서관에서 일을 하던 나를 만나기는 수월치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내려와 심야나 주말에 만나고 곁에 살던 누이집에서 자고 서울로 출근하는 열성을 보여줬다. 중매라는 게 시간을 끌면 안된다는 어른들 생각에, 약혼을 의논하러 만났던 양가 어른들이 결혼시키자며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만난지 딱 두달만인 6월 6일 현충일(당시엔 독실한 크리스찬인 내가 주일성수를 고집했기에) 그것도 목포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막내 아들 혼인은 당신쪽에서 하고 싶단 말씀에 친정아버지가 흔쾌히 승락했으니, 우리 쪽에선 관광버스 한대에 탈 수 있는 인원만 목포까지 와서 축하해주었다.

하여간 이런 인연으로 제주도 돌하루방 -코를 만지면 아들이고, 이마를 만지면 딸이라 했던가?- 을 만지며 첫딸을 기원했다. 여름이 지나 남편 직장동료를 초대했을 때, "어이~선서방, 더운데 고생했네!" 라는 말에 얼굴 붉히며 입덧을 하고 있었다. 통계학적으로 봄에 태어난 아이들이 영리하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 난, 내 아이들을 봄에 낳기 위해 작전을 짰고 공을 들였다. 음, 그래서 삼남매를 2,3,4월에 낳았다.ㅎㅎㅎ(아가씨들은 나중에 필요하면 물어보삼^^)

인천에서 살려고 목포까지 가서 결혼식을 했는데 6개월만에 남편이 광주로 발령났고, 만삭이 된 나의 광주살이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출산 예정일 1989년 4월 19일 새벽부터 진통이 왔다. 첫애는 쉽게 낳지 않는다고 학습된지라 아침에 시어머님께 전화드리고, 여유있게 목욕에 점심까지 먹고 병원으로 갔다. 시누이가 애기 낳으면 못 먹는게 많으니 제일 먹고 싶은 걸 말하라며 차를 세웠다. 첫 애 낳으러 병원가던 순오기, 아이스크림을 골랐고 야금야금 먹으며 마침 전남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는 시대적 상황이 최루탄을 쏘아대던 때였다. 최루가스가 엄청 진동하니 차문을 올리고, "아~ 우리딸을 민주라 하자!" 남편의 한 마디에 나를 비롯한 시어머니, 시누이 만장일치로 우리딸 이름은 '민주'가 되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先 민주 後 통일'이었는데, 우리 남편이 선(宣)씨였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하늘이 노랗다 못해 새까매져도 나올줄 모르던 우리 딸, 24시간의 진통 끝에 4.19를 넘기고 20일 새벽 한시에 낳았지만 이름은 '민주'라고 지었다. 그래서 첫딸은 선민주가 되었고, 4년 뒤에 태어난 둘째인 아들녀석은 아명이 '후통일'이었다. 하지만 민주의 한자어는 할아버지가 뜻과 획수를 맞추어 民主가 아닌 旼周로 지어주셨다.^^ 민주가 초등고학년이 되면서 사회시간에 '민주'가 나오니 이름을 바꿔달라 했고, 초등때는 어떤 이름을 가져도 놀림거리가 된다. 게다가 네 이름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름인데...라며 설득했고, 어렴풋이나마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며 자기 소개에 인용하기도 했다. 작년에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서는 "엄마,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길거야. 내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을거야!"라며 감격의 말을 토했다. 

이제 민주는 대학생이 되었고, 지난 3월 28일 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 및 시민단체의 '등록금 해결 범국민 촉구대회'가 있었다. 전날 딸과 통화해보니 총학생회 투표로 모임에 동참하기로 결정됐는데, 학교에선 집회에 못 가게 하느라 결강하는 학생들은 불이익을 준단다. 게다가 체포조를 투입한다는 살벌한 소식도 들리지만, 딸 이름을 '민주'라고 지은 엄마의 양심상 가지 말라고는 못했다. 네가 고민하고 후회없이 결정하라는 정도의 조언 밖에는... 그날 수업이 중요과목이었다는데 집회날 현장에서 문자를 보내왔다. '전국에서 모든 대학들이 참여했고 민노당 의원 연설중이고 기자들도 엄청 많아~' '위험한 일은 없고 여기 있으니까 일반대 가고 싶어져...'  음~ 그래도 제 이름값 하느라고 집회에 동참했구나 싶어, 대견하고 기특했다. 우리딸 민주가 부르짖어야 할 '민주'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아 참으로 심란하다.

-목포사람 김지하가 부르짖었던 '타는 목마름으로'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부여사람 신동엽 시인이 읊은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우리 아들과 딸은 더 이상 이런 구호를 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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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딸년 생일인데...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4-20 12:14 
    엄마 품 떠나 미역국도 못 얻어 먹을까봐,   에미 맘이 짠해서 올케한테 미역국이나 끓여주라고 부탁했는데...  올케는 미역국만 끓일 수가 없었던 거다.  오늘 어린이집 아이들 소풍가는 준비로 바쁘고 힘들었을 텐데  어젯밤 늦게 들어와 미역국에 잡채까지 하고 케익도 샀다는데  정작 당사자는 외박했다는 이야기.    우리 동생은 제 각시한테 미안하고 입장이 난처했던 모양.
 
 
도넛공주 2008-04-1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멋진 글입니다.....

순오기 2008-04-11 19:29   좋아요 0 | URL
멋지기까지야 하겠어요~ 좋게 봐주신 공주님께 감사^^

마노아 2008-04-1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가 되어버린 이름이에요. 나중에 자서전 쓸 때 꼭 삽입될 내용이구요. ^^
김지하 시인의 저 시를 볼 때면 매번 눈물이 솟아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아자아자!

순오기 2008-04-11 19:37   좋아요 0 | URL
저 이름만큼 많은이들이 사랑하고 그리워할 이름도 없겠죠?ㅎㅎ
자서전에 들어갈 필수 항목이죠.^^
타는 목마름의 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 불안함... ㅠㅠ

뽀송이 2008-04-1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 하나 헛투르 하지 않는 님이 존경스럽습니다.
큰딸 '민주'의 이름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목이 터져라 부르짖어야 할 민주가 많다는 게 마음 아픕니다.ㅡㅜ
순오기님~~ 따님이랑 행복한 시간 보내셔요.^^
그 동안 엄마밥 그리웠을텐데 맛난 거 많이 해주시구요.^^

순오기 2008-04-11 19:3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4.19에 나오려고 했으니 이름이라도 '민주'라고 붙여줘야죠.
두달만에 와서 한 주간은 집밥 먹고 가겠죠~ 지 먹고 싶다는 거 해주어야죠.^^^

프레이야 2008-04-1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렇게 계획출산이 되던가요? 역쉬 우리 오기언니는 대단해요^^
선민주, 이름에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옆지기님도 멋집니다.
민주의 대학생활이 소신있고 보람되기를 바래요.

순오기 2008-04-11 19:41   좋아요 0 | URL
둘째까지는 계획출산, 막내는 때도 아닌데 덤으로~ ㅎㅎㅎ
성이랑 딱 어울리는 이름이죠~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죠. 소신있는 대학생활~~~~ 감사해요.

bookJourney 2008-04-1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가족이에요~ 순오기님 가족 모두에게 박수를 !!!

순오기 2008-04-11 19:42   좋아요 0 | URL
우린 나름대로 심지는 있지만, 어떤 때 제멋대로 가족이에요.^^

무스탕 2008-04-1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큰애가 지성이라는 이름을 갖는 순간 작은애는 정성이가 되어버렸어요.
큰애 낳을때 둘째 이름까지 정해버린거죠 ^^
민주..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름이네요!!

순오기 2008-04-12 06:12   좋아요 0 | URL
지성과 정성, 멋진 이름이에요.
제 친구 아이들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뜨거운 이름 '민주'를 곁에서 만지고 느끼는 대한민국이 되겠죠!

비로그인 2008-04-1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국어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들어오시자마자
껍데기는 가라...하고 칠판에 시를 적어주셨죠.
그 이듬해에 박종철이 고문당해 죽어서 시국이 하수상할 때였는데
학교가 신생학교라 그분 뿐만 아니라 젊은 선생님들이 모두 한마디씩 내뱉듯 하셔서 그러려니 했거든요.
그러다가 결국 선생님 한 분이 학교를 그만두시고,
차례 차례 그만두는 선생님이 생겼어요.
그분들을 다시 뵙지는 못했구요.

'민주'는 엄마를 닮아 분명한 뜻을 지녔을거에요.

순오기 2008-04-12 06:14   좋아요 0 | URL
그런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만큼이라도 됐겠죠~~ 감사
'똑' 부러지는 소신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기를...

웽스북스 2008-04-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타는 목마름으로)가 문학 교과서에 나왔을 때
감격에 들뜬 목소리로 읽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해요

아까 회사에서 이글 디게 재밌게 읽고는 이제 덧글 달아요 흐흣
가만보면 순오기님도 입담이 정말 장난이 아니세요 ㅎㅎ

순오기 2008-04-12 06:15   좋아요 0 | URL
선생님들의 역할이 참 크고 위대하다 싶어요.

재미있었나요? 스물아홉(정확히는 모르지만) 공감모드는 아니고요~~~~ㅎㅎㅎ

라로 2008-04-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예쁜 이름인줄 알았더니 그렇게 깊은 뜻이!!
민주는 엄마를 닮아 분명 소신껏 잘 할거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광주모임하시면 저두 꼭 불러주셔야 해요~.^^;;;
자주 못들어 온다고 빼시면 저 엄청 섭섭할거에요!!(협박~.^^;;)

순오기 2008-04-12 06:16   좋아요 0 | URL
나비님께는 문자로 알려드릴게요~
이렇게 가금 00집 인터넷으로 만나요.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