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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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전은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얇고 재미진 것을 주로 읽으라'는 주변 지인분의 조언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바로 이 책! 얇고 작은 책을 골랐죠. 헤밍웨이하면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가 떠올라 선뜻 들 수 있는 책은 아니예요. 하지만 언제부터 '고전'에서 가독성을 기대했나... 싶죠.ㅎㅎㅎ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조금 더 곱씹어 읽기로 한 책으로 간주하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나마 이 책은 굉장히 얇으니까요.^^


수록 작품은 다음처럼 5편의 단편입니다.

- 깨끗하고 밝은 곳

- 살인자들

- 병사의 집

- 킬리만자로의 눈

- 프랜시스 매코어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하나하나 제가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 해 볼게요.


<깨끗하고 밝은 곳>

... 물론 불빛도 중요하지만 꺠끗하고 아늑해야 해. ... 도대체 그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도 공포도 아니야. 그것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허무라는 거지. 그것은 모두 허무였고, 인간도 한낱 허무에 지나지 않거든. 모든 것이 오직 허무뿐, 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깨끗함과 질서야. 허무 속에 살면서 전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 p.15


"불빛도 꽤 밝고 기분도 좋긴 한데 스탠드를 제대로 닦지 않았군." 웨이터가 말했다. p.16


마감시간까지 브랜디를 마시며 앉아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젊은 웨이터와 나이든 웨이터는 대화를 나눕니다. 젊은 웨이터는 마감시간이 임박함에도 바의 종업원을 배려하지 않는 노인에게 싫은 내색을 하죠. 한편 나이든 웨이터는 노인의 심정을 이해해요. 그 나이엔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라고요. 단지 그(노인)에게 밝을 뿐 아니라 깨끗하기도 한 곳이 필요할 거라고요. 나이든 웨이터도 자신의 바를 정리하고, 다른 바에 들어가 젊은 바텐더의 술을 받아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술을 마시는 그 바는 밝지만 깨끗하지 않다고 읊조리죠.


나이든 이와 젊은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은 누려보지 않은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대체로 누릴 건 누려봤기 때문에 모든 것에 흥미를 잃게 마련이니까요. 어느 면에서 '깨끗하고 밝은 곳'이 필요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젋은이와 나이든 이의 관점의 차이는 지금이나 그때나 뚜렷하게 보였어요.


무엇보다 헤밍웨이는 부자들을 자신의 소설 속 인물로 많이 배정해두었어요. 굳이 '부자'라고 그 사람들을 알려 주죠.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나이가 들면 '죽음' 앞에 자신에게 남은 건 나약하고 허망함 뿐인 걸 보여주는 것도 같아요.


<살인자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남자 둘을 손님으로 맞이합니다. 이 두 남자, 종업원 닉에게 시덥지 않은 요구들을 하죠. 급기야 주방장까지 부릅니다. 그리고 둘은 묶고, 한 명에겐 손님을 받지 말라고 지시해요. 자신들은 올래 안드레슨을 죽이러 왔다면서요. 결국 안드레슨은 식당에 오지 않았어요. 종업원들은 안드레슨의 집에 가서 그에게 그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알리기로 합니다.


전 여기서 궁금했어요. 물론 이 일.. 안드레슨에게 알릴 수 있죠! 하지만, 어쩌면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며 안드레슨에게 알리러 가는 거잖아요. 그 두 남자가 다음 날도 들이닥치거나 주변에서 맴돌다가 안드레슨의 집에 가는 종업원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요? 안드레슨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이 종업원들에게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 종업원들이 이런 일까지 감수하는 걸까? 궁금했어요. 안드레슨을 향한 주변의 평은 이렇습니다. '참 좋은 분', '참 점잖은 분', '권투 선수' 등이요.


그렇게 닉이 뛰어가서 안드레슨에게 알리지만, 안드레슨의 반응이 더 기가막힙니다. 놀라기는 커녕 심드렁해요. 도망다니기도 귀찮대요. 오히려 주변인들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뻔해보여서 안쓰러워합니다. 그리고 종업원 닉은 이 지역을 떠나기로 하죠. 그의 죽음을 볼 수 없다고요.


이 책의 끝이 제겐 허탈했긴 해요. 그래도 이 짧은 소설이 뭐라고. 안드레슨은 과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올까 긴장감이 감돌더라고요. 식당의 종업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고요. 헤밍웨이가 안드레슨 집의 여인을 집주인으로 안 하고 굳이 집을 돌봐주는 벨부인으로 바꿔치기(?) 한건 왜일까 질문도 들고요. 상황을 상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병사의 집>

1917에서 1919년까지 참전한 한 대학생 크레브스의 이야기입니다. 참전하고 귀환했지만, 다른 병사들보다 늦게 돌아와서 아무도 자신을 환영해주지도, 파티를 열어주지도 않아요. 자신의 모든 시작인 고향에서 그런 상황을 맞딱드린 크레브스는 고향에서의 모든 것에 무기력한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 자신에겐 아직 전쟁의 잔재가 머리 속에 남아있는데, 고향에서의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가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재촉합니다.


대학생이면 엄청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나이에 뭣도 모르고 참전 용사로 전쟁에 나갔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어쨋든, 살아서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의 수고와 고생을 인정해주지 않죠. 그의 심경을 깊히 헤아릴 순 없지만, 허탈하고 의욕없는 삶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한편, 제가 아들 엄마인지라 크레브스 엄마의 입장에서도 잠깐 볼 수 있었는데, 그 입장에선 살짝 속이 터지기도 하고요. ^^;


자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크레브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동생, 그리고 아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응원해도 아들이 다시 일어나 주길 바라는 엄마... 혹시 참전한 경험이 있던 헤밍웨이가 겪은 상황은 아니었을까요? 아버지와의 대화는 쏙 빠져있습니다. 그건 또 왜 그럴까요? 참전 병사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는 좀처럼 보지 못한 이야기라 새로웠던 단편이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는 많은 작품에서 '죽음'과 '허무'를 많이 본 작가 같아요. 그 사이엔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부자'가 꼭 등장합니다. 여기서도 등장해요. 바로 주인공 '해리'의 아내죠.


해리는 작가입니다.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작품으로도 유명해진 작가로 보여요. 한때 깊이 사랑하던 여자도 있었지만, 이젠 한 여자에게 정착했어요. 그건 그녀가 '부자'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다 중년 여성치고 아름다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그런 그 여자와 함께 아프리카에 갔어요. 거기서 다리를 다치고, 제대로 처치하지 못한 모양에요. 결국 (파상풍인지 몰라도) 죽음에 달합니다.


해리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게 많은 작가였습니다. 이제 안정적인 삶에서 자기가 원하고 꿈꾸던 작품을 쓰는가 했는데, 이렇게 허탈하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어요. 죽음 앞에 그의 본능은 폭발합니다. (말이지만) 거칠고 폭력적입니다. 삶을 놓치고 싶지 않고,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태도답죠. 여자는 내일이면 비행기가 올 거라고 위로하지만, 결국 해리는 죽고말아요. 그가 말한 죽음처럼 그는 옛 친구의 모습을 가진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랫 문장이 읽는 제게도 소름돋았어요. 마치 죽음을 본 적 있는 사람처럼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죽음'을 표현했죠? 그(작품속 주인공 해리)의 작품 속에 나온 킬리만자로 눈처럼 그는 그것을 보며 죽게 됩니다. 그(해리)의 작품들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요.


"사신이 큰 낫과 해골바가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 말아요. 자전거를 타고 오는 순경 두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새가 될 수도 있어요. 아니면 하이에나처럼 큼직한 주둥이가 있는 놈일 수도 있죠."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바야흐로 죽음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무런 형체도 없었다. 다만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p.83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프리카에서 사냥의 모습, 그리고 한 공간에서 야생동물과의 어우러진 삶이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미국적인 작가에게서 '아프리카'의 모습이라? 모험에 강했던 '헤밍웨이'니까 가능했겠다 싶은 요소에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이 작품 또한 아프리카에서의 사냥이 나옵니다. 위의 소설보다 조금더 생생하게 사냥의 모습을 보여주죠. 어느 동물보다도 무섭기로 알려진 '사자'가 이 작품에서 큰 공포를 자아내죠.

이 작품에서는 매코머가 부자입니다. 아내 마거릿은 아름다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인으로, 매코머가 부자이기 때문에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사냥을 하는데 조력자인 윌슨은 이 부부 사이에서 긴장감을 갖게하는 인물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부자일 것으로 예상되는 매코머이지만, 사자 앞에서 줄행랑을 치며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윌슨도 아내도 그 앞에서는 추켜세우지만 실은 우습게 여기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는 사자 사냥이었지만 간신히 마치게 되요. 다음 날엔 물소를 잡는데 성공을 하며 자신감을 찾는 매코머입니다. 가장 큰 물소 한 마리를 추격하면서 이젠 사냥에 강렬한 의지를 보이는데요. 겁쟁이었던 그가 이젠 달라진 걸까? 싶은데, 정말로 어이없게 그가 죽고 말아요. 왜 일까요?^^


세번째로 이야기하지만, 헤밍웨이의 이 단편들에선 유독 부자들이 많이 보여요. 그들의 모습은 부유한 만큼 인격과 행실이 뒷받침 되고 높은 자존감을 가진 인물이기보단, 나약하고 의존적인 모습들이 자주 보여요. 술에 의존하고, 남자에 의존하고, 어떤 성취에 의존하죠. 헤밍웨이가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런 부자의 모습을 내비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제게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책 이후 이 책으로 두번째 만났다고 볼 수 있어요. 하드보일드한 문체가 사실 거친데다, 아주 재밌다고 느껴지진 않긴 한데요. 사실적인 측면에서 긴장감이 들고,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여 독자 주관으로 작품을 해석하게 될테니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재미가 나름 있긴 해요. 그의 삶을 이해하고 본다면 흥미롭게 볼 내용이 풍성하기도 할테고요. 그런 의미로 이 책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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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6-12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고 자세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 한 주 잘 시작하시길요!

렛잇고 2023-06-12 14:46   좋아요 1 | URL
서곡님 귀한 시간 제 리뷰 읽는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행복한 한 주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