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오디세우스!
그토록 덕성스러운 아내를맞이하다니. 그대는 정말 행운아요! 이카리오스의 딸, 그대의 흠잡을 데 없는 아내, 페넬로페는 얼마나 정숙했던가! 젊은 시절 보았던 지아비의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했던가! 그 눈부신 미덕은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 터, 불멸의 신들도 열녀 페넬로페를 기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지어 인간들에게 두루 들려주실 거요-『오디세이아』 제24권 (191~194)

그는 배에서 쓰는 굵은 밧줄을 집어들더니 한쪽 끝을 주랑(柱廊) 현관의 기둥 꼭대기에 묶고 반대쪽 끝은 
둥근 정자 너머로 던져 여자들의 발이 땅에 닿지 못하도록 높이 비끄러맸다. 그리하여 덫에 걸린 개똥지빠귀나 비둘기처럼 그녀들은 저마다 목에 올가미를 단단히 휘감은 채 머리를 나란히 하고 한 줄로 매달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잠시 그들의 발이 움찔거렸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오디세이아』 제22권 (470~473) - P13

나는 교수형을 당한 열두 명의 시녀와 페넬로페에게
화자의 역할을 맡겼다. 시녀들은 합창단이 되어 주로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그것은 오디세이아』를 정독하고 나면 자연히 떠오르는 의문들이다.
시녀들이 교살된 까닭은 무엇인가? 페넬로페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디세이아』에 실린 이야기는 물샐틈없이 논리정연하지 않다. - P17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물은 저항하지 않아. 물은 그냥 흐르지. 물 속에 손을담가도 그저 그 손을 쓰다듬으며 지나갈 뿐이야. 물은 딱딱한 벽이 아니라서 아무도 가로막지 못해. 그렇지만 물은 언제나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야 말지. 물을 끝까지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리고 물은 참을성이 많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닳아없어지게 하지. 그걸 잊지 마라, 내 딸아, 너도 절반은 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장애물을 뚫고 갈 수 없다면 에둘러가는 거야. 물이 그리하듯이." - P68

그렇다고 텔레마코스를 보살피는 일을 차마 그녀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텔레마코스는 끝없는 기쁨의 샘이었다. 누가보면 친자식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오디세우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헬레네는 아직도 아들을 못 낳았는데 말이야."
내가 기뻐할 만한 소리였다. 물론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째서 아직도 어쩌면 한시도 잊지 못하고ㅡ헬레네를 생각할까? - P90

나의 목표는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불려 그가 돌아왔을 때는 떠날 때보다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양도 더 많고, 소도 더 많고, 돼지도 더 많고, 밭도 더 많고, 노예도 더 많고.... 내 마음속에는 뚜렷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고, 그동안내가 흔히들 남자의 일이라고 여기는 일들을 얼마나 잘해냈는지를 그에게-여자답게 겸손한 태도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를 대신하여 한 일이라고, 오로지 그를 위해 일했다는 말도 잊지 말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기쁨에 겨워 얼마나 환하게 빛날 것인가! 나를 얼마나 흡족히 여길 것인가! ‘헬레네를 천명이나 준대도 당신과는 안 바꿀 거요. 그는 그렇게 말할것이다. 어찌 아니랴 ? 그러고는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것이다. - P116

그 수의도 곧바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일을 가리켜 ‘페넬로페의 거미줄‘ 이라고 부르곤 했다. 수의가 거미줄이라면 나는 거미인 셈이다. 그러나 내 목적은 남자들을 파리처럼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 자신이 얽혀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 P147

옳은 말이다. 나는 절대로 망각의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래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아니,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위험을 무릅쓰기가싫은 것이다. 내 지난 생애도 어려움이 꽤 많았지만 다음생애는 더욱더 고달플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지상세계를 엿볼 기회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 세상이 내가 살던 시절에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수 있다. 아니, 오히려 불행과 고통의 규모가 훨씬 더 커졌을 뿐이다. 인간의 본성도 옛날과 다름없이 저속하기만하다. - P21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2-23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마거릿 애트우드 책인데,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상품 소개란의 출간일자 보니까, 최근 책은 아니군요.
우리 나라에 시녀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이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넷플릭스로 영화화 되면서 조금더 많이 소개되는 것 같긴 합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2-27 00:07   좋아요 0 | URL
2005년에 출간된 책인데 최근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흡인력이 대단해서 주욱 읽게 되더라고요.
애트우드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