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나에게 묻게 되었다. 너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니? 그즈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라는 영화를조금 보았다 (전편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안 되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P13
맛있는 음식은 마음으로 만들어진다고 평정심을유지해야 하고 재료와 소통해야 한다. 화를 내면 음식도 화를 낸다. 짜증난 상태에서 만든 음식은 짜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나 보다. 몰입해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물을 무쳤다. - P28
볶음밥을 맛있게 만들려면 찬밥으로 만드는 게 좋다. 따뜻한 밥은 세상과 부대끼며 단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물지 않다. 뜨거운불과 싸우며 밥 한 알 한 알이 기름을 만나야 하는 고난을 생각하면 역시 찬밥 이미지 아닌가. - P29
주부들이 가장 맛있어하는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것‘이라는 말에깊이 공감한다. 요즘. 누군가를 위해 만들 때는 두세 시간이 걸려도 하지만 내가 먹을 건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 P49
늘 고맙다. 때가 되면 꼭 선물을 마련해 보내온다. 잊지 않는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번 설에는 굴비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비하라는 마음일까. ‘굴비‘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뜻이다. - P61
집이 잠들 때가 있다. 드물게. 아주 드물게. 시계 소리, 냉장고 소리까지 깊은 잠에 빠지고 나면 진공을 걷는다. 그럴 것이다. 진공의 느낌이. 뒤꿈치를 들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아무 일 없는 진공이 지속되기를. - P70
글을 쓰는 시작은 남의 글 읽기다. 어깨너머로 쓰는 감각부터 배울 수 있다. 언제나 장인의 어깨너머로 배우는 감각이 최고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한 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무엇을 보태거나 뺄 수 있는지 가늠하고 순서를 바꾸어 다시 조합한다. ‘새로운 내용‘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절대 새로울 수 없다. 당신이 알아낸 것이라 해도 알아내기 위해 필요했던 지식은 모두남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잘해야 바다의 소금기, 삼 퍼센트쯤새로울까? 마찬가지로 먹어보지 않은 것을 요리하기는 어렵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 사인이 들어간 것을만들 수도 없을 것이고. - P95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던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다. 다시는볼 수 없을.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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