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ㅡ[토니오 크뢰거]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힘,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낀 그 힘에 
완전히 몸바쳤다. 그에게 고귀함과 명예를 약속해 주는 힘, 아무런 의식도 말도 없는 삶에 미소를 머금고 
군림하는 정신과 언어의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젊은 날의 열정을 품고 그는그 힘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줄 수있는 모든 것을 선물함으로써 그에게 보답했고, 그 대가로 앗아가곤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갔다.
- P41

그는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했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오직 창작자로만 간주되기를 바라며, 그밖의
경우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녔다.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연기도 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는 말없이 세상을 등지고 눈에 보이지않게 일하면서, 재능을 남과 어울리기 위한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소인배들을 한없이 경멸했다. 이들은 가난하는 부유하든 상관없이, 해진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돌아다니거나, 개성이 넘치는 넥타이를 매고 호사를 떠는 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훌륭한 작품이란 곤궁한 삶의 압박에
시달릴 때에만 생겨나고, 생활하는 자는 창작할 수 없으며완전한 창작자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서
행복하고 근사하게 예술가처럼 살겠다고 작정하는 자들이었다.
- P44

「천직 이야길 하질 마세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 두지만, 문학이란 결코 천직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언제부터 그것이, 이 저주가 느껴지기 시작할까요? 
일찍부터, 끔찍할 정도로 일찍부터입니다. 당연히 아직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야할 시기에 벌써 그런 저주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낙인이 찍혀 있다고 생각하고, 왠지는 잘 알 수없지만 평범하고 정상적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 회의, 갈등, 인식 및 감정의 골이 점점 더 깊게 벌어져 당신은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무슨 이런 운명이 다 있을까요! 
이런 운명을 끔찍한 것으로 느낄 정도로 가슴이 충분히 생기에 차있고, 충분히 사랑에 넘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수천 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신의 이마에 찍힌 낙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다 알아볼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자부심이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 P54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식의 구토라고 부르는게 있습니다, 리자베타. 어떤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것만으로도 이미 죽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그래서 그것과 화해하고 싶은 기분이 조금도 들지 않는 상태 말입니다. 햄릿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문학자인이 덴마크인 말입니다. 그는 알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면서 알도록 소명을 받는다는 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눈물에 젖은 감정의 베일을 뚫고 통찰해야 하고, 인식하고주의 깊게 살피며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맞잡고 서로의 입술을 더듬는 순간에도, 감정에 눈이 멀어 인간의 시선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미소 지으며 관찰한 것을 옆에 챙겨 두어야 합니다. 이는 울화가 치미는 일입니다. 리자베타, 이는 비열한 짓이라서 분노가 치밉니다..... 
하지만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P60

한스 한젠, 넌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거우며 소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신과 세상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자라나,
아무런 악의가 없고 행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구나.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센, 너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고, 모든 것이 다시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을 걷는 까닭은 이들에겐 올바른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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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11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 이 부분이 저는 무척 슬펐어요. 책으로 두 번 읽었고 딴 작품 때문에 오디오북을 구매했는데 이 작품이 들어 있어 또 들었죠. 글쟁이들에게 바치는 시 같은 작품이죠.

페넬로페 2021-08-11 14:02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슬프기도 하고 그냥 뒤돌아보지 말고 뚜벅뚜벅 가면 안되나 하는 안타까운 맘도 들더라고요. 네, 페크님 말씀처럼 글쟁이와 책쟁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책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