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처음엔 사기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읽어 갈수록 익숙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기는 한다. 하지만 내 손안에 쥐어진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다음 장으로 가면 그 전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것도 같지만 절대적인 배경지식의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지도도 찾이보았다. 유튜브와 네이버 열린 연단의 '사기열전' 강의도 들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도 그런 이유로 같이 읽기 시작하였다.

 

문득 중학교 시절, 한국사와 세계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국사 선생님은 수업을 하실 때, 그 넓은 칠판에 한 번 빽빽히 판서를 하시고, 그것을 지우고 두 번째 판서를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항상 그 전 시간 수업 내용을 물어보시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순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 날의 날짜와 같은 번호가 될 수도 있었고 그 날짜의 그 다음 번호가 될 수도 있었다. 복불복으로 한 사람이 지목되면 그 다음에 앉은 사람, 또는 대각선으로, 그 옆으로 순서대로 죽 질문하셨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은 세워두었다가 마지막에 등짝이나 목덜미를 한 대씩 때리셨고-그것도 당신의 손바닥으로- 그렇게 맞고서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선생님의 폭력이었지만 그땐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좀 재미있었다. 가르치는게 엉망인 것이 아니라 훌륭히 수업을 하시는 분이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들 선생님을 존경했었다.

 

국사 선생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세계사 선생님은 무척 유머가 있으셨다. 항상 우리를 웃겨주시면서 직접적인 세계사의 내용과 더불어 그 배경에 대한 얘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셔서 언제나 세계사 시간은 재미있었다. 그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시 중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니 그때가 생각나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은 중학교 시절의 세계사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다. 책 내용 곳곳에 '사기'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사기를 바탕으로 여러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구성한 듯 싶다. 소설이지만 역사에 대한 것이기에 다큐멘터리나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재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작가의 상상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고, 작가의 사관도 궁금하지만 일단은 그냥 읽었다.

 

'항우와 유방' 1은 진시황 '정' 이 중원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로 전국시대는 끝을 맺고 각 나라는 진의 행정조직으로 재편된다.

 

그 전까지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통일이란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그가 중국 통일이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자 사람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p15

 

각 나라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유민이 되어버렸고 권력은 오로지 황제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시황제는 중앙집권과 법치주의를 내세워 폭정을 일삼았다. 형벌을 내리고 세금을 거두며 각종 토목공사의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노역을 강제했다. 그로 인해 유민들의 불만이 많아졌고 이것은 언제라도 반란의 싹이 될 수 있었다.

 

'진시황의 결정적 패착은 모든 백성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역의 현장으로 내 몰았다는데 있었다.-p68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황당하게도 온량거를 타고 순행하던 수레안에서 죽고, 환관 조고가 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를 내세워 권력을 잡는다.

 

양자강 이남의 강남은 중국의 변방지대이고 황하지역의 중원과 언어와 풍속도 달랐다. 진정한 한족이라 인정도 못받을 정도로 그들은 그들 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항우는 BC223년에 멸망한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의 유명한 장군 향연의 후손으로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 의해 교육받았다. 항우는 강남 사람을 일컫는 형만이었지만 중원 문화를 배운 집안의 자손으로 키가 8척이나 되어 일단 외모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육체적으로 초인에 가까운 조건을 가졌고 민첩하고 직관력이 뛰어났으며 힘도 무척 셌다. 항우는 희대의 명장이었다.

 

항우보다 15세가 많은 유방은 패현 중앙리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방의 '방'은 형 또는 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그는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다. 거의 문맹 수준이었던 유방은 아는 것은 별로 없었고 허풍쟁이였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귀여움' 또는 '애교'라고 표현했다.

 

그 감탄하는 모습에는 애교가 넘쳤고, 그 애교는 그냥 그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덕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유방이 나아가는 곳마다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서로 신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었다.-p256

 

그 시대는 '종횡가' 라 불리는 책사 또는 유세가들의 활약이 많았고 필수적 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천하의 쟁패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유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되었다. 유방은 그들을 보는 선구안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능력있는 관리를 찾아내는 눈과 그들을 크게 대우해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진나라의 횡포가 심해져 초나라의 농민 출신인 진승은 우연히 진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시작된다.

 

'진승은 거대한 진 제국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돌팔매질이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를 일으키고 있었다.'-p163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서로 뭉쳤다가 배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초나라의 후예인 항우의 주력군은 거록성으로, 유방의 별동대는 관중으로 향한다. 거록성에는 연승을 거듭한 진나라 '장한' 의 20만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항우의 7만 부대는 그들과 대적할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경포의 선공과 항우의 용맹함으로 초는 거록에서 승리하고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한다.

 

한자 '坑' 은 '구덩이' 또는 '구덩이에 묻다' 라는 뜻이다. '분서갱유' 에서의 갱은 유교를 금지하고 법가주의 사상을 지향한 진시황이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린 것을 뜻한다. 항우도 갱을 좋아했다. 숙부 항량과 같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는 몇 천 명에 달하는 항복군을 포박하여 성 밖 구덩이에 산 채로 묻어버린다. 거록성 전투에서의 승리후에도 진나라 병사와 초나라 병사간의 반목이 시작되자 진나라 병사 20만을 갱해버린다.

 

보통 대학살은 병기를 사용하는 법인데, 그럴 때는 살륙이 중노동이 된다. 항우는 피학살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교활한 방법을 구사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대학살극이었다.-p355

이 일로 항우는 민심을 잃는다. 원한에 사무친 그들의 가족은 유방에게 기울어진다.

 

몇 만의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먹어야 하고 잠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대부분은 백성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조달한다. 식량을 빼앗긴 백성들은 유민이 되고, 유민이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식량이었다. 대소 영웅호걸들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줌으로써 그 자리를 보장받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들에겐 먹거리와 잠잘 곳이 필요하다.

 

역사의 결말을 이미 알지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2권에서 기대해본다.

 

 

***아!

컴퓨터 절전모드 상태에서 로그아웃된 것도 모르고 다시 돌아와 신나게 써서 등록했지만 내 글을 찾을 수 없어 중간부터 다시 썼다. 포기할까 하다가 아까워 그냥 썼다. 허탈감과 피로가 몰려온다.

글을 찾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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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없는 것 같아요.ㅠ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알라딘 임시저장 기능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렇고, 그래도 다시 쓰신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페넬로페 2020-11-30 13: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글이 날아갔을때의 암담함이 다시 떠오르네요 ㅠㅠ
그곳에서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