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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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홍명보‘ 를 좋아하는 나의 지인이 있다.
홍명보팬클럽의 열성 멤버로써
수없이 많이 그가 뛰는 게임을 관전했고
지금도 ‘홍명보자선축구‘ 가 열리는 날엔
어김없이 뛰어가서 그를 만나 선물을 주고 사진도 찍는다.
그런 그녀이기에 당연히 축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지인의 생일 선물로 김혼비작가의 책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를 선물했다.
단지 제목만 보고서.
제목에 ‘축구‘ 가 들어가서.
난 읽어보지 않고서.
‘아무튼, 술‘ 을 읽고서
내가 혹시 선물을 잘못하지나 않았는지 우려가 된다.
굉장히 짧은 분량의 책인데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고
재미도 별로 없는 작가의 문장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술!
호메로스의 서사시로부터 유구한 세월동안
많은 작가들의 책에 무수히 들어있는 술의 이야기!
그 달디 달고 오묘하며 씁쓸하고 광대한 ‘술‘ 을
‘아무튼,술‘ 이라고 격하시키며 호기롭게 외쳤으면
우리는 뭔가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낱 밋밋한 개인의 경험과
술의 종류와 술마시는 횟수에 대해 나열한 짤막하고
산만한 글들에는 호기로움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술‘ 엔 적어도 이 정도쯤은 있어야 한다.


가령
오바이트가 왜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오바이트는 ‘사랑‘ 이다
내친구 K는 소개팅 첫 날에 상대남과 술을 마시고
집에 데려다주는 그의 차에서 운전석에 앉아있는
그의 가슴에다 죄다 쏟아부었다고 한다.
하필 왜 그의 가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지인인 또다른 K는 남자 친구와 술을 마시고 역시
집으로 오는 택시안에서 오바이트를 했는데 그녀의 남자친구가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그것을 받아내어
택시와 택시기사분에게서
그녀를 보호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지금 그들은 모두 부부가 되어 자식 낳고 잘 산다.
오바이트까지 받아내는 그 위대한 사랑이여!
그 사랑으로 오바이트는 더러움에서 벗어난다.
착하고 사람 좋아서 밤새 동기들의 주사를 받아주고
오바이트하는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는 그 녀석과
술만 마시면 남자친구와 헤어진다는 친구를 위로하며 다독이지만 다음날 술에서 깨자마자 다시 남자 친구를 만나러가는 재수없지만 예쁜 친구를 둔 그녀에게
사랑이 없다면 버텨낼 재간은 없는 것이다.
자기 집 변기에 얌전히 하는 것은 오바이트를 했다고
할 수 없으며 먹은 음식을 역순으로 셀 수 있는건 오바이트의 끝이 아니다.
온 몸의 수분이 빠지면서 노란 위액까지 쏟아내며
인간의 헛헛한 바탕까지 내려가 존재의 허무를 느끼며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사랑‘ 이 있기에
또다시 시지프스적 삶을 살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술은 그 취기에 의해 치기가 샘솟아야한다.
고향에서 올라온 한달 용돈을 술마시며 즐거움을 누리는
친구들에게 하루 밤에 기꺼이 털어놓고는 한달 내내
빌붙어 점심을 얻어 먹는 진정한 우정을 서로 실천하고.
그 기분 좋은 술기운으로 사랑 고백도 하고
정동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당장 떠나야하며
날마다 날 괴롭히는 여러 종류의 족속들에게
시원하게 퍼붓는 소낙비도 되어야 한다.
그 치기로 어떤 밤에 만들어진 내 친구의 아들은
지금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다.
그러나 술에 의한 치기는 폭력적이지 않고 나쁘지 않은
‘낭만적‘ 이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취기에 의한 치기는 후회막급일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네 인생의 추억이 되고
웃음이 되어준다. 오죽하면 모든 학문의 지식에 통달한
파우스트박사조차 실수와 욕망속의 삶을 바라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했을까!


그리고 술은 슬픔이고 폭력이다.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 에서 경애는
영화동호회 사람들과 호프집에서 뒷풀이를 하던 중
잠시 전화를 하러 나간 사이에 불이 나 호프집에 있던
동호회사람들은 다 죽고 경애만 살아남는다.
그렇게 살아남은 경애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불이 나자 아이들이 술값을 내지 않고 갈까 봐서
호프집 사장은 문을 잠근다.
술은 돈을 지불해야하고 그 돈을 받아야해서
그때부터 슬픈 것이 될 수도 있다.
사는게 하도 얄궃고 하는 것마다 되는 일이 없어서
속상해서 기분 나빠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세간을 뒤엎고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의 윤수와
‘7년의 밤‘ 의 현수는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방기하고
한 사람은 온 마을을 수몰시키는 버튼을 누르고
또 한 사람은 사형수가 된다.
술은 그렇게 인간을 사지로 몰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기어이 가게 만들기도 한다.

김광규 시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에선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산 우리들이 어느덧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살아가며 서로의 처자식의 안부와 월급을 물으며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기며 헤어진다.
.
.
.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앓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이렇듯 우리는 술을 마실 때 부끄러워해야 한다.
삶에 찌들려 어쩔수 없이 눈감고 귀막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술 한잔 마시며
세상의 절반의 사람들이 굶주리는것에 대해.
그냥 있으라는 그 말을 대쪽같이 믿고 그냥 있어서 다 죽어버린 그 어린 학생들에 대해 말하는 것에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뭘 하면 좋을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해.
자식은 챙기면서 엄마는 잘 챙기지 못하는거에 대해.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상대적인 빈곤을 탓하며
쪼짠해지고 자신 없어지고 꼬이는 것에 대해.
.
.
.
그 얼마나 많은 가.
부끄러운게.

내가 생각하는 아무튼, 술은 이런 것이다.


그래도 ‘ 아무튼, 술‘ 에게 별 4개를 준다.
ㅡ내가 이럴때 아니면
언제 호기롭게 외쳐 보겠는가 말이다.ㅡ
책의 내용이나 문장에게가 아니라
술과 함께 하고 성장했으며 그걸로 책까지 낸
용기있는 작가의 인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을거란 믿음에서이다.
아무튼, 술은 있지만
아무튼, 인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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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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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14: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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