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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는 인류학 수업 - 문화인류학으로 청소년 삶 읽기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함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7월
평점 :
“중2병? 사춘기? 인류학은 다르게 본다”
요즘 청소년들은 MBTI로 사람의 성향을 규격화하는 데 익숙하다. 성격을 몇 글자로 단순화해 이해하는 방식은, 망망대해 같은 불확실한 관계 속에서 잠시 기대는 작은 부표와 같다. 친구나 낯선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시행착오가 따르기에, 성적·외모·MBTI 같은 단편적 기준에 의존해 서로를 평가하고 자신을 규정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틀만으로는 결코 한 사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나를 발견하는 인류학 수업』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청소년을 획일화된 틀 속에 가두려는 기성세대의 시선을 뒤집고, ‘문화인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청소년을 새롭게 해석한다. 즉,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내가 놓여 있는 사회와 문화의 맥락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나다움을 만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고유한 내가 되어 가는 과정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경험한 사건, 내가 머물던 장소,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등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p.62)
문화인류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며 그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나 행동이 사실은 특정한 역사와 환경 속에서 형성된 산물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교육인류학 연구자로서, 오랜 시간 청소년과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의 삶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풀어낸다.
이 책은 총 20가지 주제를 통해 ‘정체성’과 ‘사회문화’라는 두 축을 탐구하며, 교실 속 청소년을 질적 연구하듯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읽다 보면 내 주변의 학생들, 혹은 과거의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저자가 청소년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성적, 집안 형편, 성 정체성, 진로와 같은 조건들은 청소년을 옭아매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언제든 변화 가능한 사회적 산물이다. 인류학은 세상이 이미 결론 난 곳이 아님을 일깨우며, 불안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청소년은 언제든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비청소년’으로서 청소년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상에서 쉽게 “애들은 원래 그래, 이기적이야! 미성숙해.”라며 타자화해왔는데, 그들을 ‘중2병’ ‘사춘기’라는 틀 속에 고정된 집단으로 규격화함으로써 사실상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해왔던 것이다. 청소년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다양한 전략과 목소리는 미성숙한 일탈이 아니라, 그들만의 진지한 생존 방식이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문화인류학 입문서가 아니다. 청소년 독자에게는 ‘나다움’을 찾는 새로운 관점을, 비청소년 독자에게는 청소년을 둘러싼 편견을 걷어내는 거울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인류학적 시선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나도, 타인도, 세상도 결코 고정된 결론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나와 새로운 세상을 함께 써 내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