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빠와 함께 산책 ㅣ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1
볼프 에를브루흐 지음, 김완균 옮김 / 길벗어린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다 보니, 며칠 전 어린 조카한테 온 카톡 사진이 생각난다.
아이가 직접 찍은 창문 풍경 사진을 보냈는데, 그 사진에 ufo가 찍혔다고 호들갑이다.
대수롭지 않게 카톡사진을 봤는데 역시나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이의 상상력이 덧씌워진 지극히 평범한 사진이었다.
같은 것을 바라볼지라도 아이와 어른의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한다.
나도 모르게 이 책의 아빠처럼 잔소리를 했다.
"한낮의 일상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저 단순히 창문의 얼룩을 보고 착각한 거야."
내게는 흔한 창문의 얼룩이, 아이한테는 우연한 일상 속 놀라운 기적과의 조우였나 보다.
이 책에서 한밤중 폰스는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는다.
결국 피곤하고 졸린 아빠를 깨워 산책을 가자고 조른다.
아빠는 투덜투덜 대며, 못내 폰스와 집을 나선다.
산책을 떠나면서부터 놀랍고 기상천외한 밤의 세계가 펼쳐진다.
앞만 보며 직진하는 아빠와 달리, 폰스는 두리번거리며 놀라운 광경에 기꺼이 동참한다.
오로지 아빠만 제외하고, 독자와 폰스는 밤이 주는 무섭고도 황홀한 이계를 동시에 경험한다.
아빠의 지극히 현실적인 잔소리와, 밤의 비현실적인 풍경이 더욱 대조적이다.
특히 그림과 콜라주 사진은 더욱 대비되어 환상적으로 돋보인다.
어디까지 꿈이고 현실일까?
밤의 어둠은 이 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준다.
폰스는 이계의 동물이랑 아빠랑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간다.
폰스의 양 손 가득 비현실과 현실이 실존하는 걸까?
장난꾸러기 아이의 표정에 천진난만한 즐거움이 그득하다.
반면 아빠의 표정은 낮의 고단함과 졸음이 담겨있다.
“한밤중에는 온세상이 깜깜하고 고요하기만 하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않고 말이다.
잘 자. 폰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보면서, 익숙한 아빠의 모습에 나 역시 흔하고 흔한 어른이 되었음을 직감한다.
세상은 넓고 신비한 환상이 가득 펼쳐지는 그 시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폰스의 아빠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마음의 성을 쌓아버렸나보다.
나도 마음이 말랑말랑한 아이였을 때가 있었는데...
눈을 감고, 어둠의 밤 산책 그 환상의 세계를 기꺼이 떠나본다.
손목시계를 찬 고릴라가 다가와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길.... 창문 너머 ufo가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