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개인을 고립시키고 불안하며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 에리히 프롬
자유(freedom)는 인간에게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라는 개념적 특성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가정합니다. 특히 개인이 규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의 ‘주의주의’ 이념을 자유주의 윤리와 정치의 토대로 삼습니다. 정치철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칸트(1724~1804)가 자율성을 본격적으로 고양한 철학자임에 주목합니다. “자유의 근본 문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개인 자율성을 전제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자유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칸트가 개인 자율성을 처음부터 고양한 일이 잘못이었다.” 계몽주의자 칸트는 자유주의 윤리학을 대변하는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합니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모토로 하는 자유주의 윤리학의 기초는 칸트의 원자론적 인간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칸트 윤리학에서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성의 힘으로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충실하게 따라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는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자유가 도덕에 있어서 꼭 필요한 전제이긴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개인 자신이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하는 도덕법칙이 일체의 외적인 압력이나 영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에 환자에게 주는 처방은 오로지 환자 병에만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험에서 보여준 뇌 영상 촬영은 의사들이 내리는 처방이 사실 제약회사에서 받은 선물에 쉽게 영향을 받고, 따라서 제약회사 판촉 활동 영향력을 그대로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의사들이 자신은 외부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여긴다면 이는 자기기만이라고 실험은 밝히고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최후에 깨달은 사실은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는 자유를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자유를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그냥 받아들입니다. 자유는 윤리학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칸트가 도덕을 증명하려 한 이러한 야망을 가리켜 ‘영혼의 은밀한 농담’이라고 냉소했습니다. 도덕이 공리나 전제를 기초로 증명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명한 전제가 없기에 순수이성이 우리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감정 없이 이성 혼자서는 경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판단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사이코패스입니다. 사이코패스의 문제는 이성의 부재가 아닌 감정의 부재입니다. 이들 뇌는 ‘증오’나 ‘사랑’ 같은 단어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영역에서 처리합니다.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오로지 언어만을 담당하는 이성 영역에서 처리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떠올린다면, 칸트는 우리 모두가 사이코패스가 되길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칸트는 자유를 논증조차 할 수 없어 그냥 ‘선험’ 영역으로 넘겨버릴 정도로 자유에 집착했을까요? 그의 무의식에 크게 영향을 끼친 평소 일상생활 때문은 아닐까요? 그의 일상생활 중 매일 규칙적인 산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아울러 부유한 상인들과 주로 어울리며 매일 3시간에서 5시간 동안 그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그가 ‘자유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부유한 상인과 주로 담소를 나눈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현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칸트가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또한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으로 주의주의를 분명하게 표명한 사람은 국가를 옹호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779)입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 대부분을 포기합니다. 그 정당성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계약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무의식 상태에서 내린 잘못된 결정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인간을 그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학생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끼쳐 그들이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1945~ )가 수행한 실험은 경제학과 학생이 다른 학과 학생보다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자기 이익 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커진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기주의 개념은 교육으로 학습되는 개념입니다.
이기주의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꼼수와 잔머리, 심지어 거짓말까지로 확장됩니다. 프랭크가 했던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공동 구매의 경우에도 친구들을 희생시키면서 업자로부터 상납 받을 가능성이 경제학과 학생 집단에서 현저히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경제학을 학습할수록 이기주의에 입각한 행동이 만사에 깊숙이 침투하게 되며, 이기주의는 대체로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시 이기주의를 떳떳이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랭크의 여러 실험은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의 학생에게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경제학과 한 학년 전체를 조사했습니다. 그중 절반은 게임 이론 전문가(게임 이론 자체가 이기주의라는 동기를 전제하여 이론이 수립된 학문입니다)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으며, 다른 절반은 공산주의 중국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게임 이론가에게 배운 학생이 다른 쪽 집단 학생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유주의의 개념 확산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적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가 역할을 확대하여 무질서를 통제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이 더 확대하고 실정법을 통해 개인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뿐입니다. 홉스는 『리바이던』(1651)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습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에 과거 전통을 존중하거나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무시되고, 즉각적인 자유 추구만이 대세가 됩니다. 자녀는 갈수록 부모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어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이 강화됩니다. 그 결과 출생률이 감소합니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만 올리게 되어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에 감탄할 뿐이지, 지구의 풍부한 자원이 단기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못합니다. 설령 훗날 우리 후손에게 식수와 같은 귀중한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대형 마트에서 보게 되는 그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과연 다 팔릴지, 또한 다 팔리지 않은 상품은 과연 어디로 갈지 우리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교양 있는 개인 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공공의 선(common good)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유’(freedom)입니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프랑스의 실존주의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는 교회와 사회적 관습에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투쟁해왔습니다. 이제 그러한 목표는 서구 사회에선 거의 달성되었기에 사람들은 유례없는 자유(freedom)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상가가 즐겨 말하듯 자유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사가 순조로울 때 자유로운 개인은 바람직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라는 의지할 곳 없는 환경에서 겪게 되는 개인 실패나 좌절은 조금씩 쌓여 결국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1942~ )은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이 증가한 원인을 설명합니다. “단극성 우울증(조증이 동반되지 않은 우울증)은 ‘내’가 좌절하는 질환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통해 모든 것을 보라고 배웠다. 과거에 믿음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문화는 때때로 숨이 막힐 때도 있었지만 개인 실패를 더 큰 환경 내 사소한 일로 간주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 ‘나’는 사실상 사건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렌즈다. 개인주의 팽배로 우리는 자신 실패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실패할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가 더 쉬워졌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전환한 러시아는 자유가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으나, 그 자유는 그들이 기대한 바와는 달랐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48~ )는 『세컨드핸드 타임』(2013)에서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인들이 자유를 어떻게 여기는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자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 우린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밖에 몰랐다. 우리는 우리 이상을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유란 ‘위대한 소비’의 등장이다. 인간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우리가 그동안 대략적으로만 상상하던 욕구와 본능이라는 어둠의 왕.”
러시아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배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오랜 세월이 걸릴지 모릅니다. 사실 그들은 공산화되기 이전부터 마을 재산을 모두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상업과 사유제를 경시하며, 혼자만 이익을 얻겠단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두 토지를 공유하고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세금도 마을 단위로 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서 가난한 집이 조금 덜 내도록 했습니다. 소련 붕괴 후 서방에서 흘러들어 온 자유주의는 모두 함께 살아가는데 익숙한 러시아 농촌 공동체에는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사상이었다.
칸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 하나, 즉 자유의 문제를 남겨놓았습니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