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민 자유는 우리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유 개념과 거리가 아주 멀었다. 고대 자유는 곧 도시 통치에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고대 자유는 의회에 출석하고, 토론장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논쟁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어느 한 쪽 편을 들면서 투표할 특권과 의무로 이뤄져 있었다. 아울러 행정관으로 봉사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배심원으로 일할 가능성도 고대 자유에 속했다. 고대 자유는 정치 과정에 대한 무관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공적 일이 가장 중요했다."<개인의 탄생>



















토크빌은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 다른 하나는 시민적 자유(civil liberty) 또는 공민적 자유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탓에 프랑스인은 그들 구호(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그들은 혁명 전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크빌은 미국이 자유로운 국가지만 미국인이 자기 국가에서 누리는 자유는 결코 자연적 자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인의 자유는 처음부터 영국인에게서 쟁취한 것, 곧 시민적 자유, 공민적 자유라고 본 것이다. 미국 독립 혁명의 기원은 식민지 백성이 모국 영국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임의로 조종당하거나 자기 재산을 침범당하지 않는 기본적 자유를 원했다. 이러한 자유는 시민적 자유이며, 특정한 권리 영역에서의 자유이지 프랑스인이 생각한 전면적이고 보편적이며 무한정의 자유가 아니다.



토크빌은 프랑스인이 이러한 공공 정신을 훈련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공공 정신은 시민의 기본 조건이다. 미국은 시민이 국가를 이루지만 프랑스에는 시민이 없고 속민(subjects)만이 있을 뿐이다. 시민은 공공사무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만 속민을 공공사무를 윗사람 일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의 일로 생각한다. 이것은 간단하지만 중대한 차이다. 토크빌은 프랑스 독자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자극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대혁명 이래로 프랑스인은 줄곧 시민을 소리 높여 외쳤다. 심지어 입으로는 모든 사람을 시민이라고 불렀다. 시민 말고는 다른 존재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온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의 사회는 사실 말로만 시민이었을 뿐이다. 프랑스인은 그토록 시민을 떠들썩하게 외쳐 댔지만 모두 뼛속은 여전히 속민이었다. 진정한 시민이 될 수 없어서 시민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 정치의 근본이 고도의 독립성을 갖춘 타운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도의 독립성을 가진 주라고 해석합니다. 연방 대통령은 주지사에게 지시를 할 수 없다. 처음부터 타운의 행정은 시민이 선출한 공공사무위원이 책임지고 처리한다. 타운에는 심지어 대표도 없다. 모든 타운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단위로서, 주에는 주 의회가 있어서 각 타운의 법률과 규범을 제정한다. 하지만 주의 법규 범위 밖에서는 타운이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타운 집회를 통해 자신의 처리 방법을 결정한다. 주는 여타 타운을 대표하고, 연방 내의 다른 각 주와 관련을 맺기도 하지만, 주 정부는 여전히 임의로 타운의 독립권을 간섭하거나 침범할 수 없다.



이것이 토크빌이 19세기에 본 미국의 상황이다. 그 이후로 미국 정치에는 여러 가지 변동이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 특히 구조에 깔린 설계의 정신은 줄곧 보존되었다. 미국 정치의 실체는 자립적인 단위로서의 수천 개, 수만 개의 타운이며 대부분의 권력은 이러한 위계로 배치되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pp. 170-174.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칸트의 도덕법칙은 의미를 상실한다. 자유롭지 않은 존재에게 도덕법칙을 명하는 것은 난센스다. 칸트는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너는 자유롭다. 너는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너는 도덕적 존재이기에 분명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다. 자유로운 의지가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는 최고선이다. 그리고 자유의지가 최고선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두 조건은 바로 영혼불멸과 신인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신의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요청함으로써 최고선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실천이성의 요청’, 나아가 ‘실천이성의 우위’다.



홉스 철학의 의미도 절대왕정의 옹호라는 그 표면상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철저한 ‘개인주의’,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자신 이익(자유의지)을 추구하는 개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 있다.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자신들 주권을 ‘양도’한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다. 오로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철저한 계산의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구성해낸 국가 모습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모순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개개인의 권리의 ‘양도’를 통해 성립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모든 안전과 번영은 적으로 국가 몫이며, 개개인들에게 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개개인의 집합은 다중일 뿐이며, 국가라는 끈이 없다면 이 다중은 그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구슬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여기에는 오직 국가가 외적으로 부여하는 정치만이 있을 뿐, 개개인들의 내적인 힘[자유의지]을 통해서 그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 뿐, 개개인들이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하는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의 법과 시민사회 고유의 도덕, 관습, 문화 차원들 사이의 구분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국가라는 주물과 그것이 형태를 찍어낼 때 사용되는 재료로서의 다중이라는 구도를 극복하고서 시민사회의 자율성, 시민사회라는 고유한 차원을 창조해낸 것이 근대적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성취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홉스의 정치철학은 오히려 전근대적인, 아니 전근대보다 더 후퇴한 그 무엇이라고까지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그 이론적 구성 과정에서 전제되는 강렬한 개인주의와 그 구성 결과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반-개인주의가 드러내는 모순이야말로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로크에게 자연권의 기초는 사유재산이다. 로크는 자신이 확립한 경험적 주체 개념에 입각해 정치적 주체를 사유했다. 인식론적 맥락에서 주체적 경험은 곧 ‘인식’이다. 이에 비해 정치철학적 맥락에서 주체적 경험은 바로 ‘노동’이다. 인식의 주인공이 마음[자유의지]라면 노동의 주인공은 몸이다. 노동이란 한 주체가 자연을 가공해 변형하고, 그 변형을 통해 그 자신도 변형되는 과정이다. 이때 가공된 대상은 곧 노동주체의 ‘소유’가 되며(노동가치설), 그 소유를 통해서 주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서 ‘property’를 가지게 된다. 노동은 이렇게 한 주체 고유의 ‘property’를 생성시키는데, 노동 이전에 한 개인이 천부인권으로서 소유하는 것은 생명과 자유이므로 결국 한 개인의 ‘property’는 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뜻한다.



다만 내전 시대를 살았던 홉스에게 생명이 가장 소중했다면, 명예혁명 시대를 살았던 로크에게는 재산이 가장 중요했다. 로크 사유에서는 사유재산을 가지고서 사회계약을 하는 것이지 사회계약을 통해서 사유재산이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자유만이 아니라 사유재산 또한 자연권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서의 자연권은 한 주체의 ‘존재’ 즉 내적인 역량이지만, 로크에게서는 그의 ‘가진 것’ 즉 외적인 소유다. 이것은 형이상학자인 스피노자와 경험주의자인 로크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주의자인 로크가 당대 현실을 상세하게 관찰하기보다는 원시적인 상황을 상정해 논의를 전개한 것은 묘하게 느껴진다. <통치론>의 저자 로크는 자신이 <인간지성론>의 저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로크 정치철학의 이런 경향은 영국 중산층에게 유리했는데, 사유재산을 절대시하는 것은 곧 위로는 권력자들의 강제적 탈취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하층민들의 무력 도발을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크의 저작이 18세기 이래 본격화되는 ‘자유주의’ 철학의 성경이 된 것은 바로 사유재산에 대한 이런 절대 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철학사 3>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기회를 제한하는 어떤 구조도 없다. 모든 사람은 재산을 늘리고 쌓을 권리와 기회가 있다. 다시 말해 평등한 사회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은 사라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귀족이나 평민, 승려, 장인, 농부 등이 모두 같아진다. 그래서 사회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르게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 돈이 있으면 부러움을 받고 존경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평등한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불평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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