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습관들이기 나름인가 보다!” 

- 셰익스피어, 『베로나의 두 신사』 中








4,000년 동안 존재했던 인간사회 100여 개를 표본 삼아 분석한 한 인류학자는 식인풍습 사회가 34%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현재 식인이 불러일으키는 우리 혐오감은 보편적인 일이 아니다. 인류에게 식인이 생각보다 낯선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왜 식인을 할까? 예를 들어, 비행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이 굶어죽을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람들은 대개 먼저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사람은 식인을 왜 할까?
















특정 사회에서는 시체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먹는다. 인류학자들은 자기 부족 시체를 먹는 행위를 족내 식인풍습이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형태가 있다. 베네수엘라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은 시체를 장작불에 태워서 타고남은 뼈 조각을 수습해서 가루로 만든다. 죽은 자 친척들이 뼈 가루를 바나나 죽에 섞어 먹는다. 반대로 파라과이의 구아야키족은 시체를 잘라서 굽는다. 죽은 사람 가족을 제외한 부족 전체가 시체 살을 종려나무 수액에 곁들여 먹는다. 뼈는 잘라서 불태워 버린다. 족내 식인풍습은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흡수한다는 의미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완전히 통합된다. 

















장례의식 절차로써 자손이 죽은 자를 먹는 것이 허락된 사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 이런 사회에서 적절한 식인 의식이 거행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 삶이 불행해 질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 같은 장례 만찬은 종교적인 일체감과 관계가 있거나, 죽은 자의 살이 살아있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먹여 살린다는 생각과도 관계있다. 물론 그런 의식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정당성이 부여되더라도 오늘날에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회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문화에서 쉽게 인정하는 가치 – 고인의 마지막 소망을 존중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 사랑의 표현 –를 고려한다면 그렇다. 고인에 대한 존경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반면, 투피-구아라니족이나 카리브족처럼 많은 남미 부족은 전쟁 포로를 처형하여 의례적으로 먹었다. 아즈텍 사람들도 수십만 명을 식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즈텍 문명은 전쟁-인신 공양-식인풍습의 복합적 문화 풍습을 만들었다. 식인 대상은 주로 전쟁 포로였다. 아즈텍 군대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식 후 식인할 포로를 되도록 많이 잡아오는 일에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적의 항복이 이루어지기 전에 너무 많은 적군을 죽이게 될까봐 군사적 우세를 밀고 나가는 것을 종종 삼갈 정도였다. 아즈텍 문명의 피라미드는 가파른 경사로가 있는데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 몸뚱이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쉽게 굴러떨어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희생자를 성직자가 거두어다 사람들에게 인육으로 배분했다. 아즈텍인들의 식인풍습은 종교적 의식 일환으로 사람을 겉치레로 먹는 시늉이 아니었다. 식인풍습은 불과 100년 전까지도 전 세계 광범위하게 생각보다 많이 행해진 문화였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사람에게 식인은 천성이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에 쉽게 길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천성이 아니지만’ 주변 생태 환경이 파괴되고 고갈되어 먹을 것이 없을 경우에만 식인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을까?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힌다. “다른 식량이 부족해 식인풍습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일단 생겨난 인육에 대한 입맛은 식량부족 사태가 해결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인육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는 대상이 되었다. 원시 부족은 인육을 즐겨 먹는 것을 절대 수치로 느끼지 않았다. 아마 인육을 먹은 것이나 동물 고기를 먹는 것이나 도덕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식인 풍습은 한때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원시부족 중 식인풍속이 없는 곳은 거의 없었다. 멜라네시아에서는 친구들에게 구운 인육을 대접하면 추장의 사회적 명성이 크게 높아지곤 했다. 브라질의 한 현인 추장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인육보다 맛있는 사냥감은 알지 못 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정말 음식을 너무나 가린다.” 



아일랜드인, 이베리아인, 픽트인(로마 제국 시기부터 10세기까지 스코틀랜드 동부 및 북부에 거주하던 부족), 11세기 데인족(덴마크계 게르만족) 같은 후대 종족들도 식인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고기를 주요 교역 상품으로 취급하고, 장례식 같은 건 모르던 부족도 상당수 달했다. 콩고의 우알라바 강에서는 남자와 여자, 어린 아이를 말 그대로 식품 일종으로 산 채 사고팔았다. 뉴브리튼 섬에는 현재 우리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 듯 인육을 파는 가게가 있기도 했다. 솔로몬 제도 일부 지역에서는 잔치에 쓰기 위해 인간 제물을(여자를 더 선호했다) 돼지처럼 살찌우기도 했다. 한편 푸에고인들(남미 마젤란 해협 남쪽 섬사람들)은 ‘개고기에는 수달 맛이 난다’며 여자 인육을 개고기보다 높이 평가했다. 타이티 섬의 한 늙은 폴리네시아인 추장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백인 고기는 제대로 구우면 잘 익은 바나나 맛이 난다.” 하지만 피지인들은 백인 인육은 너무 짜고 질기며, 유럽 선원 인육은 먹을 수 없는 지경이라며 불평하곤 했다. 폴리네시아인 인육 맛이 더 났다는 것이다.



한편 16세기 철학자 몽테뉴 눈에는 죽은 사람을 구워먹는 것보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고문하는 것(몽테뉴가 살던 시대에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다)이 더 야만적인 일로 비쳤다. 듀런트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가 가진 착각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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