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최선의 사회 체제라고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선거란 시민의 권리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의원을 선거할 동안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시민들은 곧바로 노예가 되어버린다.’<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선거가 결국 가장 뛰어난 인물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에 귀족정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를 다수가 통치하는 제도라고 간주한다면, 미국식 체제는 오늘날 일부 정치학자가 판단하듯 과두정에 가깝다.”<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사람들은 의회가 국민 의지를 실행하는 '공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사정은 그렇지 않다. 헤겔 지적처럼 의회는 관료들 판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치 사람들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장이다. 즉 의회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관료 내지 그와 유사한자들이 입안한 것을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정교한 절차다.“<세계사의 구조>

















위브는 대중의 참정권은 시민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토대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자발주의적 자아상을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보통선거권과 다수결이라는 규칙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개인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 상상력 속에 불어넣었다.” 그 결과 다른 한편으로는 한층 더 심각하고 복잡한 현실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버렸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가 살아갈 정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장엄한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전통적 공동체의 장악력을 해체한 바로 그 기술 및 산업의 세력들이 개인 선택이나 동의 행위 범위를 넘어 사람들 삶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P. 152.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미국에서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 되는 데 들어가는 실질적인 비용은 두 배 넘게 늘어났다. 당 지도부는 초선에 성공한 의원들에게 하루 중 서너 시간은 선거구 유권자를 만나 투표를 독려하거나 소위원회나 창문회에 참석해 의원으로서의 활동을 하되 나머지 다섯 시간은 모금 행사에 참석하거나 정치 후원금을 낼 사람에게 전화해 자금을 긁어모으라고 조언한다. 대통령 선거운동에도 막대한 자금이 흘러든다. 2010년에 선거 후원금 상한제를 폐지한 미국 대법원 결정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2012년에 연방 차원에서 이뤄졌던 모든 선거에 사용된 돈의 40퍼센트 이상을 최상위층 부자가 지불했다. 여기서 최상위층은 상위 1퍼센트나 0.1퍼센트가 아니라 0.01퍼센트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예비선거) 과정이 길기에 선거 초기 자금이 특히 중요하다.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될 때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기부된 돈의 거의 절반이 불과 158개의 부유한 가문에서 낸 돈이었다. 대부분 금융과 에너지 부문에서 재산을 모은 가문들이었다. pp. 366-367.



대의정치가 과두정치에 사로잡힌 것이 부패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바람에 정부가 공공선에서 멀어지고 또 시민들로서는 자신들이 통치를 받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발언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일반적 대중과 부유층이 정부에게 바라는 것이 확연이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인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87퍼센트는 ‘공립학교를 정말 좋게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정부 예산이 지출되길 바라지만, 백만장자 가운데 35퍼센트만이 여기에 동의한다. 전체 국민의 3분의 2가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백만장자들은 다섯 명 중 한 명만 그렇게 생각한다. 대중은 대기업 규제가 강화되길 바라지만 부자는 그렇지 않다. pp. 367-368.



대중과 부자 의견이 갈릴 때는 부자 의견이 채택된다. 정치학자 벤저민 페이지와 마틴 길렌스는 이익집단, 부유한 미국인, 일반 시민 중에서 미국의 공공정책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은 1981년부터 2002년까지 기간에 일자리와 임금, 교육, 건강보험, 시민권, 경제 규제, 문화 관련 쟁점, 외교 정책 등의 분야에서 제안된 약 2,000개의 정책 변화를 분석해 세 집단 중 어떤 집단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폈다. 그들은 “일반 시민은 연방정부 정책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불안한 결론을 얻었다. 조사 결과 일반 시민 중 3분의 1정도만 자기 뜻을 관철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의 견해가 이익단체나 부자 견해와 일치할 때에만 가능했다. 더 나은 학교 환경, 최저임금 인상, 기후변화에 대한 조치 등에서 압도적 다수 시민이 정책 변화를 선호하든 소수 시민만이 정책 변화를 선호하든 간에 정책 변화에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적인 이익집단, 특히 기업의 목소리에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인 대부분이 느끼는 사실, 즉 자기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일반 시민은 자기가 통치되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깊어진 개인의 자치 권한 박탈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금융 주도의 세계화가 낳은 소득과 부의 엄청난 불평등이 시민의식 차원에서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들 가운데 하나다. pp. 368-369.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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