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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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많은 미국인은 임금노동(wage labor), 즉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은 자유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당시와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금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임금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주로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임금 격차나 작업장 안전성 등이 쟁점이다. 오늘날 임금노동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많은 미국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과 임금의 교환에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에서 보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부당한 압력이나 강요만 없다면 임금노동은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의미에서 자유노동이다. 하지만 노동을 임금과 교환하는 자발적 합의조차도 자유노동에 대한 공화주의적 개념을 충족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독립성이 시민의식에 필수적 전제조건이라는 오랜 공화주의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유럽의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처럼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만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은 자유 시민으로서 어떤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도덕적, 정치적 독립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한때 제퍼슨은 오로지 자작농이라는 신분만이 견실한 공화주의 시민에게 필요한 덕목과 독립성을 길러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세기 초 수십 년 사이에 공화주의자 대부분은 농장에서뿐만 아니라 공장의 작업장에서도 시민적 기본 소양이 배양된다고 믿게 되었다. pp. 96-97.



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노예제와 관련된 투쟁 때문에 한층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졌다. 노동운동과 노예제 폐지운동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두 운동 모두 일과 자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지만, 양측 진영은 서로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임금노동을 남부 노예제와 동일시함으로써 자기주장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그들은 임금노동 체계를 ‘임금노예제(wage slavery)’라고 불렀다. 임금노동은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에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브라운슨은 “임금은 노예 소유자가 감당해야 하는 온갖 비용과 말썽과 증오 없이도 노예제의 모든 이점을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누일 수 있게 해주는 교활한 악마의 장치다”라고 규정했다. 임금노동자는 남부의 노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나중에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으므로 노예보다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브라운슨은 임금노동이 자유와 양립하고자 한다면 독립성 확보를 보장하는 일시적 조건의 임금노동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동료 시민 가운데 그 누구도 임금노동자로 평생 힘들게 살아가는 운명을 짊어지는 계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임금노동을 용인해야 한다면 반드시 조건 하나가 전제돼야 한다. 어떤 노동자가 인생의 어떤 연령대에 도달해 자기를 잡아야 할 때, 자기가 가진 돈으로 농장이든 가게든 간에 자기 소유의 작업장을 마련해 독립적 노동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pp. 101-102.



하지만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임금노예제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노동 옹호론자들과 달리 시민적 자유관이 아니라 자발주의적 자유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예제도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 이유로 노예들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의 부족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보다 노예가 자기 의지에 반해 노동하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pp. 103.



토지 개혁을 주장했던 조지 헨리 에번스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개혁의 전망을 한층 넓게 확장하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에번스는 “빈곤과 질병, 범죄, 매춘 등을 몰고 오는 임금노예제는 노예를 재산으로 여기는 남부에 존재하는 제도보다 삶과 건강과 행복에 훨씬 더 파괴적이다. 그러므로 노예제를 임금노동제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방향 자체가 매우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에번스는 두 가지 형태의 노예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공공 토지에 주택을 지어 정착민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정책을 제안하고 촉구했다. 무료로 제공하는 토지는 빈곤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이 만들어낸 시민의 종속성도 줄여줄 것이라면서 “이 정책은 한 형태의 노예제를 다른 형태의 노예제로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노예제를 완전한 자유로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pp. 104-105.



남부 노예제의 선도적 이론가였던 조지 피츠휴는 북부 노동 지도자들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부의 임금노동자는 남부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면서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듯이 자본이 노동을 부린다”라고 주장했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남부의 노예주는 노예가 늙고 병들어도 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피지만 북부 자본가는 이런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가진 자본 덕분에 노동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한 노예 소유주다. 그런데 노예주이면서 노예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노예주에 불과하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은 당신 노예다. 그것도 노예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노예다.”



피츠휴에 따르면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 속에 살았던 북부의 임금노동자는 남부 노예보다 실제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 노예는 적어도 나중에 늙고 병들 때 노예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노동자는 일을 하든가,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노동자는 흑인 노예보다 더 노예처럼 살아간다. 노예보다 돈도 적게 받으면서 더 오랜 시간을 더 힘들게 일해야 하고, 또 노동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인간 노예주가 노예를 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완벽하게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유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노예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노예주가 먹여살리기 때문이다. 비록 자유노동자 각자에게 특정한 주인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그들 자신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한데 다른 사람이 자본을 가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노예가 된다. 이 노예는 주인이 없는 노예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인이 너무도 많고 심지어 주인이 없는 것만큼이나 상황이 나쁜 노예이기도 하다.”



피츠휴는 북부의 토지 개혁자들과 같은 주장을 하면서 자본가가 재산을 독점함으로써 북부 노동자에게서 자유를 빼앗는다고 비난했다. “자유 사회라는 거짓 이름으로 불리는 것의 정체는 매우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이것은 약하고 무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소수가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재산이 없는 사람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단 하나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좁은 방과 축축한 지하실 그리고 혼잡한 공장에서 더러운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도록 방치된 사람은”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다. “사유재산이 토지를 독점했으며 가난한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모두 파괴했다. 가난한 사람은 삶을 안전하게 이어갈 안전판이 박탈됐다. 고용과 충분한 임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그 누구도 이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피츠휴는 만일 누군가가 노예라면 노동자로 살 때 못지않게 의존적 삶을 살겠지만, 적어도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사실상 노동운동의 자유 개념을 인용했다. 예컨대 “자유노동자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기에 충분한 재산이나 자본을 줘서 그들을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라. 그런 다음 우리 남부에 흑인을 해방하라고 요구하라”라면서,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북부의 임금노동자가 남부의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른 남부 사람들도 비슷한 논리로 노예제를 옹호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제임스 헨리 해먼드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미국 남부에만 노예제가 남아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그렇다, 명칭 자체는 폐지됐다. 하지만 실상은 그대로다”라고 지적했다. “날품팔이 노동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노동을 시장에 팔아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는 사람, 이런 사람은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 요컨대, 육체노동을 하며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사람 또는 이른바 ‘직공(operative)’은 본질적으로 노예다. 그런데 당신들의 노예와 우리 노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의 노예는 평생 고용이 보장되고 보상도 잘 받기에 굶주릴 일도 없고 구걸할 일도 없다. 하지만 당신들의 노예는 하루 단위로 고용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쥐꼬리만큼밖에 보상받지 못한다.” 이는 북부 도시 거리마다 늘어선 거지 행렬이 증명한다. pp. 106-109.



남북전쟁이 끝나고 임금노동 체계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자유노동이라는 시민적 개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발주의적 개념을 채택한다. 그들은 임금노동이 도덕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맺어진 자발적 계약의 산물이기에 자유 개념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로크너 시대의 대법원이 헌법과 일치한다고 판단한 것이 바로 이런 자유 개념이다. 미국 역사에서 1897년경에서 1937년에 이르는 시기에, 1895년 뉴욕주는 제과점 점원의 근무시간을 1일 10시간, 1주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3년 후 로크너라는 제과점 주인이 해당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로크너는 종업원들에게 노동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했다고 항변했다. 즉 그 법률이 ‘계약의 자유’라는 대원칙에 어긋나기에 무효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근무시간 제한이라는 수단이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목적과 합리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오히려 제과점 점원과 주인 사이의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전환을 계기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에서 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공화주의적 공공철학에서 절차주의적 공화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자유주의적 버전으로 바뀌었다. pp. 100.



공화당의 핵심적 이념은 자유노동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한 대변인은 “공화당은 노예제에 반대하는 정당일 뿐만 아니라 자유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도 국가 앞에 서 있다’라고 선언했다. 1830년대에 공화당이 수행하던 노동운동에서 규정한 자유노동은 영구적 임금노동이라기보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노동이었다. 노동의 존엄성은 고용주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수준으로 지위를 높일 기회가 보장된다는 데 있었다. 공화당은 북부 사회가 이러한 사회적 이동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년은 자기 소유의 농장을 살 돈을 모을 때까지만 돈을 받고 일한다. 또는 당신이 원하는 표현을 쓰자면 ‘노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고서 그는 고용주가 된다.”



링컨도 임금노동을 비판하는 남부의 비판자들이 바로 이런 자유노동 체계의 특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이 부리는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인보다 훨씬 더 잘 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부의 노동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들은 노동자가 영원히 노동자 계층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계층은 없다. 작년에 남에게 고용돼 일하던 사람이 올해는 독립해 일하고 내년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할 것이다.” pp. 117.



링컨은 평생을 임금노동자로 보내는 사람은 노예나 마찬가지라는 발상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노동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임금을 받고 일하겠다는 노동자의 동의가 아니라 임금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영업자 지위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유노동 제도의 개방성을 확신했기에 자립에 실패한 사람들은 “의존적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또는 드물게 있는 불운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반면 열심히 일해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신뢰를 받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pp. 117.



그렇지만 1870년을 기준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미국인 중 3분의 2가 자기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임금노동자였다. 독립성과 자영업을 찬양하는 나라였던 미국에서 자기 농장에서 일하거나 자기 소유의 가계를 운영하는 사람 비율은 세 명 중 겨우 한 명뿐이라는 말이었다. pp. 120.



임금노동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임금노동이 키우는 가난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시민적 역량에 미치는 피해, 즉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굴한 어조와 비굴한 사고방식”이다. 노동운동 해결책은 과거의 농업사회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에 따른 이익을 분배하고 스스로 통치하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임금 체계를 대체함으로써 산업 자본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는 노동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임금체계 또는 노예적 굴종의 체제라고 불러야 옳을 이 체제가 노예제나 농노제처럼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여론 환기의 선동과 단결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p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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