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에 의한 자각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 찾아와 여러 감정이나 상상을 유발하되 마음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데카르트에게 생각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의식되지 않는 생각, 그것은 ‘둥근 삼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이다. 생각은 생각하는 자아에 의해 의식된다는 것을 본질적 계기로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 의미의 사고를 정의하는 핵심이 이렇게 의식에 있다면,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 의식된다는 것은 자아에 의해 의식된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사유는 자아를 위한 자의 사유가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데카르트에게 의식은 지성을 핵으로 하는 자아를 전제하고, 따라서 의식은 언제나 자기 의식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의식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의식은 사유를 사유화되게 하는 원리라기보다 생의 쾌감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의식은 공통감의 기능으로 설명된다. 데카르트에게서처럼 지성 기능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pp. 109-110 <근대적 세계관의 형성>
















‘상상을 통해 고통을 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나 그가 느끼는 것에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핵심은 ‘입장을 바꿔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타인과 같은 감정 상태에 들어서는 것은 ‘공통감’입니다. 근대에서 이 개념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의 잠바티스타 비코가 있습니다. 비코에게 공통감은 사려깊음과 설득력이 결합된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다양하게 고찰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내놓는 것이 공통감입니다. 이것은 상황 판단력과 같은 말입니다. 



더욱이 비코에게는 단순한 상황 판단력이 아니라 도적적 해결 능력까지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의 파편들을 주워 모읍니다. 이것은 특수들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 머리 속에 전체가 어떠하리라는 막연한 구도를 떠올린 후, 그 특수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집약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특수들을 보편적인 것에 종속시킴으로써 올바른 것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 공통감일 것입니다. 여기서 특수들을 집약하는 보편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미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집약되는 특수들이 그 보편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왔던 것들도 아닙니다. 이 보편과 특수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형성된 것일 뿐입니다. 비코의 이 공통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같은 것입니다. 실천적 지혜는 윤리적 존재의 규정적 내용과 수단을 취사 선택하는 통제적 능력입니다.<철학 고전 강의>
















“이념으로서 공통감은 개인 판단을 규제하는 이상적인 공통체 정신에 해당한다. 보통 ‘상식’이란 이런 의미의 공통감이 통속화된 것이다. 상식은 공동체 안에서 이미 공유되어 습관처럼 굳어진 관점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감은 사실이 아니라 당위에 가깝다. 그것은 하나의 개인적인 관점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 및 인정될 수 있기 위해 언제나 타인 관점에서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리킨다.



이런 의무로서 공통감이 전제되고 실행될 때만 취미 판단의 필연적 전달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공통감 이념에 의해 우리가 반성적 판단에 끌어들여야 하는 타인이란 누구인가? 그것은 존엄한 인격체로서의 타인, 자율적 내면성의 주체로서의 타인이다.



사실 칸트는 경험적 차원에서 성립하는 모든 사회성의 원천에는 공통감의 이념이 자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모든 인간관계나 사회적 질서의 뿌리에는 타인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공통감 이념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공통감 이념은 ‘상호주관성’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왜 칸트인가>







"헤겔 역사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제는 역사를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 논제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구조화하는 핵심이자 헤겔을 포함한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근본이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진보 이념이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근대 역사철학 자체는 진보 이념과 더불어 탄생하고 진보 이념과 더불어 소멸한다. 근대 역사 철학은 진보 이념을 모태로 태어났으며 진보 이념이 쇠퇴하자마자 위기를 맞이한다.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헤겔의 문장이 말하는 것처럼 근대 역사철학 일반은 진보가 필연적임을 논증하는 과제와 더불어 완성된 형태에 도달한다.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에 어떤 법칙이 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재하는 법칙에 의해 역사 흐름이 필연성을 띠고 발전해간다는 것을 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그런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이론적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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