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흔한 현재든 책이 귀한 과거든,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책 읽을 기회만 다를 뿐, 책 읽는 방법은 항상 같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예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면 오해일 수 있다. 독서란 단순히 숙련된 기술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소통하며 주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알아보는 일은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르게 느끼고 생각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날에도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모두가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 중세는 글 읽기와 쓰기에 더 큰 차이점이 있었다. 귀족에게는 글을 읽을 줄 아는 하인과 쓸 줄 아는 하인이 따로따로 적어도 한 명씩 있었다. '귀족이 편지를 읽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하인이 편지를 읽어주었다. 더욱이 글을 읽을 수 있는 하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글자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는 글자에 관한 단순 지식 이상이 요구되는 서로 다른 기술이었다. 모든 글이 읽혀졌는데, 계산서도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낭독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auditing(회계 감사)’의 어근 ‘aud-’에서 이런 듣기 관습을 엿볼 수 있다. 대수도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 계산서 내용을 들었다. 교황은 읽을 수 있었지만, 항상 자신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주도록 시켰다.

 


이러한 관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글을 속으로 읽지 말라”는 경고가 암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는 혼자서 책을 읽으면 이단 행위가 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15세기 잉글랜드가 특히 그랬다). 실제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가 자신 눈을 책 위로 미끄러지듯이 굴리며 책을 읽을 때면, 그의 심장은 그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그의 목청과 혀는 움직이지 않았다.”
















19세기까지도 많은 사람이 책을 조용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큰 소리로 글을 읽지 않으면 언제나 본인이 읽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도가 소리 내어 읽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 기도문에 적힌 글은 말해짐으로써 의미가 더해졌다. 성스러운 텍스트를 읽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이라기보다 신의 지혜를 음미하는 일이었다. 읽기는 거의 명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모든 저술의 읽기는 일종의 마술적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특히 성스러운 글은 더욱 그랬다. 문자를 통해서 독자에게 하느님 빛이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독서는 영적인 활기를 주는 신체 행위였다.



14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단어와 문장, 문단 구분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다(로마시대에는 단어를 그냥 이어서 썼다). 그런 탓에 독서가 어렵고 큰 소리로 책을 읽어야 했다. 이 무렵 주어-동사-목적어 어순이 고정되었다. 이러한 글쓰기 변화가 자극이자 원인이 되어 문맹률이 크게 줄었다. 14세기 초 이르러서야 필기체가 개발되면서 단어가 분리되고 구두점과 장, 제목, 전후 참조 같은 장치들이 생겨났다. 이런 혁신이 독서 방식을 낭독에서 묵독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독서 혁명은 16세기에는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지만, 글에 숙달되지 않은 수많은 일반인에게는 19세기까지 큰 소리로 책을 읽어야 했다.
















이후 묵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비밀스럽게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중세 말기에 이미 이교도적인 텍스트가 유통되고 비판적인 사상이 표현되었으며, 적당히 채색된 외설서가 유행했다. 이렇게 되자 독서를 점점 더 사적이고 내면적인 행위로 간주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성찰이 가능해졌고,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집단적 사고 통제에서 벗어나 전복과 이단, 독창성, 개성으로의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가장 중대한 심리 변화는 바로 개성의 등장이다. 이로 인해 자의식과 경쟁심, 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다. 자화상과 자서전, 일기가 많아진 것도 그런 현상을 반영하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같은 ‘처세’ 관련 책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당시 글을 읽는 새로운 방식에 따라 사람들 마음속에 변화가 일었다. 이전과 달리 사람들 감성이 더 풍부해졌다. “성인 남녀들은 눈물을 많이 흘렸다. 신부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최후 심판을 설교할 때면 몇 번씩이나 설교를 중단해야만 했다. 설교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청중 모두가 너무도 격하게 목메어 울었기 때문이다. 영국왕 에드워드 2세는 포로로 잡혔을 때 어찌나 많이 울었든지, 솟구쳐 흐르는 더운 눈물로 얼굴을 적셔 면도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폭력이나 화끈한 섹스 이야기, 심지어 특별한 스토리도 없는 여섯 권짜리 루소의 <신엘로이즈> 소설은 18세기 독자들을 압도했다. 당시 사회 모든 계층의 평범한 독자들은 흉금을 털어놓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애독자가 루소에게 보낸 편지에는 온통 울음뿐이다. 어떤 신부님은 친구들에게 같은 구절을 최소한 열 번에 걸쳐 크게 읽으면서 매번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감정과 울음으로 숨이 막히고 있다고 당신 루소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떤 남작은 그 책을 읽는 유일한 방법은 하인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문을 잠가놓고 읽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이 너무 약해 감정을 견딜 수 없으므로 한 번에 단 몇 페이지씩만 읽었다. 당시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정신 세계 속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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