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잘못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누적되는 재앙을 우리가 자유주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증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 성공의 징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적 조치를 더 많이 적용해 자유주의 병폐를 치유하자는 주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자는 격이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위기가 더욱 심해질 뿐이다.



처음에 자유주의는 자유 이름으로 낡은 귀족정을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귀족정에 반기를 들었던 선조들 소망대로 자유주의는 옛 질서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후손들은 그렇게 대체된 질서를 어쩌면 더 해로울지도 모르는 일종의 새로운 귀족정으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 미국 선거 절차는 국내 정책, 국제 협정, 그리고 특히 전쟁 수행에 비할 바 없이 자의적인 권한을 행사할 인물에게 대중이 동의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자유주의 체제의 설계자들은 시민들에게 사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생활을 장려하려 했다. 그 체제는 그들이 ‘공화국’이라 부른 ‘사적인 사람들(res idiotica)’의 체제였다. 하지만 체제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공화국은 ‘공적인 것들’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사사주의를 장려함으로써 ‘잠정 협정’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유주의 신념은 지배층의 거의 완전한 분리와 시민성 없는 시민들로 귀결되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예전부터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이토록 완벽하게 분리하는 문명, 또는 성공할 사람과 실패할 사람을 가려내는 이토록 거대한 장치를 만들어낸 문명은 이제껏 거의 없었다. 마르크스는 언젠가 경제적 불만의 최대 원천이 반드시 불평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 원천은 소외에 있다. 즉 노동자를 생산물로부터 분리하고 그에 따라 노동 목표이자 대상과 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게 만드는 소외야말로 가장 큰 원인인 것이다. 패자들은 과거 가장 부유한 귀족과 비교해도 자신들이 훨씬 더 풍족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질적 안락은 영혼의 불만을 손쉽게 달래는 방법이다.



대학들은 실용적인 ‘학습 성과’를 앞다투어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을 즉시 고용할 만한 상태로 만들거나 기존 학과들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향을 재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수 도입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어 경제적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영원히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한다는 선진 자유주의 체제에서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 갈수록 흔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하여 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른 순간에 자유학예(liberal arts: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과 대비되는 자유민 소양에 필요한 학예를 의미했다.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가 대학에서 내쫓기고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학예는 자유민에게, 특히 자치를 열망하는 시민에게 필수인 교육 형태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제 위대한 문헌(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어렵게 얻은 교훈을 담고 있기에 위대한 문헌)을 폐기하고 그 대신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지던 것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생활에만 몰두했고 따라서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를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면서도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거의 전적으로 채택해왔다. 그리고 찬란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자유학예라는 호사, 이름 자체에 자유민 함양을 근본적으로 지탱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육을 더 이상 누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개개인을 ‘주어진’ 조건에서 해방하기 위해, 특정한 직분, 의무, 부채, 관계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목표는 두 가지 주요 실체(국가와 시장)를 매개로 이루어진 비인격화와 추상화를 통해 달성되었다. 국가와 시장은 우리를 점점 더 벌거벗은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협공작전을 펼쳐왔건만, 정치 논객들은 두 가지 힘 가운데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어야 다른 한쪽의 침탈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국가와 시장의 동맹을 감춘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된 정치적 선택은 어떤 비인격화된 메커니즘이 우리 자유와 안전을 증진시킬 것인지 고르는 일이 된다. 다시 말해 시장 공간과 자유주의 국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된다. 시장 공간은 우리 욕구와 필요를 채워줄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면서도, 타인 욕구와 필요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욕구와 필요에 대처하는 비인격화된 절차와 메커니즘을 확립한다.



요컨대 개인 자유 보호와 국가의 활동 확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한결 같은 요구는 국가와 시장의 진짜 관계를, 즉 국가와 시장이 항상 필연적으로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을 감춘다. 국가주의는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개인주의는 국가주이를 요구한다. 변혁을 다짐하는 온갖 선거 구호 – ‘희망과 변화’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든 -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유주의가 우리를 더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더 국가주의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한 정당이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국가주의를 축소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정당이 이와 반대로 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움직임 모두 우리의 가장 깊은 철학적 전제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힘겨운 과제는 자유주의 사회의 병폐를 더 많은 자유주의를 실현해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불가피성과 제어 불가능한 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노르웨이에서는 광고가 조장하는 외모지상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시민단체와 정부가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적색당 산하의 붉은 젊은이들이 벌이는 ‘광고보정 반대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리처칭(보정)한 거리의 광고판에 모델 아름다움의 비밀이 사실은 ‘만들어진 거짓’임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놓는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모델 허리와 팔, 다리가 가늘게 보정되었다’거나 ‘가슴과 엉덩이 비율을 확대시켰다’ 혹은 ‘피부 잡티라든가 여드름, 주름 등을 지웠다’는 내용이다.



패션과 뷰티산업은 이처럼 광고보정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지만, 어린 소녀와 소년들이 자신 외모에 만족하지 않는 경우, 지속적으로 광고가 토해내는 사실상 불가능한 외모에 사로잡혀 자신 몸과 얼굴을 성형으로 왜곡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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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정부는 한국 정부와 달리 석유 자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국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에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국민의료보험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자신 수입에서 큰 부분을 국민의료보험에 쓰는 것에 동의한 대다수 국민들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모두 석유자원을 갖고 있지 않지만, 노르웨이와 비슷한 의료보장체계를 갖고 있다. 노르웨이가 석유자원을 개발하기 전에도 국가 재정의 원천인 높은 세율을 징수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석유자원이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실행하는 열쇠가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실 한국은 이미 국가 수입 상당 부분을 의료에 지출하고 있다. GDP 대비 의료 관련 지출비율은 2011년 노르웨이 9.2퍼센트, 한국 7.2퍼센트로 2퍼센트 차이가 난다. 하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의료보험 보장성 차이는 2퍼센트보다 크다. 의료비 지출의 본인 부담비율은 노르웨이 15.3퍼센트, 한국 33.8퍼센트로 한국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부족 부분을 모두 다 채워줄 것처럼 광고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실제로 의료비를 보장하는 비중은 5.9퍼센트다. 민간의료보험 시장으로 투입되는 자금을 국민건강보험에 편입시키고 세율을 높이거나 차선책으로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높은 수준으로 책정한다면 완전보장성 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하는 것이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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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13년 동안 노르웨이에서 느낀 복지국가의 가장 큰 장점은 근심 걱정이 없는 나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기에 아이들이 경쟁에서 겪어야 하는 힘듦과 그로인해 부모들이 겪어애 하는 걱정이 없고, 노후에 기본보장이 되기에 오늘 악착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남보다 더 맛난 것을 먹어야 할 이유도, 내가 남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주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도 없이 스스로 만족하면서 행복한 날을 구가하는 그런 사회가 복지사회다.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노약자, 병자, 장애인들은 도움 없이 인간적인 생활을 스스로 꾸려갈 수 없다. 그들이 최소한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어느 한 개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 사회보장제도 성립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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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는 그래도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이 부의 불평등을 약간 더 잘 줄인 사회라고 봐야 할 듯하다. 한국은 지금도 산업으로서 최악의 비정규직 비율(노동인구 중 56퍼센트 정도)을 전혀 줄이지 못하고 있지만, 노르웨이는 비정규직이 약 8퍼센트에 불과하고, 스웨덴은 16퍼센트 정도다. 1998~1999년 이후 북유럽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는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법제 장치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평등이 실재하고 비정규직들이 -적은 비율이라 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북유럽 사회들도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임을 증명해주지만,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북유럽 노동 대중의 투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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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복지국가의 기본적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대공황 시절인 1930년대 초기였다. 당시 노르웨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인접국가 소련처럼 아예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비록 의회에서는 약세였지만, 급진적인 노조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보수정당들이 차선책으로 차라리 복지개혁을 실시하겠다는 노동당 집권을 수용한 것은, 결국 혁명에 대한 공포로 인한 하나의 양보였다면 양보였다.



1945년 이후에는 노동당이 장기집권했는데(1961년까지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확보해, 복지 관련 법안을 문제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다) 공산당은 여전히 노조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다. 친미적 노동당으로서는 이는 최대 경쟁이자 위협이었고, 공산당에 노동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집권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복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교육과 의료무상화부터 시작해 1960년대 중반 노년연금/병가수당 등을 지급할 종합적인 국가복지기금 설립까지,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주된 복지 개혁들은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혁명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또 일면으로는 자본으로서도 내수 기반 내실화, 즉 유효 수요 늘리기 차원에서 복지 개혁들이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은 계급 간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투쟁과, 보다 가열찬, 혁명적 투쟁의 가능성이 없어다면 그런 타협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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