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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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도가 변한다.라는 말을 했더니 놀러왔던 동생이, 지도가 어떻게 변해? 그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를 지형이나 그 비슷한 불변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뜻일 거다. 그만큼 지도는 신뢰를 받는다. 우리가 아틀라스라는 우직한 신의 이름만큼 믿어왔던 지도를 믿지 않게 된 것은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부터일 것이다. 돈 많은 나라가 우기면 세계는 그 바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 그러면 지도는 그렇게 제작된다. 어쩌면 지도는 힘의 배치도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쩌면 지도는 대체로 정직하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폭넓게 보여준다.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해서 만들었다는 방송국에서 만든 프로그램 <지도의 이면>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 하는데, 우선 참 잘 만들어졌다. 내용이 그야말로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수준 있으며, 나처럼 세계사나 지금의 국제정세에 어두운 사람들에게는 신세계를 보여준다는 찬사를 해주고 싶을 만큼 다르고, 충격적이다. 
  각 대륙별로 역사와 정치, 민족, 경제 그리고 힘에 의해 지도가 얼마나 쉴 새 없이 변해왔나를 그야말로 해설이 붙은 고급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이 보여준다. 정치지리의 세계사라는 책의 부제목이 딱 알맞고, 지정학 지도라는 것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음, 음, 이런 소리를 해가면서 읽고, 보게 되는 책이다. 이 책으로, 나는 처음으로 몽골제국의 넓이에 진심으로 놀랐고, 처음으로 미국이 얼마나 스피디하고도 치밀한 나라인가를 실감했다.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넓다 못해 우리 동해에 지나치게 바싹 다가와 있음을 보고 새삼 경악하기도 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런 케케묵은 구호가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느낌. 이렇듯 소리없이 스물스물 변해가는 지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야,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무슨 색깔로 어디에 어느만큼 위치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살아남으리라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고 표지에 씌어 있지만, 그저 거기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적극적으로 그려나가야 하리라는 애국심이 오랜만에 솟구쳤다. 
  중학교 아이들 중에서도 관심있는 아이들이라면 슬슬 읽어보면 좋겠고, 그 이상 되는 사람들은 한 번 주욱 읽고 나서, 시시때때로 들여다보면 좋겠다 싶다. 사람에 따라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겠지만 묵직한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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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품집

<수선된 아이>

 

웹진 <동화 읽는 가족>이 주최하고 푸른책들과 푸른아동문학회가 후원하는 '제1회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과 세미나가 함께 열렸다. 한 해 동안 우수한 중*단편동화를 발표한 작가를 격려하기 위한 이 상의 수상자들은 김기정 「두껍 선생님」, 김민령 「견우랑 나랑」, 김영혜 「수선된 아이」, 이용포 「버럭 할배 입속엔 악어가 산다」, 정은숙 「빰빠라밤! 우리 동네 스타 탄생」, 조영희 「책을 돌려주세요」, 진은주 「천타의 비밀」, 이렇게 일곱 분, 일곱 편이다.

  거기 다녀왔다. 오랜만의 세미나 참석. 여러 모로, 정말 여러 모로 관심 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으니 제법 긴 지하철 여정, 조금은 덜 나은 발목, 변덕스러운 궂은 날씨도 아랑곳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비평가이자 대학교수이면서 소설 및 동화 작품을 하는 박덕규, 배봉기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각각 ‘동화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어린이의 삶, 동화와 시각’이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였고, 이에 대해 심사위원이었던 이금이 작가, 수상자인 김기정 작가, 정은숙 작가가 토론자로 나섰고, 역시 수상자이면서 <동화 읽는 가족> 주간인 이용포 작가가 사회를 보았다.

  대체로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발제자들은 주로 논리나 사건 전개 및 등장인물의 성격적 치밀함, 개연성의 아쉬움을 지적하였다. 특히 박덕규 교수는 그것이 비평가들에게 단련되지 않고 출판사 내부의 단련을 통해 바로 독자와 만나는 동화 생산 시스템과도 관련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여 반박 토론이 자못 활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이끌었고, 배봉기 교수는 날카로움을 특유의 유머로 감싸 콕콕 찌르는 말맛을 음미하게 해주었다.

  독자가 어린이이니, 거기에 알맞은 논리와 개연성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반박, 지나치게 설명하는 일의 재미없음, 지나치게 줄이는 일의 생뚱맞음, 그 모든 것의 가이드라인이 어린이 독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일의 지난함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더 깊이 토론하지 못한 아쉬움은 조금 있었다. 세미나 이후 이어지는 시상식은 발제자들에게 ‘축하 자리에서 강한 비판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식의 눙치는 표현을 자주 하게 했고, 토론자들도 상 받으러 와서 강하게 반박하기는 뭣하다는 식의 멘트를 날려 청중의 웃음을 여러 번 자아냈다. 그 와중에도 김기정 작가는 세상을 떠나신 권정생 선생님의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충고를 예로 들면서도 상당히 긴 이야기를 하여 안타까운 마음 중에도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을 주었고(이 작가가 상당히 미남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개인적으로, 동화를 접하면서 거창한 시작에 비해 서둘러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일이 적지 않고,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끌고 가려한다는 느낌을 받은 일도 여러 번 있어서, 차라리 검은 현실이나 진실을 그냥 드러내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하는 편인데, 동화가 어디까지 그래야 하는지, 혹은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긴박감 있는 토론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결국 귀가 길에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보다 내린 결론은 두루뭉술하게 ‘다양성’이라는 말로 지어졌다. 이래야 한다거나 저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어야 하고, 십인십색의 엄마 + 아이 독자가 취사선택할 문제라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팽창 또는 발전일로에 있는 어린이문학을 뿌듯하게 생각해보며, 이렇듯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동화 읽는 가족>과 푸른책들에게 고맙다는 생각. 어쨌든 동화에 관한 행사에 다녀오노라니 앞으로 동화 마당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빈자리가 커다랗게 보이겠지 싶은 생각이 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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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3
메리 셸리 지음, 이인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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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수많은 오해 가운데도, 압권은 얼굴에 꽂힌 나사못이 아닐까 싶다. 적지 않은 이들이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기도 하겠다. 그리고 더 심각한 오해는 이 책이 처음부터 3류 호러영화로 세상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런 오해와는 달리 계몽주의의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신을 비웃는 낭만주의 계열의 고전소설이다. 작가인 메리 셸리는 저 유명한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이 책의 저술은 바이런이나 셸리가 주도한 낭만주의 운동의 연장선이기도 했겠지만, 그녀와 셸리의 사랑이 셸리의 전 부인의 자살을 부른 점이나, 어린 세 자녀의 잇따른 죽음, 남편 셸리가 서른 살에 먼저 세상을 뜬 것 등 작가의 인생에는 깊은 굴곡이 있었고, 그것이 어쩌면 이처럼 어두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젊은 과학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개구리에게 전기가 통하자 근육이 움직이는 것, 생명활동이 수많은 화학작용의 결과라는 것 등을 기반으로 마치 연금술에 매료되듯, 생명창조에 매달린다. 그는 이 연구가 인류에게 큰 선물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윽고 온갖 화학약품이 담긴 물탱크에 자신의 허벅살을 잘라 넣고 번개의 전기를 통하게 한 결과, 정말로 기적처럼 생명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배양 시간을 조절하지 못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생겨나자 빅터는 혐오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버린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결국 빅터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 그리고 그 자신의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그 누구와도 섞일 수 없는 혐오스러운 괴물(빅터는 괴물이 너무 혐오스러워 이름을 붙여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깊은 슬픔을 나눌 배우자를 원했으나 빅터는 마지막 순간에 배양 중인 새로운 생명을 파괴하여 그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괴물은 영원히 종적을 감춘다.

  솔직히, 종교는 없으나 무신론자는 아니며 인간이 접근하지 말아야 할 최후의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 이 책의 결말은 너무 온건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름 없는’ 괴물의 복수가 너무 쉽게 막을 내렸다는 생각이다. 지나치게 뛰쳐나가 버린 과학의 결과는 몇 사람의 죽음보다도 훨씬 더 참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핵폭탄이나 유전자 변형 식품, 생명 복제 등은 이미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거나 진행 중이다.

  이 책이 쓰인 시대에 생명 복제란 개념이 존재했을 리 만무하지만, 상상력마저 지금보다 덜 발전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미 메리는 인간의 과학이 가지는 맹목성, 위선 내지 그 말로를 예견할 수 있었지 싶다. 인류를 위한 연구라는 명분으로 너무 나아간 과학은 늘 인간에게 심각한 부작용으로 답한다. 불치병 내지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의 빛으로 여겨져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줄기세포 연구는 그 과학적 성과는 차치하고,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부작용을 낳지 않았던가.

  그러니 과학 발전을 이루지 말자고 할 수도 없고, 옛날 식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딱히 어떻게 하자고 할 수는 없는 문제이나 제동장치 없는 수레가 비탈을 굴러내려가는 걸 보는 듯한, 혹은 그 수레에 탄 느낌인 것을 어찌해야 하나!

  그런 의미로 <프랑켄슈타인>은 경고의 책이다. 삶이 그렇듯이 과학도 중간 중간 되돌아보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속도 조절의 권유이다. 그렇다.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최선일 수 있다. 빅터가 괴물의 요구에 따라 가엾은 여인 저스틴의 복제를 만들다 중지한 것처럼, 시작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 들어선 길은 되돌아 나와 다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정말 너무 멀리와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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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이금옥 지음, 박민의 그림 / 보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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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개구리 이야기는 뭔가 납득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도,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려 하면 좀 막히곤 했던 기억이 있었다. 왜 청개구리는 그처럼 엄마 말을 듣지 않았던 걸까? 착한 엄마에 장난꾸러기 아들이라는 설정이야 그렇다 치고, 엄마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정도면 장난이라 이름붙이기는 뭣한, 그야말로 나쁜 아들이 아닌가. 게다가 뭐든 거꾸로만 하자면 머리도 좋았을 텐데, 왜 바보처럼 엄마를 냇가에 묻고 울기만 할까? 한 번 잘못 되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건가?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란다." 이렇게 마무리하고 나면 아이들은 늘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청개구리는 어떻게 됐어?" "아마, 혼자 살았을 걸? 자기 같은 아들 낳기 싫어서." 나는 주로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마치 엄마에게 잘못 한 아들은 결혼할 권리도 없다는 듯이.

  그런데 이 <청개구리>는 그런 답답한 의문에 조금의 물꼬를 터준다. 그저, 청개구리가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고, 혼자 살며 자식을 키우던 엄마가, 순전히 자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늘 고됐고, 외로웠던 것이 이른 죽음의 한 단초이기도 했다는 걸 그림 사이사이, 문장 굽이굽이 이러저러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신랑각시 청개구리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럼에도 삶은 간단없이 이어진다는 해피엔딩의 실마리도 은근히 제시해 보여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60대 이상 연령층의 우리 교포 2세들이 그리고 썼다는 책. 그들이 우리 옛이야기를 아름다이 되살리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그리고 썼다는 책. 오른 쪽으로 넘기도록 되어 있는 점이나, 세로쓰기로 된 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그리고 어휘나 문장이 왜 특별히 곱고 서정적인지, 그림도 왜 그처럼 마디마디 아름다운지도 이해되었다. 교포 작가들의 마음자락이 펼쳐진 때문일 것이었다. 모국을 향한.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피리 불고

햇빛이 너울거리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 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이런 식의, 노랫말처럼 사르르 감기고, 낱낱의 어휘가 모두 곱게 다듬어진 한 편의 시화 같은 ‘청개구리’ 이야기. 읽어주다 목메어 잠깐씩 멈추곤 했는데, 그건 아마 녹진녹진 뼈가 녹을 정도로 그저 자식 뒤치다꺼리만 하다 하늘나라로 가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책 속에 투명하게 어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권정생 선생의 <무명저고리>도 떠오르고, 김동인 선생의 <복바위>도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으려나…. 참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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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고집스럽게 뭔가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어휴!' 하면서도 그 사람이 늘 거기 서 있겠거니 믿는 마음이 든다. 결국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오늘 도서출판 보리에 가서 느낀 것이다. 여기서 고집이란 편의나 필요에 따라 쉽게 변하는 풍조에 상대되는 의미로, 힘든 가운데도 양보하지 않으며, 잘 나갈 때는 더욱 마음을 다잡게 하는 신념 같은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값어치를 하는 책'을 만들고자 하는.

나무 값.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값어치를 하는 책'을 만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이 아름다워 참 감탄했는데 내심 그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들이 얼마나 나무 값을 하고 있나...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책을 통해 많은 부분 아이와 나누고자 하며, 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의 마르지 않는 원천을 발견하며, 책이라는 것의 존재에 늘 고마워하는 그런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신념이 얼마나 속속들이 배어있는가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었다.

 확인.

편집장의 짧지 않은 이야기 속에는 무슨 책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꼿꼿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일부러라고 할 정도로 꼬장꼬장하게 책을 기획하고 만들며, 잘 팔아보겠다는 이유로 소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며, 남들이 건드리기 저어하는 부분에 꽤 깊숙이 개입하는 이 출판사의 포트폴리오에서도 그점은 잘 드러나 보였다. 어린이가 직접 지은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을 책을 엮어내는 일, 북한 지역의 고전물을 국역하여 책을 펴내는 일은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아도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의미로워 보였다. 

점심.

가정에서도 극성스럽지 않으면 차리기 힘든 건강한 밥상을 지어서 나눠먹는 모습이 좋았다. 변산지역 한울공동체에서 공수해온 먹거리로 마련하는 그 밥상에 끼어 밥을 먹으니 자연에 가까운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일조하겠다는 이들의 철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편집장의 말처럼 철학의 실천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천.

좋은 생각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좋게 행하기는 정말로 어렵다. 처음 출판사를 차릴 때는 얼마나 큰 사명감과 그에 따른 자연스런 보상을 꿈꾸었겠을까만 얼핏 듣기로도 출판사의 명멸은 하늘의 별처럼 흔하디 흔하다. 그만큼 살아남기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 어려운 사업일 것이다. 게다가 편집장 말처럼 시대정신에 파고드는 사업이니 말이다. 그래서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점점 꼬이고 퇴색하기는 또 얼마나 쉬웠으랴 싶다. 그런데 보리 출판사는 자신의 색깔을 견지하면서도 참 잘해나가는 출판사인 것 같다.

기대.

그렇게, 보리를 닮은 출판사로 주욱 이어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 출판사 앞에 심어져 있는 푸른 보리를 보며, 겨울을 견디고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이 되는 보리를 닮고자 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기분이 노골노골해졌다. 좋구나, 여기 와 본 것이. 이곳 사람들을 만난 것이. 세밀화라는 한 단어로 기억하다가 좋은 생각을 가진 고집스런 집단이라는 다른 느낌을 안고 돌아왔다. 보리 책, 앞으로 더 눈여겨 볼 것이다.


출판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전시판매장 한 켠. 세밀화 작업의 지난함과 정성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각시붕어의 원화. 자연처럼 아름답다.



어린이 시집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의 한 부분. 아이들의 진실한 마음이 예뻐서 웃음이 나고 그 다듬어진 시어에 놀라게 된다.



이층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트여 있고, 이들이 좀 부럽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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