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고집스럽게 뭔가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어휴!' 하면서도 그 사람이 늘 거기 서 있겠거니 믿는 마음이 든다. 결국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오늘 도서출판 보리에 가서 느낀 것이다. 여기서 고집이란 편의나 필요에 따라 쉽게 변하는 풍조에 상대되는 의미로, 힘든 가운데도 양보하지 않으며, 잘 나갈 때는 더욱 마음을 다잡게 하는 신념 같은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값어치를 하는 책'을 만들고자 하는.
나무 값.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값어치를 하는 책'을 만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이 아름다워 참 감탄했는데 내심 그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들이 얼마나 나무 값을 하고 있나...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책을 통해 많은 부분 아이와 나누고자 하며, 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의 마르지 않는 원천을 발견하며, 책이라는 것의 존재에 늘 고마워하는 그런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신념이 얼마나 속속들이 배어있는가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었다.
확인.
편집장의 짧지 않은 이야기 속에는 무슨 책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꼿꼿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일부러라고 할 정도로 꼬장꼬장하게 책을 기획하고 만들며, 잘 팔아보겠다는 이유로 소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며, 남들이 건드리기 저어하는 부분에 꽤 깊숙이 개입하는 이 출판사의 포트폴리오에서도 그점은 잘 드러나 보였다. 어린이가 직접 지은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을 책을 엮어내는 일, 북한 지역의 고전물을 국역하여 책을 펴내는 일은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아도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의미로워 보였다.
점심.
가정에서도 극성스럽지 않으면 차리기 힘든 건강한 밥상을 지어서 나눠먹는 모습이 좋았다. 변산지역 한울공동체에서 공수해온 먹거리로 마련하는 그 밥상에 끼어 밥을 먹으니 자연에 가까운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일조하겠다는 이들의 철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편집장의 말처럼 철학의 실천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천.
좋은 생각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좋게 행하기는 정말로 어렵다. 처음 출판사를 차릴 때는 얼마나 큰 사명감과 그에 따른 자연스런 보상을 꿈꾸었겠을까만 얼핏 듣기로도 출판사의 명멸은 하늘의 별처럼 흔하디 흔하다. 그만큼 살아남기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 어려운 사업일 것이다. 게다가 편집장 말처럼 시대정신에 파고드는 사업이니 말이다. 그래서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점점 꼬이고 퇴색하기는 또 얼마나 쉬웠으랴 싶다. 그런데 보리 출판사는 자신의 색깔을 견지하면서도 참 잘해나가는 출판사인 것 같다.
기대.
그렇게, 보리를 닮은 출판사로 주욱 이어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 출판사 앞에 심어져 있는 푸른 보리를 보며, 겨울을 견디고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이 되는 보리를 닮고자 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기분이 노골노골해졌다. 좋구나, 여기 와 본 것이. 이곳 사람들을 만난 것이. 세밀화라는 한 단어로 기억하다가 좋은 생각을 가진 고집스런 집단이라는 다른 느낌을 안고 돌아왔다. 보리 책, 앞으로 더 눈여겨 볼 것이다.

출판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전시판매장 한 켠. 세밀화 작업의 지난함과 정성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각시붕어의 원화. 자연처럼 아름답다.

어린이 시집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의 한 부분. 아이들의 진실한 마음이 예뻐서 웃음이 나고 그 다듬어진 시어에 놀라게 된다.

이층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트여 있고, 이들이 좀 부럽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