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매콤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1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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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는 나이가 되었고, 딸에게나 혹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철학에 대해 들려주어야 할 필요가 생겼는데,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순전히, 쉬워 보여서 선택했다. 그리고 이후 나온 시리즈들도 모두 구매했다. 백 마디 말로 이 책이 좋으니 나쁘니 해도 실제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별 말 안하고도 다음 책까지 무조건 사게 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다.

  그만큼 쉽게 스며든다는 말이다. 더구나 철학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철학이 쉬울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아빠와 딸의 대화로 엮어진 형식이 마치 청소년 시절 우리 아버지와 내 대화와도 같은 느낌으로 읽혔다. 저자가 실제로도 그런 아버지리라 싶은 느낌이 들었다. 차근차근하고, 시시콜콜하게 딸의 뇌리에 윤리라는 것에 대해 정보와 태도를 심어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할까.

  물론 보기에 따라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는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저 딱 청소년 수준에 알맞다. 그리고 철학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성인 수준에도 알맞다.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으로 칸트가 말한, 선험적으로 주어진 양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도덕에 대한 기준을 보다 확고히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플라톤의 이데아와 통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내려진 가장 큰 벌이 왜 양심의 가책인가에 대해 딸에게 잘 설명할 수 있게도 되었다. 하여간, '이렇게 먹기 좋은 철학이 있구나!' 싶다. 

  시리즈물의 첫 권인 이 책에서는 윤리학을 다루고 있는데 이후 3권에서부터 이어지는 인식론 즉,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에 앞서 윤리부터 다룬 점도 마음에 든다. 모럴 헤저드가 심각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리라 싶어서이다. 사실은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에서 철학자들을 연대별로 굵직굵직하게 다루고 있어 더 체계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정이 가는 책은 역시 이 빨간색 통조림이다.

  모쪼록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접하여 쉽고 자연스럽게 철학을 접하고 논술에도 도움을 받고, 무엇보다 삶의 여러 지침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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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알고 있지 보림 창작 그림책
정하섭 글, 한성옥 그림 / 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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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거친 듯한 재질의, 바랜 하늘빛 표지에 흰 실루엣의 나무가 가득 그려져 있고, 반짝이는빨간 글씨로 제목이 새겨져 있다. 매우 세련된 느낌. 아마 의도했을 자연친화적 느낌. 그야말로 나무 느낌이 어렴풋이 난다.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운 언어로 차근차근 들려주는데, 생태시(詩)처럼 느껴진다. 소리내어 읽으니 절로 목소리가 차분해진다.

  그리고 나도 놀랍다. 움직이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냄새 맡지도, 보지도 못하는 나무가 그 많은 걸 알고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그리고 새와 곤충의 날개와 발을 빌려 씨를 퍼뜨리고, 무성한 숲을 이루어 모여 산다는 사실이. 그러면서도 다른 생명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가진 모든 걸 나눈다는 사실이.

  뿌리가 그려진 커다란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딸이 "엄마, 나무 뿌리는 꼭 가지 같아서 거꾸로 봐도 돼. 나무는 땅속이나 땅위나 모습이 비슷한 걸?" 했다. "그렇구나!" 하면서 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어른보다는 더 나무를 닮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림이 가슴 시릴 정도로 아름답고, 글 없이 그림만 이어지는 몇 페이지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읽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무가 아는 걸 나도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무의 사는 모습을 조금만 더 찬찬히 보면 세상은 아름다워질텐데 싶다. 책의 마지막 두 줄은 이렇다.

   이 세상에 나무가 있어서, 우리가 나무와 같이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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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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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가 도대체 뭔지, 혹은 드레드락스 헤어를 왜 하고 다니는지 일절 알지 못하는 채로 이 책을 집어들었고, 때로 지루해하며, 때로는 빨려들어가는 느낌으로, 또 때로는 밥 말리에 대한 호기심에 안달하며 507쪽을 읽어내려갔다.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라고 하는 이 책의 부제에 대해 뭔지 흥! 하는 느낌으로 시작했으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신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데, 이 인물이 신으로 죽었다는 표현에 대한 알 수 없는 공감 때문이다.

  사실 아무런 주석 없이 온갖 음악적 단어와 인물과 사건들을 남발하는 이 책은 명징하게 와 닿는 무엇은 없고, 며칠 악전고투하며 다 읽은 지금도 모르기는 매일반이다. 무슨 놈의 책이! 이런 느낌마저 들었다. 밥 말리를 경외하지 않는 일반 독자는 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흐름과 어조,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함! 그건 마치 밥 말리가 그랬던 것과도 같다. 모호하고, 호와 불호가 뒤얽힌 상반된 감정으로 읽히며 경멸하다가 존경하다가, 끝내 사랑하게 되는...

  밥 말리는 레게의 시조라 할 만한 뮤지션이다. 불행한 역사를 지닌 가난한 자메이카, 그곳의 흑인 소녀와 중년의 백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것을 필두로 여러 번 어머니에게 버림받으며 음울하고 저항으로 가득한 음악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 (어떤 의미로 아무도 그를 버리지 않았고,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기는 해도 어린 시절을 홀로 버텨야 하는 삶은 버림받음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음악은 에티오피아를 고향으로 여기는 흑인의식, 그곳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떠받드는 라스타파리 종교, 그리고 신체발부를 훼손하지 않는 드레드락스 헤어, 심신을 고양시키는 허브(마리화나를 포함한), 삶의 즐거움에 몰입하는 현세적 가치관(그에게는 여러 여인과 자식들이 존재한다)이 응집된 일종의 영혼의 맹세이다. 물론 라스타들은 실제로 매우 금욕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고기, 소금, 어패류 같은 금기식품이나 가공식품에 오염되면 안 되는 일종의 신성하면서도 굳건한 성전처럼 생각했다.

  군살 없는 그가 고요히 무대에 서거나, 노랫말을 웅얼거리거나, 길다란 머리를 휘저으며 포효할 때면 관중들은 일시에 집단최면에 걸려 버린다. 모두가, 흑인이거나 인디언이거나 혹은 가난한 백인이거나 심지어 부유한 백인까지도 모두가 압제를 증오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노려보게 된다. 밥 말리라는 인물 자체가 하나의 엄숙한 메시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돌연 닥쳐온 뇌종양. 그의 죽음은 그에게 기대어 살던 그의 음악 동반자인 웨일러들은 물론 숱한 음악 향유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일종의 악몽이었다.

  지독히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했던 밥 말리. 폭력과 광기에 휩싸이는가 하면, 더없는 자비로움으로 주변을 감싸안았고, 공포스러울 만큼 완벽한 음악의 구현에 집착했는가 하면, 신비롭기까지 한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던 이.

  도대체 그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이 혼란스러운 느낌. 책 중간 중간 실린 그의 흑백사진을 몇 번이고 다시 쳐다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의 공연을 한 번만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레게며, 모든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고, 밥 말리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는데 어쩐지 그에게 끌린다.

  인터넷을 뒤져 그의 노래 No Woman No Cry를 찾아서 듣는다. 그리고 concrete jungle을 블로그에 걸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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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면 어때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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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에서 리뷰어 모집을 하는데 외면했던 책이다. 작은아이가 벌써 4학년이라 유아도서에 큰 관심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마빡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그러다 북꼼리뷰도서로 이 책이 채택된 걸 보고, '우웅~'했는데, 방금 도착한 책을 보고 나는 환성을 질렀다.

  책이 너무 귀여워서이다. 안봤으면 매우 안타까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치원생 데코는 엄마가 집에서 잘라준 앞머리가 너무 짧아 마빡이라는 놀림을 받지만, 예쁜 딸기핀 하나로 단박에 귀여운 머리로 소문나게 된다.

  중학교 때 단발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던 우리 시대엔, 엄마 아빠가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마당 한 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웃옷을 벗고 앉으면, 아빠께서 가위를 들고 조심조심 머리손질을 해 주셨던 기억, 내게도 있다. 늘 한쪽이 길어서 양쪽을 맞추느라 조금씩 자르다보면 결국 단발머리는 머슴애들처럼 짧아져 버렸고, 나는 툭하면 짜증을 내며 울었다. 아빠는 한 술 더 떠서 이발소에 우리들을 데려가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했는데, 치렁치렁한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 책을 펼쳐들면서 잠깐 추억에 잠겼다. 아빠.

  우리 아빠는 엄격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성미라,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 구경도 자주 다녔다. 팥죽이나 빈대떡을 사주시는 맛에 기꺼이 따라나섰던 그 길이 지금 너무나 그립다. 아빠는 시장처럼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좋아하셨다.

  이 책의 데코가 엄마를 따라 나선 시장 풍경도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졌는지, 시장이 막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도대체 표창 던지는 닌자는 또 뭐냐고요~~ 데코의 방 안 풍경이나 데코네 집 풍경도 매우 실감나고 정겹다. 어질러졌다가 치워졌다가 하는 모습이 꼭 우리 아이들 방과 똑같다. 데코의 부루퉁한 표정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데코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인형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 

  밤이 지나고 날이 새면 뭔가 더 좋은 인생이 펼쳐리리라, 문제가 싹 해결되어 있으리라, 여기는 마음은 데코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가진 소망이다. 그러나 일어나보면 여전히 어제의 문제는 그대로인데, 다행히 데코에게는 언니라고 하는 귀인이 나타났다. 마술처럼 데코의 마음을 녹여버린 언니의 손길, 그 딸기모양 핀. 한마디로 부러웠다. 내게도 딸기핀을 준비했다가 꽂아주는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유치원 아이 전체를 마빡이로 만들어버린 데코의 매력이라니!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즘 어른들에게 뭔가를 던지는 느낌마저 준다. 귀엽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양 내기 때문에 엄마와 아침마다 싸우는 공주님이 있는 집에 특히 강추한다. 그러나 저러나 하냥 기르려고만 고집을 부리는 우리집 둘째 머리를 어떻게 해 볼까나.

  마빡이라는 단어의 선택. 아이들에게 친숙하고 친근감 있으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의 요지를 한 번에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으리라. 처음엔 거부감스러웠는데 이제는 예쁘게 들린다. 그러나 혹시 다른 단어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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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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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조금 낯섦'이었다. 책 표지로서는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고, 읽어내려 가면서는 '오십대 여성의 일상 풀어가기'라는 내용이 의외였다. 톡톡 튀다 못해 시니컬하기까지 한 문투는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적이라는 느낌까지. 독자에게 자꾸만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그걸 자기자신으로 느끼게 하는 묘한 특성도 낯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이 책에 매우 익숙해졌다. 어쩌면 이리 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작가는! 성향이나 성격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누가 몰래 카메라를 들이댄 듯 절묘하게 나와 같았다. 물론 프랑스 특유의 몇 가지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제외하고서이기는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할 때, 작가처럼 나도 두 가지의 생각을 동시에 한다. "네~~"하고 말할 때 많은 경우 속으로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한다. 특히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너무나 상반된 두 종류가 뒤섞여 그걸 정리하는 데 오랜 세월을 쏟아부어야 했을 정도다. 좀 과장하자면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 멀리 유럽에 사는 어느 작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인생을 영위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Ditto, ditto, ditto.


  정중하게 은퇴당한 남편. 늙었다고 많은 걸 놓기에는 젊고, 또 무엇을 새로 해보기에는 늙은! 오랫동안 악전고투 끝에 글 읽고, 글 쓰는 일로 생활의 방편도 삼고 성취욕을 놓치지 않는 아내는 그 남편의 느슨해진 일상까지도 계획하거나 채워주어야 한다. 남자란 스스로 무얼 채우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심지어 '남자는 말다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일 때는 자기 딸들에게 직접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마치 왕처럼 단호한 어조로 당신에게 말을 하고는 전하라'(102쪽)고 하는 비겁한 존재들이다. 자신은 '나라 걱정 하느라 바쁘니 다른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우리 남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나 결국 잔소리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많은 우리들.(109쪽)

  남자에 대한 울화통은 친구들끼리의 수다판에서나 푼다.

  "그만해! 남자들 뇌는 참새 뇌만 한 데다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도 전혀 알아채지도 못 하는 것 알면서 그러니!" / "나도 잘 알아! 그래도 어떤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121쪽)

  그러나 매번 나(우리)는 남자를 감싸안는다. 일정 부분 마마보이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은 자칫하면 '하얀 돌멩이 없는 헨젤'(153쪽)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 꼴은 또 못 본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므로. 때로 놀랄만한 인내를 보여주거나 아픈 내 등을 쓸어내려주는, 속알머리가 조금씩 빠져 맨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들을.

  하여간 이 작가는 징그럽게도 여자 마음을 잘 풀어놓았다. '여자들이 권세를 잡게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 틀림없다'(181쪽)고 하는 생각도 나와 똑 같다. 그리고 유머가 하늘을 찌른다. 이사를 앞두고 루이 16세 양식 서랍장의 거취에 대해 늘어놓다가 갑자기 도둑들에게 귀엣말을 하는 작가라니! 182쪽에 괄호를 치고 이렇게 써놓은 것이다. '작가가 도둑님께 드리는 한 마디 : 이 서랍장은 작가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므로 일부러 오실 필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더러 진짜로 찾아오는 도둑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책을 읽을 정도의 도둑이라면...

  첫 사랑에 대해 작가는 '당신은 가끔 그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당신 이름을 부르며 죽는 것을 상상해 본다.'고 썼는데, 찔끔했다. 또 모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음식을 꾸역꾸역 처먹이려고 한다고 썼는데, 동감이다. 내가 살찐 이유, 구할은 우리 시어머니 때문이다. 남편은 이상한 사람 보듯 하면서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아, 무슨 이런 작가가 다 있담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는 아주 조금 눈물도 흘렸다. 끝까지 먼 이국에 사는 '나의 이야기'를 후벼파는 희한한 작가. 골프 너무 즐기는 남편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데, 남자의 속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저러나, 중간중간 낀 극중 화자의 소설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짜증내며 읽었다. 마치 출판사 편집자가 된 심정으로, 도대체 글이나 쓸 일이지 뭔~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문제의 추리소설 이름은 '트로카데르의 식인마들'이다. 참, 233쪽의 한국식 마사지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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