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빡이면 어때 ㅣ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독서클럽에서 리뷰어 모집을 하는데 외면했던 책이다. 작은아이가 벌써 4학년이라 유아도서에 큰 관심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마빡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그러다 북꼼리뷰도서로 이 책이 채택된 걸 보고, '우웅~'했는데, 방금 도착한 책을 보고 나는 환성을 질렀다.
책이 너무 귀여워서이다. 안봤으면 매우 안타까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치원생 데코는 엄마가 집에서 잘라준 앞머리가 너무 짧아 마빡이라는 놀림을 받지만, 예쁜 딸기핀 하나로 단박에 귀여운 머리로 소문나게 된다.
중학교 때 단발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던 우리 시대엔, 엄마 아빠가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마당 한 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웃옷을 벗고 앉으면, 아빠께서 가위를 들고 조심조심 머리손질을 해 주셨던 기억, 내게도 있다. 늘 한쪽이 길어서 양쪽을 맞추느라 조금씩 자르다보면 결국 단발머리는 머슴애들처럼 짧아져 버렸고, 나는 툭하면 짜증을 내며 울었다. 아빠는 한 술 더 떠서 이발소에 우리들을 데려가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했는데, 치렁치렁한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 책을 펼쳐들면서 잠깐 추억에 잠겼다. 아빠.
우리 아빠는 엄격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성미라,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 구경도 자주 다녔다. 팥죽이나 빈대떡을 사주시는 맛에 기꺼이 따라나섰던 그 길이 지금 너무나 그립다. 아빠는 시장처럼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좋아하셨다.
이 책의 데코가 엄마를 따라 나선 시장 풍경도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졌는지, 시장이 막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도대체 표창 던지는 닌자는 또 뭐냐고요~~ 데코의 방 안 풍경이나 데코네 집 풍경도 매우 실감나고 정겹다. 어질러졌다가 치워졌다가 하는 모습이 꼭 우리 아이들 방과 똑같다. 데코의 부루퉁한 표정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데코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인형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
밤이 지나고 날이 새면 뭔가 더 좋은 인생이 펼쳐리리라, 문제가 싹 해결되어 있으리라, 여기는 마음은 데코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가진 소망이다. 그러나 일어나보면 여전히 어제의 문제는 그대로인데, 다행히 데코에게는 언니라고 하는 귀인이 나타났다. 마술처럼 데코의 마음을 녹여버린 언니의 손길, 그 딸기모양 핀. 한마디로 부러웠다. 내게도 딸기핀을 준비했다가 꽂아주는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유치원 아이 전체를 마빡이로 만들어버린 데코의 매력이라니!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즘 어른들에게 뭔가를 던지는 느낌마저 준다. 귀엽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양 내기 때문에 엄마와 아침마다 싸우는 공주님이 있는 집에 특히 강추한다. 그러나 저러나 하냥 기르려고만 고집을 부리는 우리집 둘째 머리를 어떻게 해 볼까나.
마빡이라는 단어의 선택. 아이들에게 친숙하고 친근감 있으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의 요지를 한 번에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으리라. 처음엔 거부감스러웠는데 이제는 예쁘게 들린다. 그러나 혹시 다른 단어는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