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펭귄은 북극곰과 함께 살 수 없을까? - 북극과 남극의 모든 것 내인생의책 자연을 꿈꾸는 과학 1
일레인 스콧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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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에야 북극점과 남극점에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 지구의 역사는 제쳐두고 인류의 역사에서도 최근의 일이다. 새삼스럽게, 그처럼 고집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이 두 곳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감이 물씬 피어올랐다.

  북극은 바다이고(1958년 미국 잠수함이 북극 얼음 밑을 지나가면서 확실해졌다고 한다!) 남극은 대륙이라는 것, 북극보다 남극이 더 춥다는 것, 그리고 북극에는 북극곰이 살고 남극에는 펭귄이 산다는 것, 남극에는 세종기지가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남극이라고 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정도. 얼마 전 읽은 노빈손 시리즈 중 섀클턴을 중심으로 한 남극탐험 이야기가 있어 읽으면서 가슴 아팠고, 오줌이 공중에서 얼어붙는다는 그곳을 지키는 세종기지 사람들을 생각하면 또 뿌듯함 가운데도 가슴이 좀 아프다. 이 책의 도입 부분에 소개된 스콧 대령 일행도 역시 슬픈 죽음을 맞이했다. 남극은 가슴 아픈 곳인가 싶은 어쭙잖은 생각.

  그러다 이 책을 접했다. 남극과 북극만 과학적으로 접근해 다룬 거의 최초의 책이 아닐까 싶은데, 생각보다 소프트하고 재미있다. 쿡 선장이 남극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도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해 남극대륙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는 대목은 스릴까지 느끼며 읽은 부분이다.

  굳이 기말고사 공부를 '나름대로' 하고 있는 중1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를 기다려 함께 읽었다. 지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시기이니 도움이 되리라 여겨서이다. 또한 단순히 달달달 외기보다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이해하고 아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나의 땅이었던 판게아가 곤드와나와 로라시아로 갈라지고 그것들이 점차 분리되고 일부는 떠내려가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를 형성하고 또 그것에서 일부가 떼어나와 더 남쪽으로 가서 남극대륙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는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지구 자기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다 대단히 새로웠던 것은 아니다. 적도 중심으로 있던 땅에서 열대동물로 출발한 펭귄이 남극에 고립되어 점차 날개를 버리고 수영을 하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수천 년 동안 변해왔다는 사실은, 솔직히 짐작했던 바이다. 북극곰이 회색곰을 선조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럴 것이라 여겼던 이야기다. 하지만 확인하고 나니 더 재미있다.

  미지의 땅을 향한 인간의 분투는 뭔가 가슴 끓게 만드는 울컥함이 있었고, 그러나 인간의 발길이 끝내 자연을 훼손하고 마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좀 부끄럽기도 했다. 1979년과 2003년 북극해 촬영 사진을 비교해 보여 주는 부분은, 이미 많이 봐왔지만 또다시 가슴 철렁한 기분에 휩싸이게도 했다.

  딸아이도 드물게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 집에 있으나 오래 들춰보지 않은 세계지도 관련 책자를 들고나와 북극해와 남극대륙을 새삼스럽게 살펴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정보가 머리에 몇 가지나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별 지구에 대한 환기는 충분히 되었으리라 싶다. 도대체 시속 320킬로미터의 활강바람이나 영하 89도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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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5
허먼 멜빌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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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 딕이 과연 무엇일까? 아하브(이 책에서 표기한 대로 따르면) 선장이 죽음을 향해 돌진하듯이 찾아다닌 거대한 흰 고래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일까? 언젠가 이 책을 최초로 접한 이래 이런 의문이 늘 있어왔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집요하게 싸웠던 큰 물고기나 모비 딕은 같은 의미일까? 신이 아닌 인간의 한계, 헛되고도 헛된 짧은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무모한 분투? 

  이 책 뒷부분에 짧지 않게 실린 배경지식이나 읽는 방법에 대한 안내를 보더라도 모비 딕을 쫓는 아하브의 집념은 사실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당연히, 동행자이면서 관찰자이기도 한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주인공을 누구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청소년에게 포커스를 두고 재구성한 이 책을 읽으며, 청소년에게 알맞겠다 싶고 역시나 완역의 깊은 맛이 2프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그럼에도 또다시 몇 가지의 얽힌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등장하는 온갖 인물들에 대해 일일이 세세한 관심을 두기까지 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것이 명작의 힘이다. 실로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며, 한참 후에도 또 같은 작업을 하게 만드는 힘. 멜빌의 사후 30년만에 스팟라이트를 받기 시작하여 걸작의 높은 자리로 성큼 올라가 앉은 이 책. 삶에 대한 뼈저린 깨달음을 던지는 책. 

  아하브는 바다를 접한 이래 육지에 발을 디디고, 가족과 더불어 평온한 생활을 누려보지 못했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스타벅은 지금이라도 배를 돌리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아하브는 그런 삶이 불가능하다고 처절하게 이야기한다. 스스로 던진 작살에 묶여 그토록 찾고자 했던 모비 딕의 등을 관으로 삼아 바다에 잠길 것을 그는 예견하고 있었다. 다만 달아나지 않았을 뿐이다. 

  평온하고 고요한 삶. 그건 태어날 때부터 거친 바다를 헤매는 우리의 꿈 같은 것은 아닐까?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것.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집어삼킬 가장 강한 고래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굴복하지 않았노라 여기며 장엄히 죽을 곳을 찾아서. 

  마치 구도자가 된 막막한 심정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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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3
차오원쉬엔 지음, 김택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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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이 곱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제각각 다른 우주를 만들어내는 문학작품을 어디에 비유하기는 그렇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때의 그런 맑은 가슴저림이 은은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적지 않은 양이지만 전체가 한 편의 서정시처럼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중간제목들이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지 않고 지나치게 상징적이다 싶어 다시 찬찬히 보니 그것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아름다운 시다. 어쩐지. 아마 작가도 한 편의 시를 써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완결성을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으리라 싶다. 

  시간적 배경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 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십대 중후반의 도시 청년들을 변방의 농촌이나 생산현장으로 보내 노동에 직접 참여하게 하여 정신을 개조한다는 하방운동이 일었던 1960년대 초이다. 

  그렇게 보내지는 지청(지식청년) 중 16세 전후의 메이윈은 부모가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사상에 문제가 있다 하여 끌려가고, 자신은 낯선 시골로 보내졌다. 큰 강 기슭에 자리잡은 농촌마을 다오샹두. 그곳 교장선생님의 아들인 시미는 열세 살의 중학생인데, 못말리는 개구쟁이에다 눈에 띄는 나무마다 조각을 해대는 일로 늘 말썽이 된다. 

  여자 지청들을 태운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 시미는 홀로 마을 어귀에 있는 높은 홰나무에 올라가 자리잡고 느긋하게 강을 바라본다. 어쩌면 시미는 막 피어나는 소년다운 울렁거림을 쏟아부을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미는 붉은 손수건으로 머리를 묶은 소녀 지청(메이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왠지 모르게 수줍은 마음이 차오르고, 그 마음이 금세 얼굴에 드러났다고 했던가. 또 자기가 그 소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디선가 그 소녀를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던가!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미의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메이윈은 시미의 예술적 재능을 눈여겨 봐 주었고, 조소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미에게 쏟아부어 시미를 가르쳤다. 메이윈은 시미가 처음 경험하는 도시적인 세련미, 교양, 우아함과 아름다움, 가녀림이었고, 그의 누이이자 선생님이었고, 다른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중간세상이었다. 

  슬픈 과거를 지닌 메이윈의 상처를 더 크게 앓으며, 시미는 말 없이 메이윈을 지켜주었다. 고모의 갑작스런 부음 때문에 어찌하다 둘만 맞이하게 된 설날. 시미의 엄마가 설맞이를 위해 손수 지어준 새 옷과 신을 입어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며 메이윈은 시미에게 방에 들어갔다가 부르면 나오라고 하지만, 시미는 들어가지 않고 눈바람을 맞으며 서서 기다린다.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메이윈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읽으며 내내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줄 아는 걸까! 아마 메이윈을 친딸처럼 보듬는 시미의 엄마 같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아름다운 정서 탓일까? 시미는 그렇게 훌쩍 자랄 것이다.

  참으로 잔잔하고 아름다워서 다 읽고 나니 책이 오랜 벗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청소년들은 이처럼 길고 잔잔한 이야기를 지루하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들에게 더 귀하게 여겨질 것만 같아 지레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사랑이 원래는 이처럼 고울 수 있음을 요즘 아이들은 자칫 모르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멋진 책, 교훈적인 책, 정보가 가득한 책, 다양한 감동이 있는 책들이 많지만 아름다운 책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있다. 그 어떤 수식어도 다 떼어내 버리고 그저 읽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 나이를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에서 나이 든 이까지 누구에게 읽혀도 거리낌따위가 조금도 없는 책. 그런 의미로 갓 나온 책이지만 이 책은 참 귀하게 느껴진다. 

  끝으로 한 편의 시이기도 한 이 책의 차례를 소개한다. 

  나무 위의 잎, 나무 위의 꽃 / 나무 위의 잎은 바로 우리 집 / 바람도 불고 천둥고 치고 /  태양이 강에 떨어지면 나는 집으로 간다 / 바늘 한 개 사고 실 한 뭉치 사고 / 붉은 끈도 사서 우리 누나 머리 땋으라 했지 / 길게 땋은 머리, 짧게 땋은 머리 / 우리 누나는 한 송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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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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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작가들, 특히 몇몇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소름이 쪽쪽 돋을 때가 더러 있다. 이분이 간밤에 내 일기장을 훔쳐보았나 싶기도 하고, 이 책에 씌어 있는 대로, 같은 식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동질감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뒤로 밀쳐두고 그저 작중 등장인물인 작가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기막히게 40대의 우리를 나타내는 여자이다. 남보다 더 섬세하고, 조울증 기미조차 엿보이게 하는 발랄함과 침울함, 주저하고 갈등하면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버리는 삶의 태도 등은 정도의 문제만 있을 뿐 오롯이 우리 그대로이다.

  숱한 이데올로기와 편견 속에서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너무나 남과 다른 유일한 존재이기에 부딪히는 그 많은 삶의 편린들이 손에 잡힐 듯 전해져온다. 맞아, 맞아 손뼉을 치게도 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으나 얄밉기도 한 말들이 책 전체에서 물씬 물씬 우러나온다.

  애늙은이 같은 고등학생 딸아이의 입을 빌어 다양한 우리 삶을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조렇게 들쑤시는 작가의 역량에 놀라기도 하고, 반면에 너무 지당한 이야기들, 사건들이어서 새롭지 않아, 라는 말도 뇌까려가면서 그러나 끌리듯이 책을 다 읽었다.

  오늘따라 책을 다시 들추어 정확한 문장을 찾는 일이 별로 의미로워보이지 않아 매우 부정확하게 인용하자면 이런 말이 나온다. '악마에게는 과거와 미래만 있고, 천사에게는 현재만 있다.' 그러고보면 많은 시간을 우리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이랬으면 좋았을 걸, 저랬더라면 최소한 어떻지는 않았을 걸 하며 보낸다. 그런 과거 속에서 미래를 떠올리면 참으로 암담하다. 그게 문제였던가 싶은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또 매우 부정확하나 이런 말도 나온다. 어느 만나기 힘든 스님을 만나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으니 스님 왈 '갈 때 가고, 앉을 때 앉아라.'라고 했다던가. 대부분 앉으며 설 일을 생각하고, 걸으며 다다르는 일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렇구나 하고도 생각했다.

  책의 많은 부분은 세 번이나 이혼하고 세 번의 결혼에서 각각 성이 다른 아이를 낳은 작가의 가족을 둘러싼 상처와 치유의 과정이 차지하고 있으나 내게는 그저 그야말로 가족 이야기로 읽혔다. 이 책에서 나오듯이 가족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엄마의 행불행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니, 이혼이든 무엇이 됐든 엄마라는 사람, 그 피와 살을 나눠 가지며 태어난 이들을 중심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애증이기 십상인 가족의 관계를 오늘 어떻게 풀어나가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친근감이 가장 진하게 드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제재로 삼아서 그런지, 좀 미화한 느낌도 있고, 마무리는 상투적이나, 오랜만에 친구 만나 맥주 기울이며 수다 실컷 떤 듯한 개운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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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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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며 한참 생각했다. 'a thousand splendid suns'. 

   태양은 하나라서 정관사 the를 붙이니 천 개의 해라고 하는 이 말은 우주에 널린 숱한 다른 항성들을 뜻하는 말인가? 책의 말미에 문제의 어구가 나오고, 책 소개에도 따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제목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말은 17세기 유명한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에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에서 따온 것으로 해당 시구는 다음과 같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그렇구나. 달도 여러 개, 해도 여러 개. 그럼 이 말은 어쩌면 각각이 우주일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리키는 것일 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삶. 여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저 남자의 반대쪽, 여자의 삶을 살아갈 때는 태양과 같은 찬란함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여자가 어머니가 되면 그 삶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란, 단순히 배에 씨를 품고 세상에 낳고 보듬어 키우는 일로만 되는 자리는 아니다. 미리암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못했으나 그 누구보다 어머니였다. 남편을 공유하는 딸 나이뻘의 라일라와 그 자식에 대해 미리암처럼 어머니다운 태도를 보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다 어머니란. 고향 없는 마른 영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해주는 여성 속에 숨은 거대한 힘. 마치 매일 새로 태어나는 저 찬란한 태양처럼 고루 내리쬐는 빛. 그러므로 미리암이 죽인 라시드는 남편인 한 남자를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편재하는 폭력에 내린 어머니의 분노였다.  

  읽는 내내 전쟁 속에 내몰리는 아프간의 역사와, 겹겹이 중첩되는 크고 작은 압제, 폭력. 그 여러 겹의 폭력과 압제 맨 밑바닥에 놓인 여자와 어린아이의 고단한 삶에 대해 마음이 아프면서,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소설을 읽는 느낌의 무감각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감각함이야말로 가장 큰 장벽일 거라는 생각을 헀다. '어린아이는, 여자는, 아프간은, 중동은, 제3세계는...그래도 돼'라는 식의 온갖 형태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함. 나는 그 수많은 폭력 시스템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인 나는. 

  이 책은 진실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피와 살을 내어 자식을 보듬고 세상을 치유하는 어머니. 가슴이 복받치는 감동을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드는 생각. 어머니는 강하고, 강하다. 어머니가 존재하는 한 태양은 매일 재생되면서 수천 개, 수만 개로 찬란히 빛날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도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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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어요 2007-12-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이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여성의 마음 속에 있다는 말이겠지요.

파란흙 2007-12-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게 이해되더군요. 두꺼운 편인데도 비교적 잘 읽힙니다. 기회 되시면 한번^^

내이름 알아내서 뭐할꺼냐... 2008-11-0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쎄요....빨리 흙에 뭍히고 싶단 생각뿐....아무 위로조차 안되는군요....


파란흙 2008-11-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