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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보며 한참 생각했다. 'a thousand splendid suns'.
태양은 하나라서 정관사 the를 붙이니 천 개의 해라고 하는 이 말은 우주에 널린 숱한 다른 항성들을 뜻하는 말인가? 책의 말미에 문제의 어구가 나오고, 책 소개에도 따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제목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말은 17세기 유명한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에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에서 따온 것으로 해당 시구는 다음과 같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그렇구나. 달도 여러 개, 해도 여러 개. 그럼 이 말은 어쩌면 각각이 우주일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리키는 것일 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삶. 여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저 남자의 반대쪽, 여자의 삶을 살아갈 때는 태양과 같은 찬란함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여자가 어머니가 되면 그 삶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란, 단순히 배에 씨를 품고 세상에 낳고 보듬어 키우는 일로만 되는 자리는 아니다. 미리암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못했으나 그 누구보다 어머니였다. 남편을 공유하는 딸 나이뻘의 라일라와 그 자식에 대해 미리암처럼 어머니다운 태도를 보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다 어머니란. 고향 없는 마른 영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해주는 여성 속에 숨은 거대한 힘. 마치 매일 새로 태어나는 저 찬란한 태양처럼 고루 내리쬐는 빛. 그러므로 미리암이 죽인 라시드는 남편인 한 남자를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편재하는 폭력에 내린 어머니의 분노였다.
읽는 내내 전쟁 속에 내몰리는 아프간의 역사와, 겹겹이 중첩되는 크고 작은 압제, 폭력. 그 여러 겹의 폭력과 압제 맨 밑바닥에 놓인 여자와 어린아이의 고단한 삶에 대해 마음이 아프면서,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소설을 읽는 느낌의 무감각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감각함이야말로 가장 큰 장벽일 거라는 생각을 헀다. '어린아이는, 여자는, 아프간은, 중동은, 제3세계는...그래도 돼'라는 식의 온갖 형태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함. 나는 그 수많은 폭력 시스템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인 나는.
이 책은 진실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피와 살을 내어 자식을 보듬고 세상을 치유하는 어머니. 가슴이 복받치는 감동을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드는 생각. 어머니는 강하고, 강하다. 어머니가 존재하는 한 태양은 매일 재생되면서 수천 개, 수만 개로 찬란히 빛날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도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