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작가들, 특히 몇몇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소름이 쪽쪽 돋을 때가 더러 있다. 이분이 간밤에 내 일기장을 훔쳐보았나 싶기도 하고, 이 책에 씌어 있는 대로, 같은 식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동질감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뒤로 밀쳐두고 그저 작중 등장인물인 작가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기막히게 40대의 우리를 나타내는 여자이다. 남보다 더 섬세하고, 조울증 기미조차 엿보이게 하는 발랄함과 침울함, 주저하고 갈등하면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버리는 삶의 태도 등은 정도의 문제만 있을 뿐 오롯이 우리 그대로이다.
숱한 이데올로기와 편견 속에서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너무나 남과 다른 유일한 존재이기에 부딪히는 그 많은 삶의 편린들이 손에 잡힐 듯 전해져온다. 맞아, 맞아 손뼉을 치게도 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으나 얄밉기도 한 말들이 책 전체에서 물씬 물씬 우러나온다.
애늙은이 같은 고등학생 딸아이의 입을 빌어 다양한 우리 삶을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조렇게 들쑤시는 작가의 역량에 놀라기도 하고, 반면에 너무 지당한 이야기들, 사건들이어서 새롭지 않아, 라는 말도 뇌까려가면서 그러나 끌리듯이 책을 다 읽었다.
오늘따라 책을 다시 들추어 정확한 문장을 찾는 일이 별로 의미로워보이지 않아 매우 부정확하게 인용하자면 이런 말이 나온다. '악마에게는 과거와 미래만 있고, 천사에게는 현재만 있다.' 그러고보면 많은 시간을 우리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이랬으면 좋았을 걸, 저랬더라면 최소한 어떻지는 않았을 걸 하며 보낸다. 그런 과거 속에서 미래를 떠올리면 참으로 암담하다. 그게 문제였던가 싶은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또 매우 부정확하나 이런 말도 나온다. 어느 만나기 힘든 스님을 만나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으니 스님 왈 '갈 때 가고, 앉을 때 앉아라.'라고 했다던가. 대부분 앉으며 설 일을 생각하고, 걸으며 다다르는 일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렇구나 하고도 생각했다.
책의 많은 부분은 세 번이나 이혼하고 세 번의 결혼에서 각각 성이 다른 아이를 낳은 작가의 가족을 둘러싼 상처와 치유의 과정이 차지하고 있으나 내게는 그저 그야말로 가족 이야기로 읽혔다. 이 책에서 나오듯이 가족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엄마의 행불행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니, 이혼이든 무엇이 됐든 엄마라는 사람, 그 피와 살을 나눠 가지며 태어난 이들을 중심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애증이기 십상인 가족의 관계를 오늘 어떻게 풀어나가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친근감이 가장 진하게 드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제재로 삼아서 그런지, 좀 미화한 느낌도 있고, 마무리는 상투적이나, 오랜만에 친구 만나 맥주 기울이며 수다 실컷 떤 듯한 개운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