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3
차오원쉬엔 지음, 김택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음이 곱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제각각 다른 우주를 만들어내는 문학작품을 어디에 비유하기는 그렇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때의 그런 맑은 가슴저림이 은은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적지 않은 양이지만 전체가 한 편의 서정시처럼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중간제목들이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지 않고 지나치게 상징적이다 싶어 다시 찬찬히 보니 그것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아름다운 시다. 어쩐지. 아마 작가도 한 편의 시를 써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완결성을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으리라 싶다. 

  시간적 배경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 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십대 중후반의 도시 청년들을 변방의 농촌이나 생산현장으로 보내 노동에 직접 참여하게 하여 정신을 개조한다는 하방운동이 일었던 1960년대 초이다. 

  그렇게 보내지는 지청(지식청년) 중 16세 전후의 메이윈은 부모가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사상에 문제가 있다 하여 끌려가고, 자신은 낯선 시골로 보내졌다. 큰 강 기슭에 자리잡은 농촌마을 다오샹두. 그곳 교장선생님의 아들인 시미는 열세 살의 중학생인데, 못말리는 개구쟁이에다 눈에 띄는 나무마다 조각을 해대는 일로 늘 말썽이 된다. 

  여자 지청들을 태운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 시미는 홀로 마을 어귀에 있는 높은 홰나무에 올라가 자리잡고 느긋하게 강을 바라본다. 어쩌면 시미는 막 피어나는 소년다운 울렁거림을 쏟아부을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미는 붉은 손수건으로 머리를 묶은 소녀 지청(메이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왠지 모르게 수줍은 마음이 차오르고, 그 마음이 금세 얼굴에 드러났다고 했던가. 또 자기가 그 소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디선가 그 소녀를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던가!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미의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메이윈은 시미의 예술적 재능을 눈여겨 봐 주었고, 조소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미에게 쏟아부어 시미를 가르쳤다. 메이윈은 시미가 처음 경험하는 도시적인 세련미, 교양, 우아함과 아름다움, 가녀림이었고, 그의 누이이자 선생님이었고, 다른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중간세상이었다. 

  슬픈 과거를 지닌 메이윈의 상처를 더 크게 앓으며, 시미는 말 없이 메이윈을 지켜주었다. 고모의 갑작스런 부음 때문에 어찌하다 둘만 맞이하게 된 설날. 시미의 엄마가 설맞이를 위해 손수 지어준 새 옷과 신을 입어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며 메이윈은 시미에게 방에 들어갔다가 부르면 나오라고 하지만, 시미는 들어가지 않고 눈바람을 맞으며 서서 기다린다.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메이윈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읽으며 내내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줄 아는 걸까! 아마 메이윈을 친딸처럼 보듬는 시미의 엄마 같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아름다운 정서 탓일까? 시미는 그렇게 훌쩍 자랄 것이다.

  참으로 잔잔하고 아름다워서 다 읽고 나니 책이 오랜 벗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청소년들은 이처럼 길고 잔잔한 이야기를 지루하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들에게 더 귀하게 여겨질 것만 같아 지레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사랑이 원래는 이처럼 고울 수 있음을 요즘 아이들은 자칫 모르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멋진 책, 교훈적인 책, 정보가 가득한 책, 다양한 감동이 있는 책들이 많지만 아름다운 책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있다. 그 어떤 수식어도 다 떼어내 버리고 그저 읽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 나이를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에서 나이 든 이까지 누구에게 읽혀도 거리낌따위가 조금도 없는 책. 그런 의미로 갓 나온 책이지만 이 책은 참 귀하게 느껴진다. 

  끝으로 한 편의 시이기도 한 이 책의 차례를 소개한다. 

  나무 위의 잎, 나무 위의 꽃 / 나무 위의 잎은 바로 우리 집 / 바람도 불고 천둥고 치고 /  태양이 강에 떨어지면 나는 집으로 간다 / 바늘 한 개 사고 실 한 뭉치 사고 / 붉은 끈도 사서 우리 누나 머리 땋으라 했지 / 길게 땋은 머리, 짧게 땋은 머리 / 우리 누나는 한 송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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