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청이 무슨 효녀야? ㅣ 돌개바람 14
이경혜 글,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3월
평점 :
요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적인 의미를 덧붙이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이야기를 바꿔보는 시도도 자주 눈에 띈다. 더러는 유치하기도 하고, 더러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늘 드는 생각은 원전이 사라지고 덧입혀진 이야기만 떠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인어공주>의 묘미는 그녀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는 슬픔에 있는데, 많은 아이들이 해피엔딩으로 착각하고 있다. 인어공주가 바보같은 선택을 했느냐, 아니냐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흥부와 놀부를 두고 어느 쪽이 착하냐는 이야기만 배워 왔던 우리 나이 사람들에게, 언젠가부터 제기된 이런 식의 책임감 없고 무능하며 대책없는 흥부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조그만 충격이었다. 그러나 공감되었다. 또, 단호함이라고는 없고 그저 두 아우의 충심에만 의존했던 유비보다 지략과 단호함, 부하에 대한 사랑까지 두루 갖춘 조조가 더 낫다는 발상도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충격, 그러나 공감.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런 시각들이 편치 않았다. 시대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해야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옛 것이 그래도 좋고 편한 구태의연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무슨 책에선가, 심청의 생각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그처럼 무모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나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눈 먼 아버지를 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최악의 선택을 한 심청은 그야말로 비판의 대상이 될 만했다. 장승상 댁에서 양녀로 삼겠다 했을 때 그걸 수용하기만 했더라도 그처럼 슬픈 이야기를 펼쳐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당장의 자존심과 의리 때문에 뒷날을 도모할 줄 모르는 태도라니! 뭐, 이런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한참 고민했다. 머리는 이쪽을 따르는데, 마음이 옛날로 치닫는 모순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밤새 울며 아버지의 옷을 깁고, 허황될 수 있을 공양미의 효험을 믿으며, 뱃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인당수로 향하는 심청을 비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승상 댁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녀 자리를 수락할 수 없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나로서는 그런 편치 않은 심정으로 읽게 되는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옛이야기를 그저 비틀기 위해 비트는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가의 상상력과 세상을 보는 안목, 무엇보다 글 솜씨는 다른 책과 차별화된다. 특히 뺑덕어멈과 팥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놀라울 정도였다. 그건 '사람에 대한 애정을 지닌 작가'만이 내놓을 수 있는 따뜻함이기도 했다. 우리가 쉽게 평가하는 '악한 인물'의 내면을 진실로 들여다보는 시도를 이경혜 작가는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많은 생각들이 나올 수 있을 그런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 이전에 원래 이야기에 대한 충분한 독서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착함' '효' 등의 가치는 불변인 것인데, 그 양태가 달라지는 것과 근본적인 변질의 구별을 아이들이 잘 하지 못한 채로 '달리 보기'만 신경 쓸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이 책을 읽히는 어른들이 작가의 의도를 잘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로 작가의 말에서 한 구절이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