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전자 - 어른이 되기 전에 먼저 펼쳐보는 세상 그루터기 1
안도현.엄홍길.안도현 외 지음 / 다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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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른이 되기 전에 먼저 펼쳐보는 세상'이라는 부제목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보되 다루는 내용은 어른을 망라한다는 뜻인가 보다고. 이 책은 어른이 된 작가, 만화가, 의사, 교수 등 글을 써 낼만한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일종의 수필 모음집이다. 주로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담이 주를 이루고 있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다. 또, 나중에 돌이켜보는 유년은 대개 그립기 마련이어서 실린 이야기들도 아름답고 아련하다. 물론 개중에는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도 있고, 놀랍거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 

초등 5학년인 둘째에게 몇 이야기를 읽어주니 왈, "음, 퍼니하고도 엘레강스해."라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재미있으면서 우아한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란다. 내친 김에 흉도 한번 보라고 하니 "어려운 말들이 좀 있어서 신경 써서 들어야 했다."고 하는데, 나도 속으로 생각하던 부분이라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아마,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줄 것을 미리 정하고 쓴 글들이 아니어서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그 시절, 그 말투들이 오히려 정겨웠다. 

사실 첫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도종환 시인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꼬리에 못 박힌 도마뱀' 이야기는 하도 여러 곳에서 읽어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박범신 작가님께도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슴 속에 품고 살 '뱀장어' 이야기는 좀 비약이 심하다 싶어 공감의 폭이 넓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해하겠어? 아, 재미 없는 책' 이렇게 생각할 뻔도 했다. 그러다 확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것은 엄홍길 대장의 극한의 체험담 부분에서부터였다. 발목이 부러져 발이 뒤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한없는 가파른 설원을 기어내려온 엄 대장의 정신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책은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박미경 작가의 '유년의 뜰'에서 귀여워하던 닭과 개가 주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포복절도할 만한 반전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게 가축과 사람간의 섭리이겠거니 싶다. 절대로 가축을 잡아먹지 못할 사람은 사실 살기 힘들기가 쉬울테니. 성석제 작가의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그야말로 완결성 있는 한편의 단편으로 읽힐 만큼 문학적이었다. 이현세 작가의 '고등어와 크레파스'까지 읽고 나니 저절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신 친정 아버지 생각이 울컥 하고 올라왔다. 김영곤 교수의 '개구쟁이의 추억'에서 국어 교과서를 잃어버린 아들을 위해 밤새 번갈아 책 전체를 베끼셨다던 그 부모님들을 생각하면서는 기어이 눈물도 나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시때때로 보면 좋겠구나 싶은 책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같은 나이 들어가는 어른들에게 더 먹힐 책이다. 아련한 추억에 푹 잠기고 싶을 때 다시 꺼내 볼까 한다. 

덧. 예상대로 원전이 있는 글들을 다시 추려 모은 책인데, 열아홉 개의 이야기 중 '축복받은 성격'과 '개구쟁이의 추억'은 이번에 청탁을 한 것인가 보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유년의 뜰'을 쓴 박미경 작가가 '아버지의 초상'에서도 필자로 소개되어 있는데, '아버지~'의 화자는 아내와 자식을 둔 남자여서 이 작가의 글인지 의문스럽다. 감동적인 이야기 '아버지~'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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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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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금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순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도 비틀지 않고 곧장 이야기하되, 표현이 정갈하고 다듬어져 있어 그야말로 순하다. 이 책도 그렇다. 순하다는 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매우 어두울 수 있고, 슬프고 또 아픈 이야기인데도 후벼파는 느낌이 아니라 가슴에 지긋이 스며들게 그렇게 글을 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러 눈물을 찍어내 가며 읽었다. 책을 덮으면서는 마음이 잔잔해졌다. 중2인 딸아이와 옥신각신하는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무척 가슴 아픈 책인데도.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고 후기에 되어 있는데 그래서이겠거니. 

<바다 위의 집<, <초록빛 말>, <벼랑>, <생레미에서, 희수>, <늑대거북의 사랑>.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그 중 <생레미 희수>와 <늑대거북>은 가장 먼저 지어진 이야기라 다른 책에서 접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또 다른 느낌과 색깔로 읽혔다. 아마 이 책의 독특한 구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섯 편의 작품들 각각은 고등학생인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으로 제각기 완결적이지만, 이 아이들 모두는 서로 아는 사이거나 혼자 알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 그래서 전체가 하나의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바다 위의 집>은 기어이 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이상한 애' 은조의 이야기다. '꼭 학교를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을 아이들이나 엄마나 수없이 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이 이야기에는 은조의 블로그 친구의 블로그 친구인 미네르바 혜림의 자살 소식이 나온다. 그리고 '노는 애' 난주가 등장한다.  

반찬가게 집 둘째 딸은 죽은 혜림의 가장 친한 친구로 오해받아 위로차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는데, 필리핀에서 헬렌으로 불리는 이 아이는 사실 공부 잘하고, 예체능에 능하고, 잘 사는 집 딸 혜림을 부러워하고 시기했다. 그런데 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혜림은 자주 헬렌의 꿈에 등장한다. 바로 <초록빛 말> 이야기다. 

<벼랑>은 얼핏 보기에 노는 애인 난주가 가난한 환경을 원망하며 원조교제를 하고 그 사실을 눈치 챈 남학생에게서 협박을 당하다, 더 힘든 아이를 떠밀고마는 슬픈 이야기이다. 어찌나 슬픈지 얼마 전 읽은 <조대리의 트렁크>에 실린 어느 작품을 읽을 때처럼 손이 떨려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다. '노는 애'라는 딱지는 누가 누구에게 붙여주는 것일까. 

난주의 남자친구 규완이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있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고 노랑 머리를 한 희수이다. 희수는 <생 레미에서, 희수>에서 선우와 함께 주인공으로 나온다. 남자아이에게 먼저 마음을 고백할 만큼 솔직한 희수를 선우는 결국 떠나보낸다. 부모 없고, 학교 안 다니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희수는 선우에게 버겁다. 생 레미는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지낸 곳.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내게 그곳에 홀로 선 희수가 눈에 밟혀 왔다. 

<늑대거북의 사랑>은 엄마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하는 민재 이야기다. 민재는 키우던 늑대거북을 찾아 짝사랑했던 과외 선생님을 찾아가는데, 이웃집 선우가 쓸쓸한 얼굴로 돈과 신발을 빌려준다. 아마 선우의 표정에는 희수가 어렸으리라. 그리고 이 이야기에도 혜림은 등장한다. 어쩌면 혜림은 청소년들의 슬픈 자화상, 그것일 것이다. 

참 긴밀한 짜임새를 지닌 책.

청소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좁고 좁은 생각의 틀을 벗어던지려는 노력을 하겠노라 다짐하게 만든다. 학교, 공부, 성적 따위로 아이의 인생 전체를 묶어 두고 한 길로만 내몰려는 억지를 자제하도록 만드는 책. 하지만 참.....쉽지 않은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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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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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백부터. 오쿠다 히데오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남쪽으로 튀어>나 <공중그네>가 인터넷 서점의 각종 메뉴를 화려하게 장식할 때, 마치 이 책의 주인공 히사오 다무라가 존 레논의 죽음 앞에서 일부러  외면했던 것처럼, 롤링스톤스의 일본 공연 때 무심한 척 해보였던 것처럼 나도 히데오의 작품을 건너뛰었다. 남들이 와~ 하면 나는 칫, 한다. 마치 히사오처럼. 

먼 과거로 돌아가 보니(이 책이 그렇게 이끌었다.) 히사오는 바로 나였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상경했던 나. 재수를 했거나 대학 중퇴를 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잡지사행을 선택해 밤을 밥 먹듯이 새우며 선배 기자들 밑을 기어다녔던 일, 어느 날 프리랜서로 나서 온갖 클라이언트의 뒤를 따라다니며 허접스러운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했던 일 등등. 다르다면 그는 상당히 잘 나갔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정도. 

책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내 청춘도 80년대 중후반에 맞이하고 보냈다. 저자의 자서전적인 느낌도 상당히 풍기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내게 공감되었다. 히사오의 청춘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꼭 어제 일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었다! 그래, 나고야와 경합하여 서울이 이겼었다. 88 올림픽. 아, 이제 고색창연해져 버린 쌍팔년도 식. 그 무겁고도 가벼웠던 시절. 스무살, 서울 

역자 후기에서 옮긴이는 이 책의 최고 조연이 누굴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나는 히사오의 클라이언트 중 하나인 고다가 떠올랐다. 그런 이런 말을 한다. 

"남자라는 건 말이지, 개인 요리사를 고용했을 때 비로소 일류가 되는 거야. 영국 귀족들도 다 그렇잖아? 그놈들 아예 소믈리에까지 거느리고 있어. 그에 비하면 내 호사는 아직 멀었어." 

고다는 부동산으로 갑자기 떼돈을 번 전형적 80년대식 부자다. 큰소리 탕탕 치던 그는 포장마차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정을 한다.  

"친구들을 잃어버렸어. 물론 옛날이 좋았다고는 전혀 생각 안 해. 쥐꼬리만한 월급에 실컷 부려먹고, 무능한 상사는 잘난 척 위세나 부리고, 좁은 집안에서 복닥거리며 살고, 그런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어. 하지만 말이야. 그때가 그립기는 하더라고." 

나도 그때가 그립다. 

1979년에서 89년까지의 10년 동안을 여섯 개 장으로 나누어 각각이 하나의 완결을 이루도록 하면서 전체가 장편소설이 되게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게 우리 인생을 닮았다고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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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역시 글쓰기의 저력이 이해됩니다.^^
오쿠다 히데오~~~ 책따세 책으로 만났지요.
이 책은 아직...인터공원 서평단 신청했는데 될려는지...

파란흙 2008-06-0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공원 서평단 꼭 되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보다 우리들에게 더 재미있을 이야기.^^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아트가이드 (Art Guide) 6
권오숙 지음 / 예경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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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 흔히 곁들여지는 그림들은 두고두고 신화의 이미지로 뇌리에 남는다. 어느 날 새하얀 대리석의 彫像들을 대하며 문득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페르세우스를 떠올리듯이. 그런데 셰익스피어, 하면 그림보다는 영화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올리비아 핫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이년 전쯤 더스틴 호프만이 샤일록으로 나왔던 <베니스의 상인> 등이 그렇다. 셰익스피어와 그림을 그리 연관지어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이 대가의 작품들과 그림의 조합은 읽기 전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셰익스피어를 그림으로 읽다!

우선, 이토록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그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많은 그림들을 찾아내고, 각각의 그림에 간단하나마 그림 사조별 특징까지 짚어가며 설명해주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림 중에는 연극무대의 배경그림이나 배우를 그린 그림들도 상당수 있어, 원작이 희곡이라는 실감을 새삼 했다.

작품마다 일일이 원전을 찾아내 표기해 준 것도 좋았다. 거의 모든 작품에 원전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과연 셰익스피어는 설정이나 줄거리보다 대사 하나하나가 압권이라는 느낌도 더 강해졌다.

이 책의 특장점 중 하나는 본문의 바깥 부분에 배치한 '감상 포인트'이다. 작품마다 적어 놓은 '감상 포인트'에서는 다른 데서 쉽게 접하지 못할 내용도 꽤 많이 알려주고 있다. 죽음까지 불사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사랑이 단 7일간이었다는 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또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여성이 무대에 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이 여장을 하고 여자 역을 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다시 떠올랐으며, 셰익스피어가 그런 연극사적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여주인공들이 남장을 하는 테크닉을 취했다는  대목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감상 포인트였다. 

무척 잘 만들어진 책.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그림으로 읽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원래 플롯 자체가 복잡하고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기 십상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줄거리만으로 소개하는 부분이,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워 보였다. 4대 비극이나 유명한 희극들을 제외하고 <헨리 4세> <리처드 3세> 등은 내용 숙지가 쉽지 않아 그림을 감상할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림 위주로 감상하자니, 알맹이가 빠진 듯해 뭔가 아쉽고!

결국 이 책을 잘 보려면 여기에 소개된 수많은 작품을 미리 좀 읽은 상태에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넘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체를 소설 읽듯이 읽어내려가기보다는 띄엄 띄엄 오래 곁에 두고 읽는 것이 좋겠다 싶다. 볼 때는 책에 소개된 줄거리를 다시 훑은 다음, 그림과 그림 설명, 감상 포인트를 꼼꼼히 짚어가며 읽고, 별도로 소개된 명대사들은 원문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소리내어 읽기 정도는 한번씩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사전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고 싶을 때마다. 아쉬운 점 하나. 그림이 좀더 크고 선명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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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예찬 - 신숙옥이 제안하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비결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 푸른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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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악인은 남을 해코지하는 그런 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신숙옥 저자가 예찬하는 악인은 약자, 그러나 그저 약해빠진 사람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발버둥질하는, 패배의식 따위 던져버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악바리'들이다. 

  이런 생각이 매우 새로우냐,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당연해서, 그래서 더 공감의 폭이 크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며 세상이 녹록치 않고, 아니 너무 기막히고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너 나 없이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에잇, 될 대로 되라.'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낼 것인가. 사실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내게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책을 몇 장 넘길 때는 그저 그랬다. 재일교포들에게서 나올 법한 소리들이군, 싶기도 하고 번역을 해도 남는 일본식의 말투가 살짝 거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며 그 모든 걸 상쇄할 진정어린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재일 한국인, 여자, 낮은 학벌이라고 하는 3중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며 스스로 발버둥질로 성공을 일궈온 저자의 이야기는 그저 듣기 좋은 충고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발버둥질의 실제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한다. 수많은 사례들이 그저 사례로만 그치지 않고 분명한 방향성으로 다가온다. 

  -약자의 발버둥질은,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거나 호소할 길도 막힌 수많은 약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언뜻 고립무원처럼 보이는 발버둥질이라도 사실 그 배후에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무수한 시선이 있다.- 41쪽. 

  말하자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동지들이 있다'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버둥질을 하다 보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녀는 발버둥질을 너무 처절한 기분으로 하지 말고 즐기라고 한다. 그게 될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가 나와 있으니까. 사실 얼마 전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느꼈다. '이분, 이제 투쟁을 즐기는구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연대감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다. 

  -도망하는 것은 최대의 공격이 될 수 있다. 도망하는 것은 절대로 비겁한 일이 아니다. 도망할 수 있는 만큼 도망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124쪽. 

  정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반가웠다. 저자는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도망나오는 일이 결국 북한의 체제에 대한 가장 큰 공격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에로 들면서 이 이야기를 했지만 내게는 매우 여러 의미로 읽혔다. '아, 도망해도 되는구나. 때로는. 지금껏 나는 너무 도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울컥 들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저자는 이런 말도 했다. 

  -'옳은 것을 직설적으로만 말하는' 방식의 정면 돌파는 반드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것은 제대로 된 '발버둥질' 방법이 아니다.- 

  '반드시'라는 말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 말도 내게는 많은 위안이 됐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도 비슷한 위안이 되고, 방법을 새로 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싶다.

  밑줄을 군데군데 쳐 가며 참 잘 읽었다. 일종의 처세서라 할 수도 있을 테고, 생활철학서라고 할 수도 있을 책인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종류인데 참 잘 읽었다.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 더 당당하게 발버둥질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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