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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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금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순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도 비틀지 않고 곧장 이야기하되, 표현이 정갈하고 다듬어져 있어 그야말로 순하다. 이 책도 그렇다. 순하다는 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매우 어두울 수 있고, 슬프고 또 아픈 이야기인데도 후벼파는 느낌이 아니라 가슴에 지긋이 스며들게 그렇게 글을 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러 눈물을 찍어내 가며 읽었다. 책을 덮으면서는 마음이 잔잔해졌다. 중2인 딸아이와 옥신각신하는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무척 가슴 아픈 책인데도.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고 후기에 되어 있는데 그래서이겠거니. 

<바다 위의 집<, <초록빛 말>, <벼랑>, <생레미에서, 희수>, <늑대거북의 사랑>.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그 중 <생레미 희수>와 <늑대거북>은 가장 먼저 지어진 이야기라 다른 책에서 접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또 다른 느낌과 색깔로 읽혔다. 아마 이 책의 독특한 구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섯 편의 작품들 각각은 고등학생인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으로 제각기 완결적이지만, 이 아이들 모두는 서로 아는 사이거나 혼자 알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 그래서 전체가 하나의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바다 위의 집>은 기어이 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이상한 애' 은조의 이야기다. '꼭 학교를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을 아이들이나 엄마나 수없이 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이 이야기에는 은조의 블로그 친구의 블로그 친구인 미네르바 혜림의 자살 소식이 나온다. 그리고 '노는 애' 난주가 등장한다.  

반찬가게 집 둘째 딸은 죽은 혜림의 가장 친한 친구로 오해받아 위로차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는데, 필리핀에서 헬렌으로 불리는 이 아이는 사실 공부 잘하고, 예체능에 능하고, 잘 사는 집 딸 혜림을 부러워하고 시기했다. 그런데 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혜림은 자주 헬렌의 꿈에 등장한다. 바로 <초록빛 말> 이야기다. 

<벼랑>은 얼핏 보기에 노는 애인 난주가 가난한 환경을 원망하며 원조교제를 하고 그 사실을 눈치 챈 남학생에게서 협박을 당하다, 더 힘든 아이를 떠밀고마는 슬픈 이야기이다. 어찌나 슬픈지 얼마 전 읽은 <조대리의 트렁크>에 실린 어느 작품을 읽을 때처럼 손이 떨려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다. '노는 애'라는 딱지는 누가 누구에게 붙여주는 것일까. 

난주의 남자친구 규완이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있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고 노랑 머리를 한 희수이다. 희수는 <생 레미에서, 희수>에서 선우와 함께 주인공으로 나온다. 남자아이에게 먼저 마음을 고백할 만큼 솔직한 희수를 선우는 결국 떠나보낸다. 부모 없고, 학교 안 다니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희수는 선우에게 버겁다. 생 레미는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지낸 곳.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내게 그곳에 홀로 선 희수가 눈에 밟혀 왔다. 

<늑대거북의 사랑>은 엄마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하는 민재 이야기다. 민재는 키우던 늑대거북을 찾아 짝사랑했던 과외 선생님을 찾아가는데, 이웃집 선우가 쓸쓸한 얼굴로 돈과 신발을 빌려준다. 아마 선우의 표정에는 희수가 어렸으리라. 그리고 이 이야기에도 혜림은 등장한다. 어쩌면 혜림은 청소년들의 슬픈 자화상, 그것일 것이다. 

참 긴밀한 짜임새를 지닌 책.

청소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좁고 좁은 생각의 틀을 벗어던지려는 노력을 하겠노라 다짐하게 만든다. 학교, 공부, 성적 따위로 아이의 인생 전체를 묶어 두고 한 길로만 내몰려는 억지를 자제하도록 만드는 책. 하지만 참.....쉽지 않은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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