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선생님과 함께 쓰면 논술이 술술 써지네! 술술 써지네 시리즈 1
윤선희 지음, 연화 그림 / 바다어린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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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 엄마로서, 또 논술에 조금씩 관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논술의 개념이나 실제에 대한 가닥을 잡고, 그걸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에 비례해 논술이라는 것의 가치 혹은 방식에 대한 회의와 의문 또한 적지 않다. 외면한다 하면서도 논술이란 이름이 들어간 책을 기웃거리고, 몇 종류를 사들이기도 했지만 정작 소용이 썩 되지 않는 경험도 꽤 있다. 이 책을 대하며, 별반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그런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좋았다. 이론이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와 닿았고, 논술을 위한 논술이 아니라 잘 살기 위한 논술임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또한 논술을 잘 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실제적으로 예시해 놓았다. 어찌나 실제적인지, 워크북이 별도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흔히 책은 책이고, 논술 워크북은 별도로 필요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전체가 논술 워크북으로서도 기능하고 있어, 읽으며 바로바로 써보고, 만들어보고, 그려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저자가 실전 전문가임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사실 그동안 읽히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적잖이 해왔지만, 써보게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해보게 하는 일에는 다소 소극적이었고 자신이 좀 없었는데, 이 책대로 한 번 끝까지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브레인 스토밍과 마인드 맵핑하기, 토론표 만들기, NIE, 개요표 짜기 등은 많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 책만큼 의욕을 불끈 솟게 다듬어놓은 걸 보지 못했다. 워낙 게으른 편이라 그저 읽고, 생각하고, 쓰기만을 해왔고, 그게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듯해 반성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참 쉽고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긴 말 이리저리 늘어놓고, 온갖 잘난 이야기로 허세를 부리거나, 너무 많은 정보를 주겠다며 머리를 아프게 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논술 술술 1단계라면, 2단계, 3단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초등 3~4학년, 높이 잡아 5학년 정도까지 보고 익히기에 알맞으니까 고학년이나 청소년용 책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단, 갑자기 어렵고 골치 아프게 만드는 그런 기획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살살 올리기. 아마 이 저자는 할 수 있으리라. 이 책으로 미루어서는. 특별히 논술을 돈 주고 배우는데 혹하지 않는 엄마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어쩌면, 아이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로 대두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내 보기에, 현재까지 나온 것 중 거의 완벽한 논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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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라는 출판사. IMF를 넘으면서 망하기 전에 내고 싶은 책 좀 내보자는 마음으로 인문 사회 도서로 방향을 틀었다가, 잘 되고 있다. 잘 되고 있다는 건 독자로서 잘 나가는 책이 몇 권 입에 익고, 찾아가 보니 살림살이가 그럴 듯해서 짐작한 것이지만, 적어도 독자들 불러다 집들이 할 정도면 못나가지는 않을 터이다. 바닥을 쳤다, 혹은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더 내려갈 데가 없으면 올라온다 했던가. 그리고 희망은 늘 올곧은 곳에 들어 있음도 새삼 떠올랐다. 결국 참아내고 소신껏 해서 잘 되는구나. 뭔지 좀 흐뭇한 느낌.  

이 회사가 내는 시리즈 중에 달인 시리즈가 있다. <호모~> 시리즈다. <호모 로퀜스>, <호모 아르텍스> 그리고 <호모 부커스> 등등. 참 그럴 듯한 아이디어이며 책들이다. 그 중 '책 읽는 인간'이라고 할 <호모 부커스>의 저자 이권우 씨를 그린비에서 만났다. 블로그 친구가 간다 하여 따라붙었는데, 결과적으로 무척 좋았다. 이례적으로 늦게까지 떠들다 왔다. 독자가 몇 되지 않아서 거의 사담 수준으로 이야기가 오갔다. 좋았다. 역시 작가는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야 맛있다. 마이크 놓고 멀리서 음성만 듣는 작가도 좋지만 물론.^^ 

매우, 매우 책을 좋아하는 사람. 그 점에는 어느 정도 닮았을라나... 어린 시절 계몽사의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파먹다시피 한 것도 닮았고, 읽은 걸 속으로 되씹기와 마찬가지로 밖으로 내놓기 좋아하는 것도 조금은, 닮았다. 그는 많은 책을 여기저기에 기증한다. 책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랬다. 감당을 넘어서는 수준이어서겠지.^^ 도서평론가라 책이 매일 매일 집에 들이닥치니 결국 방출, 방출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으리라. 그런 그가 죽어도 못내놓고 끝까지 짊어지고 가는 책은 고전과 사전이란다. 앗, 고전 좋아하는 것도 나랑 닮았구나. 예, 나도 그리 생각해요. 완벽히!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그저 좋은 인상만 남긴다. 저자와 출판사에 대해. <호모 아르텍스> 얻어왔다. 호작도가 그려진 컵받침도. 좋았어.



큰 사진. 노인의 웃음이 봄날 햇살같다.



돌로 된 책에 박힌 건 에머랄드일까?



편집자들은 제각기 일반 PC와 디자인용 매킨토시를 겸용한다. 독특.



매우 큰 그림. 그 일부.



이권우 저자가 공유하기 위해 출판사에 갖다 놓은 책의 일부.



유쾌한 저자. 책 읽기의 달인 이권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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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 출판사
    from 도서출판 그린비 2008-10-23 10:43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독자 초대 이벤트 후기10월 16일, 그린비에서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책소개 바로가기)의 저자, 이권우 선생님과 독자분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이권우 선생님의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도 정리하고 독자분들게 드릴 선물과 다과를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맞이를 했답니다. 7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그 생생한 현장을 함께 느껴 보실까요? ^^스무 분 정도의 독자분들이...
 
 
파란흙 2008-10-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y pleasure!^^

파란 2009-02-1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권짜리 계몽사의 책을 파 먹으셨군요. 전 엄마가 돈이 없다고 25권만 사주셨어요. 그 시절엔 전집도 절반 팔기도 했나봐요. 전 25권만 파 먹었어요. 남은 25권이 정말 궁금했었는데 갈증나는 시절이었어요. 어디서 책을 빌려 볼때도 없었는데...그 갈증이 만화로 넘어가고 하이틴로맨스로 넘어가버렸거든요. ㅎㅎ

파란흙 2009-02-14 11:15   좋아요 0 | URL
오호, 만화와 하이틴로맨스라...공통점이 너무 많습니당. 50권짜리 계몽사 전집을 공유하는 일들을 간혹 만납니다. 그러면 유년이 다시 돌아오는 듯 반갑기도 해요. 모르긴 해도 저 책이 오늘날 책 읽는 이들을 여럿 길러냈을 걸요?
 
웨이싸이드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 창비아동문고 245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김중석 그림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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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역된 <구덩이>와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 그리고 원서 <마빈레드포스트>만 읽고서 루이스 쌔커의 팬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치밀함, 세상에 대한 애정과 날카로운 시선이 재미있다. 루이스 쌔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처럼 서로 달라 보이는, 심지어 상당히 반대로 보이는 특징들이 나란히 선 느낌을 받는데, 그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번의 <웨이싸이드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좌충우돌, 내키는 대로, 현실과 마법이 마음 대로 공존하면서, 묘한 규칙성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그는 매우 치밀하게 이 책을 썼을 것이다. 2년도 더 전에 이 출판사에서 나왔던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을 다시 꺼내 이 책과 비교해 읽으니 더욱 그렇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그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 책과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의 카피라이트도 십 년 정도의 간격이 있으니, 세월이 지나도 작가의 머리 속에는 이 천방지축 아이들 하나 하나가 살아 있는 인물들이리라, 그런 생각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웨이싸이드> 시리즈는 한 마디로 재미있다. 코와 귀를 씰룩거리며 아이들을 사과로 변하게 만드는 못된 선생님이 나오고, 사오정 저리 가라 할, 착하지만 묘한 주얼스 선생님이 나오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30층 교실의 뒤죽박죽 아이들이 나오고, 무엇보다 학교 자체가 희한하다. 한 층에 한 교실씩 있는 길다란 31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19층은 없는데, 거기 자브스 선생님의 반이 있단다. 자, 이걸 어떻게 이해하며 읽어야 하나? 그냥, 읽으면 된다. 재미있게. 심지어 한 꼭지는 맨 뒷줄부터 읽어야 하기도 하니까 뭐, 미리 고민하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 특히 어른 독자는. 책을 그다지 좋아라 하지 않는 우리집 중2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니까, 청소년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신나게 읽을 수도 있으리라. 

이야기 하나. 캘빈은 생일선물로 문신을 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친구들은 종일 이런 문신을 해라, 저런 문신을 해라, 어깨에 해라, 엉덩이에 해라 충고를 퍼부었지만, 정작 문신을 해야 하는 당사자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문신은 젤리 고르는 것과는 달라서 뱉어 낼 수 없고 평생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캘빈은 왼쪽 발목에 조그맣게 감자를 새겨넣는다. 친구들은 한심하다거나 멍청하다고 입을 모았고, 주얼스 선생님도 "네 마음에 들면 됐지, 뭐."라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티를 낸다. 그렇지만 캘빈은 상관 않는다. 

캘빈은 어떤 문신이 좋다고 떠들어 대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잘 알았어. 진짜로 뭘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말이야. 문신을 고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캘빈 자신뿐이었지.-135쪽 

'무슨 이야긴지 도통 모르겠어.'하며 읽다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묘한 책. 아직도 <웨이싸이드>를 모르는 사람들은 '일독'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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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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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황폐한 남자가 누굴까, 하고 표지를 뒤적거리니 에곤 쉴레라는 화가가 나온다. 잘 모르지만, 자학적 느낌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주로 그린 남자.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 그림이 딱 맞춤하다는 생각. 작가가 권한 컨셉트일까? 저렇게 삶에 지쳤으되, 눈빛이 형형한 남자의 그림은? 그런데 여전히, 제목이 십분 이해되지 않는다. 밤은, 노래한다...밤은, 노래한다. 노래란, 즐겁거나 슬플 때 저도 모르게 먼지 낀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삶은 노래한다...세상은 노래한다. 즐겁거나 혹은 슬퍼서. 

이 책, 참 슬프다. 언젠가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영화에서 지옥이 바로 자신의 밑바닥에 있음을 발견하는 갖가지 상황들이 너무 무섭고 슬퍼 영화를 본 날 밤 밤새, 혹은 그 후로로 한참 뒤척거린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섭고 슬프다. <혹성탈출>에서 바닷가에 쓰러진 자유의 여신 상을 발견한 주인공의 그런 느낌. 달아날 데가 없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할 때,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유리구슬에서 들여다보는 안네의 느낌. 비극이 자신의 내부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걸 알아버린 오셀로의 느낌.

1930년대의 민생단 사건은 이 책을 통해 생생한 역사로 전달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들의 실체가 무엇이었던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거니와 밝혀질 수도 없으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이다. 오히려, 그 시퍼렇게 날섰던 슬픈 일은 그저 반복되는 삶의 사슬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아마,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의 실체가 보이지 않으면 마침내 자신의 살을 잘라먹는 지옥을 연출하며. 작가가 연변에서 혹은 간도 혹은 동만에서 보고 느낀 것은 어떤 일련의 사건이기보다는 거기도 존재하는 슬픈 삶의 곡절들이었을 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33년 여름. 유격구에 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물음의 정답은 없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그들이 죽어가면서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이유.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죽어갔다. 마치 우리처럼.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누구인가. 

사랑하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살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혁명을 하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민족주의자로 살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이 이책에는 가득 차있다. 좌경과 진보, 마르크시즘과 톨스토이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보수 등이 뒤얽혀진 지금 이곳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얼 바라는지 모르고, 그 무지는 두려움을 낳으며, 옆 사람을 노려본다. 

김해연은 다름 아닌 나다. 빛과 어둠의 세계가 완벽하게 오버랩되는 걸 어느 날 깨달아버린, 순진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만큼 대단한 신념도 없지만 어느 날은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사람. 살아가며 저도 모르게 헤세의 신봉자가 되어 버리는 그저 어떤 사람. 어찌나 동화되던지,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눈 떼지 말고 다 읽으라는 주문이 걸린 듯한 빨간 표지. 표지의 남자는 김해연도 같고, 헤세 같기도 하고, 또 못박힌 예수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매력적이다. 이 책. 분명 장편소설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시로 된 듯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시는 또 戀歌이며, 悲歌로도 읽힌다. '여름 매미들이 부르는 가을 노래'. 해연이 사랑하는 정희의 죽음을 전해듣고 받은 느낌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어찌나 슬픈지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여름 매미들이 가을 노래를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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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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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해.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 먹을 풀이 거의 없게 되지. ...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서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마구 뛰는 거야. 결국 풀을 뜯어 먹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야. ...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앗, 절벽! 하지만 못 서지....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서면? 그 뒤의 양들이 무서운 속도로 덮쳐와 떠밀려서 바다로 떨어지겠지.
 
책의 한 대목을 짜깁기 해 옮겨보았다.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결정적 대목이다.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책은 크게 색다르지 않다. 청소년 이야기다. 좋은 성적, 유명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다른 모든 일을 압사시켜 버리는 청소년들의 삶, 그 숨막히는 삶의 배후에 도사린 사회, 학교, 그리고 부모. 사랑하는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숨통을 죄고, 아이는 숨통을 죄는 이가 다름 아닌 부모라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한다. 창제는 가출이라는 극약처방을 시도하며, 동준은 슬쩍 슬쩍 거짓말을 한다. 또 착한 계모의 손에 길러진 예슬은 반항 끝에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지만, 고통은 고통이다. 

그리고 성준. 동준의 형 성준은 '엄친아'로 대변되는 캐릭터이다. 슬쩍 슬쩍 거짓말도 하고 공부도 고만고만하게 하는 동준과 다른 완벽한 형. 그런데 그가 높은 데서 떨어져 죽는다. 일류 대학을 다니던 그가 떨어져 죽은 것이다. 또, 자살인 걸까?  

마치 추리소설처럼 성준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희한하게도 마치 옆집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낯설지 않다.  

 아이들은 모든 고통을 <스프링벅>이라는 연극을 통해 토해내고, 풀어내기로 한다. 연극은 이 소설과 나란히 전개되며 아이들의 삶과 고뇌를 축약해 다시 한번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매우 빠른 전개와 현실감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 뭉클한 진정성. 군데 군데 눈물을 훔치며 읽은 것은 아마 진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들어 왔던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게 해주는 작가의 역량은 이미 <초정리 편지>에서도 느꼈던 바다. 어쩌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는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싶은데, 정작 부모인 나는 고통스럽게 읽었다.  

낯설지 않은데, 아픔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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