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을 읽어 버린 소년 - 벤저민 프랭클린
루스 애슈비 지음, 김민영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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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어느 한 부분을 완벽히 타고나는 사람이다.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처럼. 그러나 그들은 전문 분야가 아닌 일에는 평범하다. 오히려 범인들보다 더 뒤떨어지기도 한다. 한 분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그런데 반면에 간혹 만능 탤런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천재라기보다는 무한히 멀티플한 관심과 호기심, 에너지, 지구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들은 타고난 것 이상으로 다방면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인다. 한정적 의미로 무소불위라고 할만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불세출의 화가, 조각가였으므로 천재라는 이름과도 부합하지만 동시대의 미켈란젤로와 비교하면 덜 그렇거니와 엔지니어이며, 공연기획자이며, 작가이며, 달변가였으므로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에 관한 어린이책을 읽고서 그에 대해 든 느낌이 바로 만능 탤런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남달리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타고난 천성이 그렇고, 평생에 걸쳐 책을 폭식하다시피 읽었다고 하여 대문호감도 아니었고, 대단한 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책이라는 매체를 발판으로 조그만 재능을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호기심, 에너지와 의지, 부지런함으로 메워나감으로써 진정한 만능 탤런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과학자이며, 발명가이며, 저자이며, 사회사업가이며, 행동하는 애국자이자 정치인이며 그 모든 걸 가능케 한 유능한 사업가였다는 사실은 재삼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바닥에 독서가 놓여 있다는 것도!

이 책을 내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유독 강조한 부분이 독서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책의 기획의도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독서가 인격을 기르며, 그저 탁상공론이 아닌 실천과 행동, 비즈니스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벤 프랭클린은 책 읽는 이들이 지닌 정적이고 사변적인 느낌에서 벗어난 인물의 모범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책 읽는 일이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행동의 촉매임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 독서가 모든 것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 

솔직히 플랭클린이란 인물은 독서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형에게서 달아나 세상으로 뛰어든 당돌하고 저돌적인 인물이 책이라는 양식 대신에 처세만을 익혔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식습관마저 바꿔 버리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로 책은 참 대단한 일을 일궈 내는 존재다. 

이 책에는 초록색 글씨로 플랭클린이 한 중요한 말이나 글을 표시하여 따로 찾아 읽기 쉽게 해놓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101쪽, "모든 학문의 위대한 목표와 목적은 인류, 조국, 친구,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기라 더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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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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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리에르 웃다 / 문부일

내 알기로 저 표지의 얼굴은 살리에르가 아니라 모차르트다. 천재 옆에서 비참해지는 증후군의 이름이 되어 버린 살리에르가 아닌, 살리에르의 자괴감의 원인 제공자인 모차르트. 

모차르트와 관련된 글쓰기 작업을 두어 차례 하면서 모차르트가, 천재임으로 내놓아야 했던 많은 것들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기에, 살리에르에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넌지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살리에르의 얼굴을 만나기는 힘들다. 보이느니 다 모차르트다. 불쌍한 살리에르. 어쩌면 내 얼굴에 살리에르가 그려져 있으려나. 사실 설수혁의 고민은 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치 내 고등학교 때나 혹은 그 이후 뭘 써보려고 덤빌 때마다 느꼈던 자괴감과 너무 흡사했다. 그래서 그럴 이야기가 아닌데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열심히 해도 안 될 일이 살다 보면 많지만,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이 ‘문학’을 하는 일이었다. 열심히 해 보기도 전에 이미 글을 쓰는 것에 남다른 아이들이 있었고, 그건 책을 읽어서 해결될 일도, 밤새 시를 고쳐 써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 결과는 고작 그 언저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었다. 수혁이가 얼마나 속상했을 지 안 봐도 뻔할 정도. 그 애가 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의 시를 써내게까지 되었는지 알 만하다. 참회 내지 고백의 글이 뒤바뀌고 시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을 향한 빛이 보인다는 결말이 실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수혁의 남은 좌절들이 걱정스럽다. 살리에르가 진짜로 웃을 수 있을까?

6시 59분 / 문부일

중3 권완수는 하루 열네 시간을 돈까스 집 주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마 완수의 마음에는 운동 부족과 기름진 식사로 찌들며, 비대한 몸으로 생의 중반을 훌쩍 넘겨 버린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완수는 부모의 가게 일을 도우며, 하루 만 원 정도씩을 슬쩍, 챙겨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혼자 떠나는 바다 너머의 땅이 완수에게 어떤 의미일지, 사실은 그 아버지는 안다. 아버지는 결코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답습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대개의 아버지는. 아버지는 다 안다. 가슴 찡한 이야기다.

잠자리는 기름때에 다리가 엉겨 파닥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 못했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옆에 있는 신문지를 돌돌 말았다. / “밖으로 보내 줘야지. 날아가지 못하는 것도서러운데 맞아 죽으면 억울하잖아.” / 아빠는 칼로 기름때를 벗기로 그 둘레에 물을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때가 녹아 내렸다. 그러자 녀석은 창문을 빠져 나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빠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63쪽-

모래에 묻히는 개 / 강미

고야의 <물살을 거스르는 개>라는 그림이 있다 한다. 최민준은 학생회 부회장에 출마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민준네 집의 부유함은 선거운동에 득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러 ‘부자 행세’라는 말로 상대편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민준이 선거운동에 열심인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할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결국 자신을 위한 말임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민준은 그렇게 믿는다. 전략본부장 역할을 맡아 하는 창우나 찬조연설을 해준 정수 형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창우나 정수 형의 표정에서 진심이 사라지고, 발가벗겨진 느낌이 찾아오자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이 민준의 귀에 들린다. <모래에 묻히는 개>.

사회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듯한 강미 작가의 <모래에 묻히는 개>는 뭔가 섬뜩하고, 그러면서 슬픈 느낌이다. 이 작품, 정말이지 짧은 이야기 속에 사회와 속속들이 닮은꼴을 박아 놓았다.

짱이 미쳤다 / 백은영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짱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아이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 짱에게는 남보다 더한 카리스마나 혹은 독기나 혹은 잔인함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개중에는 옳은 생각이나 바른 리더십을 가진 아이도 있지 않을까?

영민이 바로 그런 짱으로 비친다. 대적할 자 없이 싸움을 잘하면서도 비행을 하지 않는 아이. ‘멋지다’. 반면에 원래 짱이었던 기철은 영민의 등장 이후 부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도, 기철은 자존심도 없는 걸까?

하지만 점점 더 기철의 멋진 모습이 드러나고,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영민이냐, 기철이냐? 도대체 진짜 짱은 누구야? 짱이 누군지를 알아야 제목에 있는 미친 짱이 누군지도 알 수 있지. 영민이 강한 주먹을 전국체전 권투 선수로 나가 제대로 쓰게 됐다는 결말을 보면 더욱 더 헷갈린다. 짱이 영민인지, 영민을 응원하고 선 기철인지.

이야기는 폭력적인 패거리로 치부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면을 보듬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고교 시대’ 정도로 읽힌다. <주몽의 알을 찾아라>에서도 느꼈던 작가 특유의 박진감이 살아 있는 이야기.

열여덟 살, 그 겨울 / 정은숙

매우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 가난하고 와해 직전인 집의 아들 기선, 부유하나 장애를 지닌 승효, 노는 아이로 오명을 날리는 지영은 모두 왜곡된 시선의 피해자다. 그들이 물고 물리고, 서로 부여안고 돌아간다. 정은숙 작가만의 이야기 구조, 그녀만의 문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잘 어울려 멋진 단편이 탄생했다. 장애를 지닌 승효가 K2에 가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자기 집을 몰래 드나드는 기선을 지켜보던 아이, 그 친구와 함께 K2에 오르겠다는 아이,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지영을 위해 아주 조금 자신을 드러낸 아이. 그 아이, 승효가 자꾸만 가슴에 남는다. ‘ㅇㅇ고등 학교 남자애들 중에 민지영 허벅지에 있는 검은 화살 문신을 못 봤으면 등신’이라는 말이 도는 아이를 위해 움직이는 건 그나마 없는 집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물론 우연히 서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기는 했지만)도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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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초콜릿의 비밀 미래의 고전 3
정은숙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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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린이책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빈약한 장르를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추리*탐정 소설 내지 동화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현실을 직시하는 책들이 꽤 많이 나와 갈증을 해소해주기는 했지만, 그런 가운데도 탐정 소설 쪽은 여전히 드물거나 질적으로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봉봉 초콜릿의 비밀>이 나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사실 처음에는 제목만 '비밀~' 운운 하고서 내용은 탐정 소설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 여겼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한 마디로 멋진 탐정소설이다. 얼개가 복잡하면서도 어린이 책다운 색깔을 잃지 않았고, 긴박감과 유머러스함이 잘 어울려 읽는데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설홍주. 아버지 설 경사는 셜록 홈즈를 연상케하는 이름을 딸에게 부여함으로써, 이 아이의 미래에 환한 불을 밝혀 주었다. 12세의 설홍주 탐정이 가장 좋아하는 건 사건 해결 외에, 봉봉 초콜릿이다. 그러고보면 아주 평범한 아이이기도 한데... 평온한 일상이 펼쳐지는 다행동에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이 벌어진다. 홍주는 자신을 추종하는 슈퍼마켓 둘째 아들 완식이와 함께 사건 속으로 고고씽! 한다. 게다가 연이어 일어난 황실 주얼리의 보석 도난 사건! 설마 아이들이 무슨 사건을 풀어? 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다가 어른들 사건에 아이들이 끼어 드는 이야기들이 대개 그렇듯 유치하고 황당할 것이라고 생각해도 오산이다. 이 꼬마 탐정들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사건 속으로 들어가고, 문제를 해결해 내고야 만다. 더구나 봉봉 초콜릿의 반전은 기가 막히다. 그냥 주인공 홍주가 좋아하는 과자로 머물 수 있었던 이 초콜릿은 순식간에 비밀의 열쇠가 되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정은숙 작가의 책을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에서 접하고, '멋지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푸른책들에서 '미래의 고전'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내놓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린드그렌의 <소년 탐정 칼레>나 캐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에 비견할 우리 어린이책의 탄생을 기다리던 내게는 단비같은 책이다. 물론, 아주 솔직히 말하면 저 책들에 대한 내 감탄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지만, 다음 책이 더 기대된다. 정은숙 작가, 화이팅이다. 반갑다, 설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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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기 5분 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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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마츠 기요시. 나는 그의 팬이다. <졸업> 한 권으로 단박에 그의 팬이 되었다.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두 권이구나. 두 권 모두에서, 누가 이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러면서 깊이 들여다볼까 싶은 느낌을 받았다. 어쭙잖은 통찰을 자랑하지 않고, 그야말로 깊고 섬세하게. 그래서 읽을 책이 밀려 있는데도 이 책 먼저 집어들었다. 도중에 접어둘 수 없게 하는 묘한 힘이 결국 한번에 끝까지 책을 읽게 이끌었다. 그리고 과연,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기요시의 작품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마치 내가 내 이야기를 쓴듯하다. 보편성의 획득이라고 말해버리면 좀 싱겁지만, 그렇다. 이 책 <친구가 되기 5분 전>도 마치 과거 어느 때의 내 이야기, 혹은 지금 이야기, 혹은 내 딸의 이야기같다. 그저 밝고 명랑한 이야기이거나 한없이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속에 깃든 상처,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또 모두 같지는 않은 상처를 조심조심 끄집어 내어 차분하게 햇볕바라기를 시켜주는 느낌이다. 치유의 느낌. 그러면서 생각하게 한다. 삶이란, 사랑이란, 가족이란, 우정이란.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현재이다. 아직 친구가 아닐 때, 그 어색하고 엇갈리고, 툭하면 상대에게 상처만 주기 쉬운 상태. 그러나 적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망은 있는 상태. 그래서 5분 전에 놓인 친구라는 존재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약이지만, 또 사람을 한없이 외롭게 만들 수도 있는 독이기도 하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는.  

이 책에 나오는, 서로 얽혔으나 제각기 별개인 열 개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에미짱은 모처럼 들고 간 우산을 친구들에게 점령당하고, 약간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걸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에미짱은 평소 관심도 없던 병약한 외톨이 유키의 우산 속으로 뛰어드는 돌발행동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평생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에미짱은 그 동안 친구라고 생각해왔던 '관계'에 대해 불신하고 미워하며, '모두' 속에는 친구가 없음을 깨닫는다. 친구가 없음을 아는 것은 유키도 마찬가지다. 생의 절반을 병원 침대에서 보내는 유키는 사람에게서 찾아지지 않는 무엇 대신에 '복슬강아지 구름'을 좇는다. 그래서 오히려 유키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친구가 아닌 '친구가 되기 5분 전'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들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처절히 복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세상을, 친구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또 떠나 보낸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을 거쳐 성인에 이르며 성장해가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주로 청소년기를 다루고 있고, 청소년기에 놓인 아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다. 중2인 딸아이에게도 당면한 고민거리일 수 있겠다 싶어 슬며시 아이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문학적인 향기가 강한, 그러면서 현실적 이야기를 통해 아이 마음에 뭔가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왕따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 안 될 것 같은 더 깊은 책.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근원에까지 생각을 이끌어 가는 책. 그러니 청소년에 국한해 읽을 책은 분명 아니다. 내게 울림이 더 큰 책. 시게마츠 기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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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왕 룽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8
창신강 지음, 김재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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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강 작가의 책을 <열혈 수탉 분투기>에서 먼저 접하고 '좋다'고 느꼈기 때문에 미리부터 호의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라고 했는데, 그건 <완득이>나 <엄마를 부탁해> 등의 재미와는 또 다르다. 이 작가의 책을 비롯해 중국 현대 아동청소년 소설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재미는 요즘 우리 문학과는 다르고 오히려 나 어릴 적의 문학에서 느꼈던 재미와 더 가깝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 그 속에서 사뭇 소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 더 서정적이고, 감상적이고, 속도가 느리다. 스피디한 읽을거리에 익숙한 요즘의 아이들은 어쩌면, 재미없다 여길 수도 있으려나...   

그러나, 성장에 따르는 내적인 혼돈과 고난, 세상과의 부대낌은 세상 어디서나,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 사춘기에 접어들거나 그 한복판에 있거나 슬며시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늘 회오리가 인다. 그 회오리는 아이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나지만 어쨌든 그 끝에는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 

<미운털과 양>에 나오는 레이팡은 부모님의 말씀에 뭔지 모를 울화를 터뜨리며,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양들을 팽개쳐 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아빠, 엄마, 그리고 어미 양까지 모두 같은 편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군. 일이 이렇게 될 줄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나중에 내 힘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면, 집에서 멀리 떠나 자유롭게 살아야지. 뭐든지 내 맘대로 하면서.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37쪽). 이런 생각이 어디 레이팡만의 것이겠는가. 우리 모두 한때는 저런 생각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더러는 집을 나가보기도 하며, 어찌어찌 성장해 왔다. 그리고 <푸른 눈밭 검둥새>의 친샹처럼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훼손된 명예에서 풍기는 악취가 내 몸에서 나는 땀내보다 훨씬 더 지독하다는 사실을 깨(50쪽)닫기도 하며, <탁구왕 룽산>에서 룽산처럼 목숨 걸고 일궈나가는 꿈을, 바로 그 꿈을 심어준 이로부터 망가뜨리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룽산에게 탁구를 가르쳐주고 자신의 트레이닝 파트너로 삼았던 주 선생은 떠나는 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나 열심히 하렴."(90쪽)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부조리하고, 억울하고, 황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소설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어쭙잖은 화해를 모색해보지 않는다. 이땅에서의 화해는 억지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화해 속에서 끝을 맺는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극한 대립보다는 눈물 어린 화해가 또한 현실이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억지로 꾸며낸 해피엔딩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더러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흐뭇했다. 내 옛날 이야기를 읽는 느낌. 그래서 친근했다. 

성장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만, 잘 찾아보면 이 책의 이야기들처럼 눈물어린 화해는 꼭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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