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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왕 룽산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18
창신강 지음, 김재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창신강 작가의 책을 <열혈 수탉 분투기>에서 먼저 접하고 '좋다'고 느꼈기 때문에 미리부터 호의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라고 했는데, 그건 <완득이>나 <엄마를 부탁해> 등의 재미와는 또 다르다. 이 작가의 책을 비롯해 중국 현대 아동청소년 소설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재미는 요즘 우리 문학과는 다르고 오히려 나 어릴 적의 문학에서 느꼈던 재미와 더 가깝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 그 속에서 사뭇 소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 더 서정적이고, 감상적이고, 속도가 느리다. 스피디한 읽을거리에 익숙한 요즘의 아이들은 어쩌면, 재미없다 여길 수도 있으려나...
그러나, 성장에 따르는 내적인 혼돈과 고난, 세상과의 부대낌은 세상 어디서나,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 사춘기에 접어들거나 그 한복판에 있거나 슬며시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늘 회오리가 인다. 그 회오리는 아이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나지만 어쨌든 그 끝에는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
<미운털과 양>에 나오는 레이팡은 부모님의 말씀에 뭔지 모를 울화를 터뜨리며,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양들을 팽개쳐 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아빠, 엄마, 그리고 어미 양까지 모두 같은 편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군. 일이 이렇게 될 줄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나중에 내 힘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면, 집에서 멀리 떠나 자유롭게 살아야지. 뭐든지 내 맘대로 하면서.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37쪽). 이런 생각이 어디 레이팡만의 것이겠는가. 우리 모두 한때는 저런 생각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더러는 집을 나가보기도 하며, 어찌어찌 성장해 왔다. 그리고 <푸른 눈밭 검둥새>의 친샹처럼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훼손된 명예에서 풍기는 악취가 내 몸에서 나는 땀내보다 훨씬 더 지독하다는 사실을 깨(50쪽)닫기도 하며, <탁구왕 룽산>에서 룽산처럼 목숨 걸고 일궈나가는 꿈을, 바로 그 꿈을 심어준 이로부터 망가뜨리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룽산에게 탁구를 가르쳐주고 자신의 트레이닝 파트너로 삼았던 주 선생은 떠나는 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나 열심히 하렴."(90쪽)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부조리하고, 억울하고, 황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소설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어쭙잖은 화해를 모색해보지 않는다. 이땅에서의 화해는 억지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화해 속에서 끝을 맺는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극한 대립보다는 눈물 어린 화해가 또한 현실이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억지로 꾸며낸 해피엔딩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더러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흐뭇했다. 내 옛날 이야기를 읽는 느낌. 그래서 친근했다.
성장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만, 잘 찾아보면 이 책의 이야기들처럼 눈물어린 화해는 꼭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