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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기 5분 전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시게마츠 기요시. 나는 그의 팬이다. <졸업> 한 권으로 단박에 그의 팬이 되었다.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두 권이구나. 두 권 모두에서, 누가 이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러면서 깊이 들여다볼까 싶은 느낌을 받았다. 어쭙잖은 통찰을 자랑하지 않고, 그야말로 깊고 섬세하게. 그래서 읽을 책이 밀려 있는데도 이 책 먼저 집어들었다. 도중에 접어둘 수 없게 하는 묘한 힘이 결국 한번에 끝까지 책을 읽게 이끌었다. 그리고 과연,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기요시의 작품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마치 내가 내 이야기를 쓴듯하다. 보편성의 획득이라고 말해버리면 좀 싱겁지만, 그렇다. 이 책 <친구가 되기 5분 전>도 마치 과거 어느 때의 내 이야기, 혹은 지금 이야기, 혹은 내 딸의 이야기같다. 그저 밝고 명랑한 이야기이거나 한없이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속에 깃든 상처,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또 모두 같지는 않은 상처를 조심조심 끄집어 내어 차분하게 햇볕바라기를 시켜주는 느낌이다. 치유의 느낌. 그러면서 생각하게 한다. 삶이란, 사랑이란, 가족이란, 우정이란.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현재이다. 아직 친구가 아닐 때, 그 어색하고 엇갈리고, 툭하면 상대에게 상처만 주기 쉬운 상태. 그러나 적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망은 있는 상태. 그래서 5분 전에 놓인 친구라는 존재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약이지만, 또 사람을 한없이 외롭게 만들 수도 있는 독이기도 하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는.
이 책에 나오는, 서로 얽혔으나 제각기 별개인 열 개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에미짱은 모처럼 들고 간 우산을 친구들에게 점령당하고, 약간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걸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에미짱은 평소 관심도 없던 병약한 외톨이 유키의 우산 속으로 뛰어드는 돌발행동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평생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에미짱은 그 동안 친구라고 생각해왔던 '관계'에 대해 불신하고 미워하며, '모두' 속에는 친구가 없음을 깨닫는다. 친구가 없음을 아는 것은 유키도 마찬가지다. 생의 절반을 병원 침대에서 보내는 유키는 사람에게서 찾아지지 않는 무엇 대신에 '복슬강아지 구름'을 좇는다. 그래서 오히려 유키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친구가 아닌 '친구가 되기 5분 전'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들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처절히 복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세상을, 친구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또 떠나 보낸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을 거쳐 성인에 이르며 성장해가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주로 청소년기를 다루고 있고, 청소년기에 놓인 아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다. 중2인 딸아이에게도 당면한 고민거리일 수 있겠다 싶어 슬며시 아이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문학적인 향기가 강한, 그러면서 현실적 이야기를 통해 아이 마음에 뭔가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왕따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 안 될 것 같은 더 깊은 책.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근원에까지 생각을 이끌어 가는 책. 그러니 청소년에 국한해 읽을 책은 분명 아니다. 내게 울림이 더 큰 책. 시게마츠 기요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