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살리에르 웃다 / 문부일

내 알기로 저 표지의 얼굴은 살리에르가 아니라 모차르트다. 천재 옆에서 비참해지는 증후군의 이름이 되어 버린 살리에르가 아닌, 살리에르의 자괴감의 원인 제공자인 모차르트. 

모차르트와 관련된 글쓰기 작업을 두어 차례 하면서 모차르트가, 천재임으로 내놓아야 했던 많은 것들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기에, 살리에르에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넌지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살리에르의 얼굴을 만나기는 힘들다. 보이느니 다 모차르트다. 불쌍한 살리에르. 어쩌면 내 얼굴에 살리에르가 그려져 있으려나. 사실 설수혁의 고민은 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치 내 고등학교 때나 혹은 그 이후 뭘 써보려고 덤빌 때마다 느꼈던 자괴감과 너무 흡사했다. 그래서 그럴 이야기가 아닌데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열심히 해도 안 될 일이 살다 보면 많지만,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이 ‘문학’을 하는 일이었다. 열심히 해 보기도 전에 이미 글을 쓰는 것에 남다른 아이들이 있었고, 그건 책을 읽어서 해결될 일도, 밤새 시를 고쳐 써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 결과는 고작 그 언저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었다. 수혁이가 얼마나 속상했을 지 안 봐도 뻔할 정도. 그 애가 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의 시를 써내게까지 되었는지 알 만하다. 참회 내지 고백의 글이 뒤바뀌고 시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을 향한 빛이 보인다는 결말이 실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수혁의 남은 좌절들이 걱정스럽다. 살리에르가 진짜로 웃을 수 있을까?

6시 59분 / 문부일

중3 권완수는 하루 열네 시간을 돈까스 집 주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마 완수의 마음에는 운동 부족과 기름진 식사로 찌들며, 비대한 몸으로 생의 중반을 훌쩍 넘겨 버린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완수는 부모의 가게 일을 도우며, 하루 만 원 정도씩을 슬쩍, 챙겨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혼자 떠나는 바다 너머의 땅이 완수에게 어떤 의미일지, 사실은 그 아버지는 안다. 아버지는 결코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답습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대개의 아버지는. 아버지는 다 안다. 가슴 찡한 이야기다.

잠자리는 기름때에 다리가 엉겨 파닥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 못했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옆에 있는 신문지를 돌돌 말았다. / “밖으로 보내 줘야지. 날아가지 못하는 것도서러운데 맞아 죽으면 억울하잖아.” / 아빠는 칼로 기름때를 벗기로 그 둘레에 물을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때가 녹아 내렸다. 그러자 녀석은 창문을 빠져 나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빠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63쪽-

모래에 묻히는 개 / 강미

고야의 <물살을 거스르는 개>라는 그림이 있다 한다. 최민준은 학생회 부회장에 출마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민준네 집의 부유함은 선거운동에 득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러 ‘부자 행세’라는 말로 상대편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민준이 선거운동에 열심인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할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결국 자신을 위한 말임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민준은 그렇게 믿는다. 전략본부장 역할을 맡아 하는 창우나 찬조연설을 해준 정수 형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창우나 정수 형의 표정에서 진심이 사라지고, 발가벗겨진 느낌이 찾아오자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이 민준의 귀에 들린다. <모래에 묻히는 개>.

사회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듯한 강미 작가의 <모래에 묻히는 개>는 뭔가 섬뜩하고, 그러면서 슬픈 느낌이다. 이 작품, 정말이지 짧은 이야기 속에 사회와 속속들이 닮은꼴을 박아 놓았다.

짱이 미쳤다 / 백은영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짱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아이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 짱에게는 남보다 더한 카리스마나 혹은 독기나 혹은 잔인함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개중에는 옳은 생각이나 바른 리더십을 가진 아이도 있지 않을까?

영민이 바로 그런 짱으로 비친다. 대적할 자 없이 싸움을 잘하면서도 비행을 하지 않는 아이. ‘멋지다’. 반면에 원래 짱이었던 기철은 영민의 등장 이후 부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도, 기철은 자존심도 없는 걸까?

하지만 점점 더 기철의 멋진 모습이 드러나고,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영민이냐, 기철이냐? 도대체 진짜 짱은 누구야? 짱이 누군지를 알아야 제목에 있는 미친 짱이 누군지도 알 수 있지. 영민이 강한 주먹을 전국체전 권투 선수로 나가 제대로 쓰게 됐다는 결말을 보면 더욱 더 헷갈린다. 짱이 영민인지, 영민을 응원하고 선 기철인지.

이야기는 폭력적인 패거리로 치부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면을 보듬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고교 시대’ 정도로 읽힌다. <주몽의 알을 찾아라>에서도 느꼈던 작가 특유의 박진감이 살아 있는 이야기.

열여덟 살, 그 겨울 / 정은숙

매우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 가난하고 와해 직전인 집의 아들 기선, 부유하나 장애를 지닌 승효, 노는 아이로 오명을 날리는 지영은 모두 왜곡된 시선의 피해자다. 그들이 물고 물리고, 서로 부여안고 돌아간다. 정은숙 작가만의 이야기 구조, 그녀만의 문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잘 어울려 멋진 단편이 탄생했다. 장애를 지닌 승효가 K2에 가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자기 집을 몰래 드나드는 기선을 지켜보던 아이, 그 친구와 함께 K2에 오르겠다는 아이,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지영을 위해 아주 조금 자신을 드러낸 아이. 그 아이, 승효가 자꾸만 가슴에 남는다. ‘ㅇㅇ고등 학교 남자애들 중에 민지영 허벅지에 있는 검은 화살 문신을 못 봤으면 등신’이라는 말이 도는 아이를 위해 움직이는 건 그나마 없는 집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물론 우연히 서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기는 했지만)도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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