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난 할머니보다는 할매가 편하다. 언니와 난 항상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할매라고 불러서 그런지 할매가 더 익숙하다. 그래서 할매가 돌아가셔도 언니와 난 할머니라고 안 하고 어릴적에 불렀던 대로 할매라고 한다. 가끔씩 언니랑 통화를 하면 우린 옛 추억을 더듬으면 할매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할매는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분이시다. 우리에게 할매이면서도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는 할매... 자식이 많아도 자식복이 없는 할매였다. 고모들은 자식들을 낳고 할매한테 다 맡겼다. 그래서 사촌 언니와 오빠들은 거의 할매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키워 놓으니 다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조차 없는 사촌언니와 오빠들... 그리고 고모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구하나 할매 산소를 찾는 이가 없다.
어린 언니는 이미 다른 집으로 가 버렸고 나와 할매만 단 둘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잠에서 깨어 났을 때는 내 옆에 귀엽게 생긴 세살 정도 먹은 아기가 새근새근 잠 들어 있었다. 할매는 나보고 남동생이라고 했다. 이복 남동생... 언니가 없어서 허전했었는데 동생이 생겨서 좋았다. 나를 잘 따르고 함께 놀고 함께 먹고 자고... 업어 주고... 남동생이 4살 되었을 때 추운 겨울에 강물에 동생을 빼앗겼다. 언니가 집에 다니러 왔는데 용돈을 주었다. 그걸 가지고 문방구에 가서 장난감 산다고 간 동생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따라간다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혼자 갈 수 있다고 우긴 동생 말을 듣지 않는건데... 잊을 수가 없다...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동생한테 너무 미안하다... 할매랑 언니 주위에 사는 동네 사람들과 동생을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4일이 되는 날 할매랑 함께 다리위를 지나가는데 할매가 갑자기 다리밑을 보더니 나보고 나무 막대기 하나 구해서 오라고 하는 것이다. 어렵게 구해서 할매한테 주었더니 깊어서 잘 얼지 않는 강물을 휘젖었는데...동생이 떠 올랐다. 할매는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서 동생을... 난 보았다. 동생이 죽은 모습을... 그 뒤로 난 물을 무서워했고... 그 뒤로 할매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남의 집 밭을 매 주고 새참으로 받은 빵과 우유를 주면 드시지도 않고 가지고 와서 나를 주었다. 배 고플실텐데도 나를 먼저 생각하는 할매였다. 항상 남이 맛 난 것을 주면 나를 생각하는 할매였다. 내가 할매한테 굶지 말고 드시라고 해도 알았다고만 했지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 깻잎을 따 주고 부추밭을 매 주고...부추를 다듬어 주고... 이렇게 돈을 모아서 나를 학교에 보낸 할매다. 학교에서 우유 신청을 받는데 난 한 번도 할매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어찌 아시고 우유값을 주시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먹으라고 하면서... 초코우유가 더 비쌌는데...
아침에 학교 가는 날 할매는 오늘 비 온다 그러니 우산 챙겨 가지고 가라고 했지만 난 파란 하늘을 보고는 비는 무슨 비 아닌데... 그러곤 할매 말 듣지 않고 학교 갔었다. 수업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니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 비를 맞고 교문까지 왔을 때 할매는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매는 내가 그랬지 비 온다고...
반장이 되어서 소풍을 가는 날 할매는 선생님 드리라고 김밥을 해 주셨다. 그런데 난 창피스럽고 해서 선생님한테 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할매가 새벽에 일어나서 정성스럽게 싼 김밥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드렸는데 선생님은 소풍가서 여러 선생님과 함께 할매가 싸 주신 김밥을 맛 나게 드시는 것이다. (지금도 난 할매한테 죄송하고 부끄럽다..) 선생님은 아신다. 우리집 형편을... 한 번은 할매를 불러서 나 신으라고 운동화를 주셨다. 내가 받지 않으니 할매한테 전한 것이다.
내 나이 10살 때 할매한테 제사음식을 배웠다. 우리집에는 제사가 많았다. 그것도 추운 겨울철에.. 제사음식 만들 사람이 없으니 할매와 내가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할매는 부엌에서 나물,탕 종류를 만드시고 난 전과 생선들을 구웠다. 제사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저녁쯤에 고모들과 고모부들이 집에 오시곤 했다. 제사를 지내고 먹고 이야기 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떠날 때는 만들어 놓은 전과 생선들을 가지고 가곤 했다. 그 전에 할매는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전과 명태전을 미리 숨겨 놓은 할매였다. 그리고 맛 나는 과일들도.. 매년 김장철에도 할매와 내가 김장을 했다. 김장을 해 놓으면 할매한테 적은 용돈을 주고 김장김치를 펴 가는 고모들...
우리집에는 불심이 깊다. 할매는 절에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었다. 또 할매따라 방생을 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으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으로 굿을 하곤 했었다. 언니랑 함께 살 때 언니와 내가 심하게 아팠는데 크게 굿을 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어린 나와 언니는 그 때 정말 무서웠다. 갓바위까지 데리고 가서 빌었던 할매...
울 할매 환갑 때 고모들이 돈을 모아서 할매를 모시고 제주도에 갔었다. 혼자 남은 내가 걱정을 하신 할매는 안 가려고 했지만 내가 다녀오라고 고집을 피우니 다녀오신거다. 제주도에서 내가 좋아하는 귤과 바나나를 한 박스씩 사 들고 오신 할매였다.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 날 할매한테 중풍이 왔다. 그 뒤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똥오줌을 내가 받아내고 씻기고... 1년을 고생하신 할매였다. 1년동안 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고모 때문에.. 집안에만 갖혀 지내니 답답해서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고모가 와 있었다. 고모는 나를 보자마자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할매가 대변을 봤는데 그대로 놔 두고 나갔다고... 내가 나갈 때 깨끗하게 씻기고 옷도 새걸로 입혀 놓고 밥도 차려서 갖다 놓고 그래 나갔는데.. 고모는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 것이다. 할매가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매는 고모들한테 그러셨다. 미야만큼은 공부 시키라고... 공부시키면 너희들 손해는 절대 안 본다고... 하지만 알았다고 한 고모들은 할매가 돌아가시자 아무도 신경을 쓰는 이가 없었다..
한국 나갈 때마다 옆지기는 할매 산소부터 먼저 챙긴다. 이번에는 옆지기는 못 가지만 할매는 알 것이다.. 못 오는 이유를...
1년을 고생하신 할매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가시면서 눈도 제대로 못 감으신 할매... 나 때문에... 우리 할매 고생 정말 많이 하시고 가셨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 바로 우리 할매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할매 손녀로 다시 나고싶다..
할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