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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제목만 보고는 불가의 수행자가 쓴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자가 정수일이란다! 정수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떠올랐다.. 깐수!! 한 10여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위장 간첩 사건의 주인공.. 주변 사람들에게 아랍계 외국인으로 행세하면서 북한을 위한 공작활동 전개.. 복역후 출소해서 무슨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책을 써 내었다는 기사를 읽을 것도 같고..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또 그 가족은? 간첩 사건은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고 싶었고 그가 진짜 간첩인지도 궁금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때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흔들릴 때마다 간첩 사건을 조작해 공안 정국을 만들고 그걸 통해 반대파를 옭아매고 자신의 세력 기반을 다시 확대하곤 했기 때문에 깐수란 인물도 혹시 그런 정권의 희생양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깐수는, 아니 비로소 자신의 진짜 이름, 정수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시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이 왜 깐수란 인물로 살아왔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오직 한민족에 대한 충심 밖에 없었노라고... 그걸 위해 많은 더 나은(?), 아니 더 출세할 수 있는 기회들을 버리고 북한에, 또 남한에서 머물렀고 세계사 속 은둔국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던 한민족의 과거사 복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는 것을 강변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정수일이란 인물에 대해 약간의 경외심마저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의 규칙적으로 쓰여진 아내를 향한 편지 속에 묻어나는 약간 고어투의 말투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은 오직 한민족에 대한 충심밖에 없었다는 강변에서 좀 불편했었다.. 지나치게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조금씩 그의 인생 역정을 떠올려보면서, 무엇보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심지어는 감옥 안에서도 계속되는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
수많은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면서(할 줄 아는 언어가 무려 10개도 넘는다고 한다..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불어, 말레이어, 또 뭐더라?? 이집트에서 유학했으니까 거기 말두 알거고.. 암튼 10개도 넘는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할 줄 안단다!!) 수많은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비교하고 연구하고...
한민족의 세계와의 교류사를 제대로 밝혀 세계 무대의 변방 내지는 은둔국 한국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세계 역사 속에 활동적인 한민족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그의 열정만큼은 존경스러웠다..
그가 간첩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분단된 조국의 지식인으로서 양심에 따라 살아온건지 그건 난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끝없이 발전을 위해, 게다가 자신만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살아온 그의 삶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단 생각이다..
"느려도 소걸음"이란 옛말을 떠올려본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겠다"는 정수일 교수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