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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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삶 중에서 가장 아픈 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꽤 큰 충격이었고, 상처로 남았습니다.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때문에 온전히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업무와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었죠. 그마저도 참 힘들게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아파하고 상처를 안고 있어봤자, 어차피 지난 일이 아닌가. 모든 것을 다만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희망으로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보트 위에 세 남자》를 꺼내들었습니다. 책에 대한 평판은 익히 알고 있었거든요. 188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 없이 독자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코미디 소설의 걸작.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주인공을 포함해 세 명의 지구상 최고의 게으른 남자들, 그리고 원기왕성하고 세상살이에 조금은 염세적인 폭스테리어 한 마리(이름은 몽모렌시)가 떠나는 템스 강변 ‘보트’여행. 장면 하나 하나가 살아 숨 쉬는 코미디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코믹스러운 묘사와 기가 막힌 문장력은 그야말로 ‘빵빵’터지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때문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제가 가지고 있던 상처와 아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술처럼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을 필요도 없고, 또 돈도 많이 들지도 않은 참 적절한 ‘슬픔 해소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샌드포드와 머튼》의 작가인 토마스 데이가 워그레이브에서 살았고, (워그레이브를 더욱더 알리는 계기가 되며) 그곳에서 살해됐다. 교회에는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매년 1파운드씩 부활절이 돌아올 때마다 소년 두 명과 소녀 두 명에게 나누어주게 했던 사라 힐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자격은 ‘부모에게 불효했던 적이 한번도 없고, 거짓을 말하거나 맹세한 적도 없고, 도둑질을 하거나 창문을 깬 적도 없는’아이들이어야 했다. 일 년에 5실링을 받으려고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상상을 해보라! 바보 같은 짓이지.

그 마을에는 오래전 한 때 이런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아니 여하튼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알려진 경우는 한 번도 없다는 소년이 나타나, 명예의 왕관을 거머쥐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그 후 삼 주 동안 유리 진열장에 넣어져 마을 회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우리 학교에 어떤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스탠포드 앤 머톤이라고 불렀다. 그의 진짜 이름은 스티빙즈였다. 그는 내가 만난 친구들 중 가장 독특한 녀석이었다. 공부를 진짜 좋아했으니까. 그는 밤새며 공부를 했고 그리스어를 읽었다. 프랑스어의 불규칙 동사도 늘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부모의 자랑, 학교의 명예가 되어야 한다는 괴상하고 특이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친구였다. 그는 상에 목말라했고, 얼른 자라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심약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정말 이상한 친구였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처럼,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책에는 이밖에도 정말 재미있는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템스강의 아름다움, 혹은 지저분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중간 중간 영국의 역사도 친절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또 하나의 미덕은 단지 코미디에 국한되지 않는 ‘의미심장한’문장들도 거뜬히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 혹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한 표현까지, 저자는 솔직히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사람입니다.

 

참 즐거운 세상이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말 힘들고 죽고만 싶을 때, 가만히 하늘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바보처럼 책장을 넘기며 키득거리며, 마치 아무 일 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세 명의 남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물론 까칠한 강아지 ‘몽모렌시’역시~!

 

“몽모렌시가 삶에서 추구하는 야망은 훼방을 놓고 욕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옴죽거리다가 완벽하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대가리에 아무것이나 막 집어던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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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울산공장 점거 투쟁 기록
박점규 지음 / 레디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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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규직이다!”

“출입증 반납하고 사원증 쟁취하자!”

가슴 깊은 곳에 쌓아 두었던 울분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의 판결이 밑불이 되었고, 2010년 11월 15일 울산 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울산의 파업은 전주와 아산으로 이어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의 횃불은 12월 9일까지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25일은 하루 하루가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 종일 물만 마셔도 가슴이 벅찼고, 매서운 삭풍을 막아 줄 비닐이불 한 장에 행복했다. 젊은 노동자들의 눈빛은 식어 버린 가슴을 열망으로 들끓게 만들었고, 밤을 새운 토론은 녹슨 머리를 맑게 했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아름다운 저항의 25일 그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마지막 30대를 이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2008년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이 타오르던 날의 환희, 2010년 11월 1일 1895일 만에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합의서에 서명하던 날의 감동만큼이나 행복한 25일이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의 25일. 현대자동차 울산 시트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과 함께 ‘25일’의 시간을 보낸 저자는 이 투쟁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바로 잡자는 ‘상식의 회복’을 위한 투쟁, 왼쪽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놓여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차별을 없애자는 ‘차별 철폐’투쟁, 자본주의 체제 수호의 보루,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라는 ‘준법 촉구’투쟁, 노동자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을 짓밟고 우뚝 서서 돈을 세는 자본의 논리를 뒤집기 위한 ‘전복’투쟁이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마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말하지 못하고 헤어진 청년, 원하는 학원을 갈 수 없기에 정규직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들. 바뀔 수 없는 신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비정규직’이란 네 글자에 구속되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900만이 넘는 노동자들. 울산 공장에서의 ‘25일’은 이들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피맺힌 절규, 바로 그것이었다.

 

◆ 처절토록 아름다웠던 연대와 희망의 시간들

 

무려 1895일 만의 기륭전자 교섭 타결. 가장 오랫동안 단식투쟁을 한 노동자로 기록된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 두 달간의 피를 말리는 교섭 현장을 지켰던 저자는 쉴 사이도 없이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그가 노동자들과 보낸 25일은 아름다웠다. 2004년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이후, 불같이 일어났던 파업 투쟁들이 모두 무참히 깨지고, 6년의 세월동안 침묵과 좌절,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로소 일어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월급의 차이, 처우의 차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울산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직영이세요? 하청이세요?”라는 질문에서 나타나듯, 비정규직은 한 인간의 신분을 규정짓는 또 하나의 낙인이 되어버렸다. 그래, 이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보자. 이 지긋지긋한 비정규직의 굴레를 날려버리자. 젊은 노동자들의 뜨거운 가슴과 연대의 몸짓은 저자에게 벅찬 감동과 용기를 주었고, 이 역사적인 시간들을 꼼꼼하게 기록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주었다. 책은 때문에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이며, 정규직·비정규직·사내하청·실습생 등 모든 이 땅의 노동자를 위한 연대의 찬가다.

 

“지금 희망버스 행사를 맡고 있어요. 이제 파업이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저는 그게 바로 연대와 희망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기륭전자의 10명밖에 안 되는 노동자들이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힘, 6년만의 그들이 정규직을 따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많은 이들의 연대와 응원이었습니다.

 

울산 현대공장의 25일 역시 그랬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도 눈물겨웠습니다. 물론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전 울산에서 보여준 그 연대의 힘이 지금 희망버스에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 광범위하고 질적으로도 차원이 다른 놀라운 연대가 이뤄지고 있잖아요. 이 모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 탐욕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25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보다, 노동자의 몇 배나 되는 용역들의 폭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립감과 연대의 끊어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들은 지쳐갔고, 흔들렸으면, 외로웠다.

 

회사는 악랄했다. 갖은 유언비어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끊으려 시도했고, 단전, 단수조치에 이어 급기야 식량마저 반입을 막았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조치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보수 언론을 방패로 이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부풀려 유포해, 같은 노동자들의 지지와 후원마저 막으려 했다. 울산에서의 25일은 물리적 폭력과 함께 정규직과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민심 쟁탈전’도 치열하게 이어졌다.

 

저자 역시 ‘외부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공장 내에서 쫓아내려는 시도까지 이뤄졌다.‘외부 세력론’은 회사의 단골 메뉴 중 하나였다. 현대자동차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세력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희망버스를 바라보는 보수세력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덕분에 저자는 7개월 동안 수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전엔 사무관리직과 생산직의 구분만이 있었죠. 하지만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생산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이나마 개선되자, 이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으로 다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카스트제도와 흡사하게 말이죠. 실제로 현대자동차 인도공장은 정규직, 사내하청, 임시직, 수습생 등으로 노동자들을 철저히 구분시켜요. 이젠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크게 봐야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경제위기 당시 국민의 혈세로 지원을 받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어요. 그런데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만 늘리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죠. 매출액이 두 배, 100% 이상의 순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는커녕 일자리 창출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윤이 오로지 재벌들에게만 몰리는 지금의 비정상적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근본적으로 풀 수 없어요. 재벌들의 탐욕을 스스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철저한 규제를 통해서만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울산 사태 이후 ‘비정규직 희망버스’를 만들어 전국 10개 도시 13개 공장을 둘러봤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한 공장,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 위해서였다. 기가 막혔다. 전국에 있는 현대 모비스 공장은 총 12개, 그 중 무려 8개 공장이 비정규직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정규직은 관리자뿐이었다. 이런 야만적인 공장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정부도 기업도 오로지 이윤에만 몰두하고 있다.

 

“전북도청을 찾아갔어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민주당 사람이 도지사를 하고 있고,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 나타나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국회의원이 지역구로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현대 중공업 군산조선소에 1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온갖 세금 혜택을 다 주고 ‘세계적인 조선소’로 만들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 곳에서 채용한 정규직은 고작 50명이 다예요. 대신 3천 명의 사내하청을 고용했죠. 전북은 일자리 1만1000개를 늘린다고 했는데, 50명을 뽑는 업체에 1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야만적인 공장은 규제해야지, 왜 투자를 합니까.”

 

◆ 일자리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

 

저자의 옛 친구는 가정이 어려워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은행원이 되었다. 물론 정규직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공장에 취직했다. 역시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을 나와도 태반이 백수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한다. 일자리가 줄어든 게 아니다. 그 일자리들이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뿐이다. 경제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데, 왜 일자리는 가면 갈수록 없어지는가.

 

정규직이 ‘꿈’이 되어버린 학생들, 다 필요 없고 남편이 ‘정규직’이기만 하면 된다는 여성들. 정규직인 가치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희망이 쉽지 않은 시대, 이들의 소박한 요구는 이미 소박하지 않다.

 

결국 연대가 희망이라 저자는 말한다. 구태의연한 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답이다. 함께 싸워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희망버스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목격하고 있는 지금. 어쩜 아직 늦지 않았는지 모른다.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만든 역사가 희망버스를 만들었고, 또 다른 ‘희망’들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과 ‘정당한’노동의 대가를 원하는 이들의 대결에서 결국 승자는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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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 이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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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의 운영도 당연히 수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천도재나 제사가 기본이 되는 ‘제사종’, 관람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관람료종’, 입시기도 위주의 ‘입시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거듭나야 한다.”

 

명진 스님은 언제나 거침이 없다. 해야 할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시는 분이다. 때문에 적도 많고 지지층도 두껍다. 정말 운이 좋게도 스님을 여러 차례 뵐 기회가 있었고, 봉은사의 주지로 계실 때 일요법회를 참석해 스님의 법문도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으면, 정말 종교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이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담은 책은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처박고 세상의 모든 불의를 외면하려 한 나의 어깨를 후려치는 죽비라고 할까.

 

젊은 수행 시절, 당대의 스승이신 성철 스님께 버릇없이 덤비기도 했던 명진 스님. 자신이 깨우쳤다고 느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감에 넘쳤던 스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님은 진정 깨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욱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누구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그 놈은 과연 누구인지.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어떤 부귀영화도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 스님은 지금도 끝없이 묻고 또 묻고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게 모름의 세계 속으로 끝없이 몰입을 해 가다 보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의 물거품이 전부 가라앉아 잔잔해진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홀로 드러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없는 그놈이 밥을 먹고 알 수 없는 그놈이 잠이 들고 알 수 없는 그놈이 꿈을 꾼다. 허공같이 텅 비어져 알 수 없어진 그 자리, 오직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만 남아서 알 수 없음과 내가 일체가 된 자리가 바로 진리의 바다에 직통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모든 앎이 끊어지고 오직 알 수 없는 그것만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부처님은 별을 보았고 어느 조사 스님은 닭 우는 소리를 들었고 또 어느 조사 스님은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스님의 어린 시절은 언뜻 너무나 불행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젊을 적엔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떠나보냈다. 하지만 스님은 바로 그 죽음이라는 스승을 통해 뜨겁게 삶을 성찰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곧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온 스님.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 천일기도를 통해 수행 중심의 참 불교를 실천으로 보여주신 스님. 천일 중 단 하루,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절 밖을 나섰던 스님. 이명박 정권의 어처구니없는 실정에 매서운 죽비의 목소리로 호통 쳤던 단 한 명의 종교인. 천일기도 후 가장 먼저 용산참사 유가족을 찾아 위로해주셨던 스님.

 

나에게 명진 스님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다. 하지만 막상 스님 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린다면 그 변함없는 미소로 반겨주실 것을 안다. 사바세계에서 오직 나 하나만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지금, 끊임없는 용맹정진으로 많은 이들에게 견성의 길을 보여주신 이 시대의 선지식.

 

이제 봉은사를 떠나 다시 자유인이 되신 스님이 더 맑고 더 시원한 법문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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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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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책장에 놓여 있던 책. 왜 그리 손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좀 우습다. 사실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맥을 못 추는 나 아니었나.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드디어 책장을 넘겼는데…. 예지력이 있었던 것일까. 참을성이 많기로 소문이 날 뻔한 나에게도 이 책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겠다.

 

물론 작품의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중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단테를 주인공으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스토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아울러 단테가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작가라기보다는 상당히 자신에 대해 자신 있는, 좀 심하게 말하면 거만할 정도의 인물로 그려지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작품을 ‘환상 추리소설’로 규정했듯, 작품은 치밀한 알리바이와 트릭이 빛을 발하는 정통 추리소설과는 맥을 달리한다.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도 심히 어설프고, 또한 극적 반전과는 거리가 먼 조금은 싱거운 결말도 아쉽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감탄했던 것은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생생하게 시대를 묘사한 점이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그의 문장에는 역사와 문화와 예술 모두가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이는 그만큼 저자가 작품을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증거이다. 저자의 부지런함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성싶다.

 

중세 유럽은 종교와 이성의 대립, 교황과 황제의 대립으로 점철되던 시기다.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종교에 대한 도전. 그 도전은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후 세계의 모습을 바꿔놓게 된다. 맹목적인 종교적 아집이 불러온 수많은 역사적 비극을 돌아볼 때, 작품 속에 나타난 종교와 왕권의 대립 과정은 흥미롭고 또한 씁쓸하다.

 

여전히 종교라는 이름으로 맹목과 광기가 존재하는 지금. 과연 우리는 중세에서 얼마나 진보했는가. 생각해본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있다면, 또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후한 점수를 주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작품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의 작품이었다. 제목은 “어머니, 우리를 구해주소서”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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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거울 -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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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근에 느낀 소회 하나. 세상엔 역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 아무리 썩어빠진 세상이라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최소한의 사람다운 도리를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은 그런 분들 덕분에 한없이 큰 위안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눈물 나게 고마운 사실.

 

사람은 일단 부지런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최소한 눈치라도 빨라야 한다는 사실.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개구리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라면 정말 넓은 세상,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 그렇지 않고선 이 복잡한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쉽게 알 수 없다는 사실. 왜냐? 나쁜 인간들도 역시 머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나쁜 점을 최대한 좋은 것으로 숨기려 하기 때문. 게다가 그런 세력이 권력이나 돈이 많다면 엄청시리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사실. 거기에 노예같이 빌붙어 먹는 언론과 방송사들까지 합세하면 좋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빨갱이나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덧칠 당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주 나쁜 놈들도 좋은 놈으로 둔갑될 수 있다는 엿같은 사실.

 

아무리 나쁜 놈들이 권력을 오래 쥐고 있고, 돈으로 사람들을 살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진실은 아침처럼 찾아온다는 사실. 역사의 분명한 흐름을 더디게 할 수는 있어도 끝내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

 

손석춘 이사장님.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분. 글을 정말 잘 쓰는 기자 중 한 분이라는 생각. 지금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사장을 맡고 계시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진보대통합에 힘을 모으고 계신 분.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었음. 특히 대학 시절 선생님의 책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음. 인생의 커다란 등대의 역할을 해주신 분. 지금도 취재 관계로 가끔 뵈면 그냥 얼굴을 뵙는 것 만으로 힘이 되어주시는 분.

 

이분이 말씀하시는 ‘박근혜론’. 앞으로 진보진영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모습으로만 보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박근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은 과연 우리가 박근혜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내년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다시는 이명박 정권과 같은 괴물 정권을 탄생시키지 않을지 말하고 있음.

 

사실 정치인 박근혜는 지금까지 뚜렷이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장점인 정치인이었음. 정치인 같지 않아 지지도가 높은 정치인이라는 모순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 게다가 그는 단 한 번도 인생에 있어 서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않았음. 가난한 시절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고 떠들었던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더욱 서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함.

 

그런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라고 별명을 얻은 것은 온전히 보수 거대 언론의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음. 그는 김대중 대 이회창 때 이회창을 지지했지만, 김대중이 당선되었고, 역시 노무현 대 이회창 때에도 이회창을 지지했었음. 결과는 노무현의 당선. 지난 재선 때는 경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외치는 이명박에게 패배했음. 결국 이긴 선거가 없었음.

 

자신의 부친의 고향에서 주워 먹듯 국회의원이 된 뒤, 정말 편하게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해왔음. 게다가 4대강 사업, 언론 악법 날치기 등에 대해서 박근혜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시 소신을 한 번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음.

 

또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저지른 민주주의 탄압에 대해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음. 대법원이 판결하고, 국정원이 사실을 밝혀 고의로 조작한 간첩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음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음.

 

복지론을 먼저 주장했다고 떠들지만, 그가 말하는 복지 역시 한국형이라는 단서를 달아 마치 박정희가 한국형 민주주의를 거들먹거리며 국민들을 탄압한 전례를 따르려 함. 한마디로 생각이 없고, 제대로 된 참모도 보이지 않고, 다만 입다물고 조용히 있는 모습으로 승부하려 함.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부친이 만든 모든 기형적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외면하고, 부친이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성장의 과실만 주장하며, 다시 경제를 살리겠다고 주장함.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한 대기업 위주의 신자유주의와 다를 바 없음. 기가 막힘.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을 주장함.

 

통일 문제,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수구적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 무엇하나 이명박 대통령보다 나아보이는 게 없음. 그래서 위험하고 또 위험한 것임.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는 또 다시 5년 동안 뒷걸음질 할 것이 보이기 때문.

 

단 그가 종교나 복지 분야에 있어 조용히 헌신하고 봉사하며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에 대한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해왔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받은 공주인양 자신의 아버지를 국가가 동일시하며 자신만이 아버지를 이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 대단한 착각이자 이 나라의 불행임.

 

그녀보다 뛰어난 정치인들은 미안하지만 널렸음. 야권을 보면 그와는 차원이 다르게 투쟁하고 목숨을 걸며 정치활동을 해온 이들이 많음. 게다가 그들은 대통령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도 없었음.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더욱 뛰어나고 더욱 믿음직스러움. 다만 그들은 박근혜처럼 빽이 없었고, 조선일보와 같은 더러운 언론의 지원이 없었다는 차이점이 있음.

 

어찌되었건 국민들은 현명함. 이명박 5년의 뼈저린 교훈을 통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됨. 물론 진보진영이 서로에 대한 양보와 먼 미래를 위한 자기 희생을 결정해야 국민들이 지지해 줄 것임. 다시는 박근혜와 같은 이들이 대권을 넘보는 한심한 작태는 사라져야 함.

 

미리미리 이명박을 떠나 박근혜 쪽으로 붙은 기생 세력이 있어왔음. 그들에게 국민이나 국가의 미래, 민족의 미래 따위는 관심 대상이 아님. 언제나 그래왔음. 때문에 그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임.

 

182억 원이라는 혈세를 들여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오세훈 시장이나, 그걸 밀고 있는 청와대, 한나라당. 여기에 대해서도 복지를 외치는 박근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 백주대낮에 야당 정치인이 폭행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정부. 이런 정부가 5년 이어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그야말로 참담할 것임.

 

내가 돈이 많다면 여러 권 사서 주고 싶을 만큼 반드시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임. 한국 정치사에 대한 정리도 잘 되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는 책임. 모든 이들이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책을 읽기를 바람. 그리고 내년 선거 때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람.

 

박근혜는 공주가 아님. 그저 불행한 우리 역사의 한 단편일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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